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12.3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에 동원되어 부대원들과 함께 국회에 투입되었던 김현태 제707특수임무단장(대령·육사57기)이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와 대통령실 건너편인 전쟁기념관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대원들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이용당한 피해자"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무책임한 지휘관 때문에 대원들을 사지로 몰았다”며 "'대원들은 많이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있다. 부대원들 한 명도 다치지 않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 권우성
세계 정상급 '탑 티어(Top Tier)' 특수부대로 평가받는 707 특임단은 흔히 '특전사 안의 특전사'로 불린다. 평시 대테러 작전, 전시 'X-파일'로 불리는 대북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대원들의 신상정보 자체가 2급 군사기밀에 해당한다. 언론에 노출될 때도 선글라스를 끼거나 복면을 착용하고 어떤 경우에라도 얼굴이 그대로 드러나는 사진이 실리는 일은 없다.
그런데 지난 3일 계엄군으로 국회에 투입됐던 707 특임단 대원들은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그 정체가 노출됐다. 부대장의 이름 역시 비밀이었지만 9일 오전 기자회견을 자청하면서 기자들 앞에 자신을 드러냈다.
윤석열 대통령 불법적 친위 쿠데타에 동원됐던 707 특임단장 김현태 대령은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고 "707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이용당한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그는 스스로를 "무능하고 무책임한 지휘관이다. 부대원들을 사지로 몰았다"면서 "부대원들은 죄가 없다"고 강조했다. 입장문을 읽는 내내 그의 목소리는 떨렸고, 어떤 대목에선 말을 잇지 못했다.
12.12 군사쿠데타, 그리고 707 특임단의 탄생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국회 주변에 등장한 무장한 계엄군에게 시민들이 항의하고 있다. ⓒ 권우성
707 특임단의 탄생은 12.12 군사쿠데타와 깊은 관련이 있다. 전두환 등 군사반란 주범들은 육군본부의 합법적 명령계통 아래 있던 지휘관들을 체포하기 위해 특전사령부 병력들을 동원했다. 1979년 12월 13일 새벽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보호하려던 사령관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사후 중령 추서)을 살해하고 정 사령관을 끌고 갔던 반란군 역시 3공수여단 병력이었다. 박희도 제1공수여단장, 최세창 제3공수여단장 그리고 장기오 제5공수여단장 등 하나회 출신 지휘관들이 자신들의 직속상관이었던 정병주 사령관의 명령을 어기고 반란에 가담했다.
쿠데타가 성공한 후 반란 가담자들이 잇달아 특전사령관 자리에 올랐다. 제3대 정호용, 제4대 박희도, 제5대 최웅은 모두 하나회 회원들이었다. 쿠데타로 상관을 불법 체포하고 군권을 찬탈했던 이들은 자신들도 부하들에 의해 같은 꼴을 당할까봐 불안했다.
박희도는 사령관 부임 직후인 1981년 4월 17일 특전사령관 직할 부대로 707 대대를 창설했다. 처음 707 대대는 특전사령관의 경호를 책임지는 친위부대 성격이 강했지만, 역쿠데타 우려가 점차 희박해지면서 대테러와 적진 종심 직접타격 등의 임무가 새롭게 부여됐다.
707 대대는 대통령 경호에도 동원됐다. 1982년 2월 5일 제주도를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의 경호를 위해 '봉황새 작전'을 수행하던 707 대대원 47명을 태운 공군 C-123 수송기가 한라산에 추락해 승무원 6명을 포함한 탑승자 53명 전원이 사망한 참사가 발생했다. 며칠째 내린 폭설과 강풍이 부는 악천후 속을 무리하게 비행했던 결과였다. 순직한 장병들은 보름 넘게 진행됐던 스키 훈련을 마치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대통령 경호에 동원됐다 목숨을 잃었다.
사고 원인 중 하나로 무리한 경호 문제가 지적됐다. 사고 직전, 일선 부대에서는 기상악화로 비행이 위험하다고 몇 차례나 건의했고, 노련한 조종사들도 무리한 비행에 반대했지만, 상부에서는 이를 끝끝내 묵살했다고 한다.
12.12 쿠데타에 적극 가담했던 하나회 회원 장세동은 전두환의 경호실장이 되어 평소 '심기경호'에 진심이었다. 새벽 일찍 대통령의 아침 산책길을 미리 돌면서 낙엽과 새똥을 치웠고, 행여 배탈이 나서 업무에 지장이라도 줄까봐 식사량까지 줄일 정도였다. 대통령의 심기가 편안해야 국정도 안정된다는 맹목적 충성 앞에 장병들의 안전은 뒷전이었다. 전시상황도 아니었고 고작 연례행사에 불과했던 대통령 연두순시를 위해 무리한 경호작전을 벌인 결과 53명 젊은 장병들의 목숨이 희생된 것이다.
전두환은 본인을 경호하려다가 목숨을 잃은 장병들의 죽음 앞에 "이번 사고는 조종사의 착각으로 빚어진 사고다. 인명은 재천인데 어떻게 하겠느냐"는 뻔뻔한 말을 남겼다. 군은 대통령 경호작전이 아닌 '동계특별훈련' 혹은 '대간첩작전' 중 발생한 사고였다면서 죽음의 진상마저 수 십 년 동안 왜곡했다(관련 기사 :
전두환 경호 가다 몰사 당한 53명 "발설마라" 극비 붙여진 끔찍한 진실 http://bit.ly/97ysYx)
이후 707 대대는 1986년 12월 3일 추풍령 무장 탈영병 인질극 등 여러 건의 무장 탈영 사건을 진압하고,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 게임이 성공적으로 개최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2000년대 초반 대테러특수임무대대로 전력화를 마친 707 대대는 2019년 2월 1일 기존의 특수임무대대에서 대령이 단장인 '특수임무단'으로 확대·개편됐다.
장세동과 똑 닮은 김용현의 행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 연합뉴스
2024년 12월 3일 밤, 707 특임단은 그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다시 국민들의 주목을 받게 됐다. 이번 쿠데타를 보면서 42년 전의 비극이 겹쳐 보이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이해할 수 없는 비상계엄령 선포를 맹목적으로 수용하고 부추겼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행태 때문이다. 2년여 경호처장을 지냈던 그는 대통령에게 항의하는 국회의원의 입을 틀어막고 사지를 들어 밖으로 끌어냈다. 대전 카이스트 대학원생 입틀막 사건도 벌어졌다. 국민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과잉경호와 과잉충성으로 일관했던 그의 행태는 장세동의 그것과 똑 닮았다. 차이가 있다면 '하나회'가 '충암파'로 바뀌었다는 정도다.
707 대원들은 출동하면서 북한 관련 작전에 투입되는 줄 알았고, 자신들이 국회로 가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증언했다. 만에 하나 유혈사태라도 발생했다면 한국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하기도 아찔해진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계엄군으로 동원됐던 대부분의 군인들이 항명죄로 처벌받을 것을 각오하고 부당한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그들은 최정예 부대답지 않게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을 긴급체포하는 것이 명백한 불법행위라는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해본다.
이 같은 장병들의 태도는 국민 절대 다수의 상식과 부합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허황된 사고에 사로잡혀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시에 척결하고 자유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대통령, 계엄선포를 건의하고 계엄군에 국회진입을 지휘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위법·위헌성은 전혀 없었다"는 전 국방장관의 주장에 전혀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대통령과 전 국방장관은 국민에게 뿐만 아니라 불법적 명령을 수행해야 했던 장병들에게도 사과해야 한다. 그것이 언제라도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군인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월 22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56회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하고 있다. ⓒ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