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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일흔이 넘은 아빠가 공부를 시작했다
컴퓨터일흔이 넘은 아빠가 공부를 시작했다 ⓒ Unsplash

일반 직장으로 치면 정년을 훌쩍 넘긴 아빠는 얼마 전부터 컴퓨터 수업에 푹 빠졌다.
시청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매주 2회 참석해 재미를 붙이더니 주말을 맞아 집에 온 나를 붙잡고 온라인 수업을 듣고 싶으니 신청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커리큘럼을 보니 30대인 내가 들어도 어려울 법한 AI 심화 강좌였다. 이메일을 만드는 것조차 혼자 하지 못하고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아빠인데 과연 이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까. 좋다고 들은 수업에 오히려 스트레스나 받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아빠, 이건 너무 어려울 것 같은데요? 수업도 그냥 듣는 게 아니라 화상강의라 프로그램도 깔아야 하고... 진짜 들을 수 있겠어요?"
" 몰라도 배워두면 어디든 쓰일 때가 있겠지. 일단 신청 좀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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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1시간 30분씩, 2주 꼬박 진행되는 온라인 화상강의. 아빠는 화상강의 프로그램 실행 방법을 노트에 연필로 하나하나 옮겨 적고, 몇 번이나 연습을 하고 나서야 마음을 놓는 듯했다.

강좌 신청을 해주고 돌아온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아빠가 수업을 제대로 들을 수 있을까? 걱정이 잠시 들었지만 '한 번 들어보고 아니다 싶으면 포기하시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아빠는 수업이 시작된 월요일 저녁 7시부터 매일 나에게 전화를 했다.

"화상강의 주소를 어떻게 눌러서 들어가?"
"강의 교안을 카페에 올려둔다는데 카페는 어떻게 찾아?"
" 화상 강의 화면에서 채팅을 치라는데 할 줄 몰라서 전화했어."

얼마나 답답했으면 전화를 했을까 싶었지만 너무나 기본적인 거라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조차 애매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조곤조곤 처음부터 설명을 해주다 하루에도 몇 번씩 걸려오는 전화에 나도 모르게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이것 봐요. 걸음마 뗀 사람이 100m 달리기하는 건 무리라니까요!"
"그럼 전화 끊고 내가 알아서 해볼게."

머쓱해진 아빠는 전화를 끊었고 난 금방 후회했다. 한창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할 시기엔 새벽이고 저녁이고 일하느라 여가 생활을 하지도 못한 아빠가 이제서야 무언가 배우고 싶어졌는데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를 때... 그 기분을 감히 내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배움에 나이는 없다
배움에 나이는 없다 ⓒ Unsplash

배움은 분명 적절한 시기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시기가 늦었다고 하여 틀리거나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18세가 대학에 조기입학하거나 70세가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만학도가 되는 것 또한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또래보다 2, 3배의 노력을 한 것에 대해 큰 박수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

오후 7시가 넘으면 어김없이 내 핸드폰엔 아빠의 이름이 떠오를 것이다. 그 옛날 나에게 걸음마를 처음 가르쳐 줬던 아빠처럼, 어린 시절 나의 시시콜콜한 질문에 늘 답을 주었던 아빠처럼, 조금은 답답하고 느릴지라도 아빠의 새로운 배움에 힘이 되어줄 것이다.

#아빠#아버지#평생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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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짧은 글을 쓰며 생각을 전하는 보통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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