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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화물차 운전자다. 1톤 냉동 탑차를 몬다. 낮엔 주로 마트 온라인몰의 배송일을 하고, 새벽에도 역시 또 다른 업체에서 물건을 받아 배송한다. 소위 투잡, 때로는 쓰리잡이다.

주 7일, 하루에 16~18시간씩 일하고, 남은 시간을 두 번에 나누어 쪽잠을 잔다. 그러니까 먹고 자는 시간 이외에는 운전 하거나, 물건을 들고 뛰는 셈이다. 누적된 피로, 정신적인 압박감, 힘들다. 지친다. 지난 몇 년을 이렇게 살았다(올해 8월 중순 코로나19에 걸린 후, 그 후유증으로 인해 현재 야간 일만 하고 있다. 야간 일의 경우, 아내와 같이 하고 있다).

나의 애마 새벽 배송 중 한 컷
나의 애마새벽 배송 중 한 컷 ⓒ 나우

이 일을 처음 시작하고 2~3개월쯤 지났을 때였다. 다세대 주택과 연립주택(빌라)이 많은, 좁고 비탈진 고지대 마을에 배송을 나갔다. 그 좁은 골목에 주차된 차들이 얼마나 많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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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골목으로 갔다가, 차 돌릴 공간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공포감이 나를 괴롭혔다. 계단이 많아 손수레 사용도 어려운 상황. 무거운 짐을 손에 든 채, 힘들게 집을 찾아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며칠 전부터 계속 갔던 지역이라 차츰 익숙해 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한참 배송 중에 어디선가 "기사님, 정말 대단하세요!"라는 소리가 들렸다. 둘러보니 뒤쪽에서 나와 같은 유니폼을 입고, 같은 배송 박스를 든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다.

"와, 이런 동네가 다 있네요? 이런 델 어떻게 차를 몰고 옵니까? 이런 데서, 집은 어떻게 찾아요?"

몇 달 되지 않은 나보다 더 신참으로 보였다. 10년쯤 더 젊었을까? 어쨌든 그 상황에서 내가 할 말은 하나뿐이었다.

"몇 달 지나니까 조금 수월해지네요. 조금씩 할 만해집니다."
"그럴까요? 자신이 없네요. 미치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적응됩니다. 나이 든 나도 하는데요 뭐. 할 수 있습니다. 힘내자고요."

그런 대화를 나누며, 그와 스쳐 지나갔다.

그때 마주친 걸 보면, 그는 아마 같은 조원이거나 앞뒤 시간에 일할 텐데 그 후로 골목에서나 물류센터에서 만나지 못했다. 그만둔 것일까? 그랬다면, 아마 상당한 금전적 손해를 감수했을 것이다. 이 일이 그렇다. 계약 기간 중간에 갑자기 그만두는 경우, 한두 달 정도 본인 대신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겨서 배송에 차질 없게 대처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내 돈을 더 쓰게 된다. 하는 일도 힘들지만, 그만두는 건 더 힘든 게 이 일이다.

물류센터 새벽 1-2시, 배송물품 적재 중 한 컷
물류센터새벽 1-2시, 배송물품 적재 중 한 컷 ⓒ 나우

2.
배송 일을 하기 전에, 나는 동대문에 있는 신발 도매 상가에서 11개월 간 점원 노릇을 했었다. 당시 나는 새벽 2시 30분부터 오후 2~ 3시경까지 일을 했는데, 하는 일은 주로 주문 받은 물건을 창고에서 꺼내 박스 포장한 후, 고객의 차까지 나르거나 해당 물건이 없는 경우, 다른 상점에서 물건을 구해 오는 것이었다. 하루가 금방 지나는 걸 보면, 꽤나 바쁘게 지냈다.

그렇게 일하다 상가 화장실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옆에서 "후~ 지친다, 정말 힘들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이웃 상점의 30대 중반쯤 되는 젊은 점원이 혼자서 하는 말이었다. 의욕이 하나 없는, 피곤하고 지친 모습이었다. 그 후에도 같은 장면을 두 번 더 목격했다. 그 힘듦이, 그 애잔함이 진하게 파고들었던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면서도 시간은 흘렀다. 두어 달 지났을 때 쯤, 가게 사장의 심부름으로 상가 내 봉투 전문 상점에 봉투를 사러 갔었다, 그곳의 점원이 내게 말을 걸었다.

"아저씬 정말 오래 하시네요?"
"예? 오래한다고요? 이제 두 계절 정도 지난 건데요?"
"제 기억엔 아저씨가 가장 오래하는데요? 아저씨네 가게가 이 동네에서 제일 바쁘잖아요, 일이 너무 많아서, 그 전에 일하던 사람들은 한두 달 하다가 모두 그만두던데요."

이 말에 나는 피로해 보이던 이웃 가게 점원의 그 얼굴을 떠올렸다.

그 사람을 힘들게 만든 것이 무엇일까? 노동 시간? 노동의 강도? 지금 들은 말에 의하면, 그 젊은 점원보다 내가 더 바빴다는 것인데, 그 젊은이는 왜 더 힘들어 했던 것일까? 정확한 사정을 모른 채, 나는 그곳을 떠났다. 낙상으로, 손목이 부러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곳을 떠나야 했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배송 일을 한다. 두 사람과 나의 차이는 무엇일까? 일을 하게 된 계기가 달라서였을까? 동대문 상가의 일이나, 배송하는 일, 모두 내 스스로 선택한 경우이다. 나와 달리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게 된 경우, 그렇게 만든 경제적 상황이나 육체노동을 대하는 사회 일반의 시각 등등 사람의 심리를 위축시키는 요소들이 꽤나 많았을 것이다.

3.
내가 배송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으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네가 왜 그런 일을..."이라는 말이다. 그 말 속에 많은 것이 들어 있다.

나도 막상 앞에서 '육체노동을 대하는 사회 일반의 시각'이라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하곤 했지만, 에잇, 돌리지 말고 말하자.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닌가?

'육체노동은 힘들다.'
'육체노동 일은 저소득이다.'
'육체노동은 어디 가서 대접 받지 못한다. 천대 받는다.'

이 말들, 부인할 수 있는가?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지금, 이 사회에서 이 말들을 부인 할 수 있는가?

육체노동은 분명 힘들다. 그것을 누가 부인하랴. 그러나 힘든 육체노동자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이 있다. 사회에 만연한 편견과 차별, 그렇게 해서 우리 내면에 자리 잡은 천시(賤視)다.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그리고 글을 쓰는 내게 묻는다.

오늘 그대와 나는 이런 편견과 차별, 천시로부터 과연 자유로운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의 일부 내용은 본인 블로그에 썼던 내용과 중복됩니다.


#육체노동#노동자의현실#새벽배송#편견#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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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필 (zayu1962) 내방

필명 : 나우 '1톤 탑차를 모는 화물차 운전자입니다. 운전 노동을 하면서, 신의 의미, 노동의 의미를 새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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