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4.12.09 09:39최종 업데이트 24.12.09 09:39

아내가 이발하자고 말했다

벌써 두 번째... 불안하지만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요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내가 이발해준 머리
아내가 이발해준 머리 ⓒ 이혁진

이발사로 변신한 아내

한때 좋아했던 서부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고 면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총잡이들이 대치하는 살벌한 상황에서도 이발하는 여유가 어떻게 있는지 도저히 가늠되지 않았다.

서부영화를 떠올린 것은 아내가 내 머리를 이발하겠다고 제안할 때이다. 머리를 아내에게 맡기는 건 도저히 예상치 못한 위험 그 자체로 보였다. 아내가 내 머리를 깎아주었다. 오늘로 두 번째다.

AD
이발사로 변신한 아내 사랑이 지극하다고 해야겠지만 내심 불안하고 익숙할 때까지 참아야 할 것 같다. 아내는 내가 밖에서 이발하면 머리를 보며 언제나 한마디 하곤 했다.

"머리 오늘 제대로 깎은 것 같아요."
"오늘 머리가 잘 어울립니다."
"오늘은 좀 모양이 안 난다."

아내의 다양한 표현에 나는 무덤덤하기만 했다. 머리 모양이 그때그때 기분 따라 달리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또 미장원에서 파마를 하고는 내 품평을 꼭 듣고 싶어 한다. 고역스럽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글쎄 오늘 따라 멋있다"라고 말한다.

실제 그렇기도 하다. 아내가 파마를 하면 평소보다 아름답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파마가 여자를 멋지게 둔갑시키는 것이다. 아무튼 아내 파마가 잘 됐다고 평해야 서로 마음이 편하다. 괜히 아는 체 머리 모양이 이상하거나 잘못됐다고 평했다가 수습이 곤란하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이발소를 다녀온 후 아내가 다음부턴 내 머리를 깎아주겠다고 한다. 내 머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당장 강하게 손사래 쳤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아내는 배송된 상자를 내게 보이며 뜯어보라 했다. 개봉하니 면도기 형태의 머리 깎는 도구가 들어있다. 아내가 정말 내 머리를 깎을 태세구나를 직감하고 속으로 걱정했다.

동네 이발소 주인을 만나면

얼마 후 아내는 이발하자고 말했다. 도구 설명서 대로 기계를 머리 위에서 아래로 밀면 손쉽게 깔끔하게 깎아진다면서 준비를 지시했다. 나는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기다렸다. 정말 그림과 설명대로 잘 깎일까. 조금 후 아내는 탄성을 지른다. 이발 모양새가 그렇듯하게 나타난 걸 본 것이다.

거울을 들고 나는 가만 지켜만 볼 뿐이다. 아내는 내 머리를 아기 머리 만지듯 요리조리 다루었다. 아내의 따뜻한 손을 제외하고는 모든 게 어색했다. 어쨌든 머리가 완성됐다. 아내도 흡족해하는 표정이다. 난 아무래도 괜찮다. 어차피 아내에게 모든 걸 의탁했으니. 이후 나는 아내에게 머리를 맡기기로 했다.

사실 나는 머리카락이 별로 없다. 암으로 머리가 빠지다 자라기를 반복하면서 머리를 아예 기르지 않고 있다. 삭발이 그렇게 흉하지 않다고 한다. 대신 모자를 쓰고 다닌다. 이발소에 가면 자란 머리가 별로 없고 짧아 이발이 5분 채 걸리지 않는다. 윙윙 슥슥 두세 번 밀면 끝이다. 면도나 세발 등 별도 손질도 필요 없다.

아내처럼 남편 머리를 깎아주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아마 드물 것 같다. 아내에게 머리를 맡기는 사람도 내 주변에서 들어본 적이 없다. 남편 병구완시키는 것도 모자라 머리까지 맡긴다고 하니 약간 창피하기도 하지만 아내가 해주는 이발도 어여쁜 마음씨라 여기고 있다.

그건 그렇고 십여 년 내 머리를 깎아주던 동네 이발소 주인이 무척 궁금해할 것 같다. 오가다 만나면 그에게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지 난감하다. 길 가다 날 보고 이발소 주인이 "그간 별고 없으시고요?" 물으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머리를 당분간 기르기로 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60대 이상 시민기자들의 사는이야기
#이발#삭발#이발사아내#이발소#미장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