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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오후 4시. 유독 날이 추웠다. 롱패딩에 목도리까지 둘렀건만 초겨울 냉기가 틈을 파고든다. 그럼에도 나가야 했다. 텀블러에 뜨거운 커피를 담고 초코바를 챙겼다. 혹시 몰라 가족들에게도 전화를 돌린다.

TV에서도 생방송 틀어주던데. 아빠가 말했다. 직접 눈 앞에 나타나야 국민을 무서워하지. 내가 답한다. 혹시라도 군인이 나타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집으로 달려가. 엄마가 당부했다. 엄마, 괜찮을 거야. 엄마 딸 조심히 다녀올게.

옴짝달싹 못하던 1시간 동안 내가 본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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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팩을 메고 문을 나선다. 조급한 마음이 발길을 재촉한다. 타닥 타닥, 타닥 타닥. 5호선으로, 여의도역으로, 국회 앞으로. 다시는 반복되어선 안 되는 대한민국 역사의 한 가운데로.

일부러 국회의사당 역이 아닌 여의도 역으로 갔건만.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좌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우수수 엉덩이를 뗀다. 역사 안은 이미 수많은 인파로 일렁였다. 사람들에 밀려 어렵사리 출구가 있는 지하 1층까지 올라갔지만 역시 발 디딜 틈은 없었다.

지난 7일 5호선 여의도역 지난 7일 5호선 여의도역
지난 7일 5호선 여의도역지난 7일 5호선 여의도역 ⓒ 송혜림

올해 4월에도 이곳에 왔었다. 벚꽃 축제가 한창이던 날이었다. 그날도 역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한 손엔 돗자리, 다른 한 손엔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서. 그날은 스쳐 지나가는 얼굴마다 미소가 어려 있었는데.

이날은 작은 웃음소리조차 사뭇 들리지 않았다. 이날 그 곳의 공기는 압도될 정도로 밀도가 높아서 하나 된 마음에서 번지는 분위기는 참으로 두려운 것이란 걸 처음 느꼈다.

병목 현상으로 5~10분마다 나갈 수 있는 출구가 바뀌었다. 난 단 한 걸음도 옮기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잰 걸음을 하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어디가 출구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지난 7일 5호선 여의도역
지난 7일 5호선 여의도역 ⓒ 송혜림

역 안에는 다양한 시민들이 있었다. 아이를 등에 업은 아빠와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 과잠 입은 대학생들, 어린 티 나는 청소년들까지. 이름도 사는 곳도 모르지만 각자의 열기로 서로를 데우며 연대의 마음을 맞닿고 있었다.

"윤석열을 탄핵하라!"

한 중년 여성의 외침이 어수선함을 송곳처럼 뚫었다. 이내 몇 사람이 메아리처럼 구호를 따라 외쳤고 이윽고 역사 안의 모든 사람들이 구호를 주고 받았다. 역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시간마저 아깝다는 듯 목소리는 횃불처럼 커져 갔다.

"윤석열을!"
"탄핵하라!"
"윤석열을!"
"탄핵하라!"

마치 파도 소리 같았다. 수많은 염원이 담겨 결코 잔잔해지지 않을 거대한 파도가. 국회의사당도 광화문도 아닌 그 작은 여의도 역 안에서 시민들의 목소리는 바다를 이뤘다.

나는 약 한 시간을 역 안에서 보내면서 바다의 면면을 눈에 담았다. 수 백 명의 인파가 몰렸음에도 화장실 앞에서 나란히 줄 서 있던 사람들. 사람들이 앞뒤로 밀리자 "밀지 마세요!", "안전하게 천천히 갑시다!"라고 외치는 사람들. 아이가 보이면 좁은 틈이라도 여유를 두려는 사람들. 지칠 만도 할 텐데 볼멘 소리조차 쉬이 들리지 않았던 바다.

한 번은 어디선가 중년 남자 두 명이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한 명도 아닌 여러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다투면 안돼요!" "저희끼리 싸우지 말아요!"라고 소리쳤다. 모두들 그들이 왜 싸우는지 이유조차 몰랐을 테다. 그러나 어떤 상황 속에서도 '평화 시위'란 가치를 지키기 위한 마음이었을 거란 생각에 순간 눈가가 먹먹해졌다.

현 시국과 달리 시민들의 마음은 너무나 맑고 투명해서. 아무리 그들이 질서를 무너뜨리고 균열을 내도 국가의 근간이 흔들리지 않도록 묵묵히 일상의 질서를 준수하는 시민들이라서. 어떻게 이렇게 성숙한 국민들 위에 그들이 존립할 수 있는지 한없이 허탈하고 막막할 뿐이다.

이날 우리 국민들이 만들어간 바다는 전국 곳곳에서 일고 있었다. 서로를 연대하는 커다란 파도가 되어 담담하고도 강렬한 파동을 일으키면서. 아래는 트위터 갈무리.

"여자화장실 줄이 길고 남자화장실은 줄이 없는데 지금 어떤 아저씨가 남자들 설득해서 화장실 비우고 잠시 여자들이 쓸 수 있게 보초 서주고 있음." @hobillera

"국회의사당 역 3번 출구에 비상용 보조배터리 및 간식거리를 비치해두었습니다."@shoots_0322

"택시 기사님이 나 국회 앞에 내려주시고 2분 후에 결제 취소하셨어..." @mouloud_B5

"방금 9호선 안내방송에서 '소중한 주말시간 할애해서 시위가시는 여러분들께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따뜻한 옷 챙겨입으시길 바라시며, 차가운 바람이 여러분들의 촛불은 빗겨가길 바랍니다' 하니까 다같이 박수침"@HerendR5200_a

"광주 집회 짬바 어나더인 게 식사(주먹밥) 무료 제공해주시면서 다회용 용기 쓰심. 몇 백 명이 올지도 모르는데 그 수고로움을 당연하게 안고 가심" @woo0514g

"집회 종료 후 한 마디 말도 없이 다함께 바닥의 온갖 쓰레기 치우던 이름없는 사람들. 귀갓길 교통 정리하던 경찰에게 시비거는 시민들 제지하는 사람들. 우리나라는 이미 훌륭한 나라다." @abrtmsy200930

탄핵안 부결 소식에 탄식한 국민들

한 시간이 족히 넘어서야 여의도역 밖으로 나설 수 있었다. 막 표결이 시작된 오후 5시였다. 푸르렀던 하늘은 금세 붉은 노을이 기웃대고 있었다. 네 갈래로 난 인도는 바닥 틈이 안 보일 정도로 국회의사당까지 꽉 차 있었다.

 지난 7일 5호선 여의도역 근처. 저 멀리 한강 작가의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지난 7일 5호선 여의도역 근처. 저 멀리 한강 작가의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 송혜림

미처 끝까지 가지 못하고 거리 중간 중간에 앉아 있는 시민들도 보였다. 연령이 대부분 중년을 넘어선 그들은 찬바람에 밭은 숨을 내쉬면서도 꿋꿋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 건물에 내걸린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축하 현수막도 시야에 들어왔다. 문득 그녀의 시선이 또렷하고 형형하게 국회를 향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수 십만 명의 파도를 타고 국회의사당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구호를 목이 터져라 외치며. 두 주먹을 위로 치켜세우며. 다신 반복되지 않아야 할 역사의 밤을 맞이하러. 그리고 몇 시간 채 지나지 않아 탄핵안은 표결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다. 단 5표가 없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국회 앞에 밝혀진 빛의 물결을 보고서도. 곳곳에서 짧은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누군가는 가슴을 쳤고 누군가는 바닥을 쳤다. 눈물을 흘렸고 같이 온 사람을 안으며 위로했다.

그 곳엔 갓난 아이를 업고 온 엄마가 있었고 수능 특강을 들고 온 학생이 있었고 나이조차 가늠 안 되는 할머니가 있었다. 초겨울 한파를 이겨내고 소중한 주말을 반납하고. 그날 그곳에서 촛불에 부스러지는 긴 밤을 보냈는데. 정말, 어떻게. 감히.

여당 의원들은 어째서 국민들의 호소에 귀를 닫고 촛불 앞에 눈을 감았나. 선거철마다 역 앞에서 국민들에게 허리 숙이던 여당 의원들은 왜 그날은 허리를 빳빳이 든 채 본회의장을 빠져나갔나.

투표가 민주주의의 근간이라던 그들은 왜 자신의 투표권은 당 이익 앞에 휴지 조각처럼 저버렸나. 대한민국 국민과 민주주의가 얼마나 우습고 만만하고 가벼웠으면. 그리도 쉽게 역사 앞에 고갤 돌렸나.

세대가 연대한 민주주의는 이긴다

여당이 말하는 '탄핵 트라우마'라는 게 과연 무엇일까. 계엄령이란 단어가 우리 국민들에게 어떤 고통의 심지를 밝혔는진 까맣게 잊었나. 계엄령이 내려진 날 수많은 시민들이 새벽 잠을 깨워가며 군인들 앞에 섰다. 지켜내야 하니까. 바닥까지 추락한 민주주의를. 우리 국민들의 소중한 일상을.

이미 계엄을 경험한 세대는 트라우마를 극복한 게 아니라 눈물로 견디면서 총 앞에 섰다. 다음 세대에겐 온전한 민주주의를 물려주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계엄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도 거리 위에 나왔다. 앞 세대가 물려 온 민주주의 가치를 온전히 지켜가야 하니까. 세대로 연대된 민주주의는 강하다. 결코 붕괴될 수 없다.

탄핵안이 부결되며 모든 게 다시 원점에서 돌아갔다. 민주당은 매주 토요일마다 탄핵안을 표결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다시 촛불에 불을 붙여야 한다.

집에 귀가해 다시금 거리에 나갈 채비를 한다. 따뜻한 커피를 타고 핫팩을 챙겨서. 목도리를 단단히 매고 털 신발을 신고. 역사에 편승하지 않기 위해. 내가 살아가는 이 공간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지금 이 모든 역사를 눈에 담고 기억하여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문득 그런 인사말을 하고 싶다. 오늘도 하루 종일 뉴스에 눈을 떼지 못하는 이들에게. 야밤에 또 무슨 일이 터질까 잠 못 이루는 이들에게. 전국 각지의 거리에 나와 묵묵히 피켓을 들고 손 호호 불며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들에게. 그토록 강인하고도 평범한 이들에게.

우리 내년 4월에는 여의도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봄 꽃을 봅시다. 그날은 손에 촛불이 아닌 한 송이의 화사한 벚꽃을 듭시다. 사랑하는 이들과 따스한 햇빛을 맞으며 투쟁의 걸음이 아닌 일상의 걸음을 합시다.

그러니 이 쓰라린 겨울을 조금만 더 견뎌봅시다.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거리에 나옵시다. 흰 눈에 꺼진 촛불은 다시 켜면 됩니다. 겨울이 아무리 호되도 분명, 꽃은 핍니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 한강 작가, 지난 7일 노벨문학상 문학상 강연에서

#윤석열#탄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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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림 (eeyyii6) 내방

공감과 현실이 담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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