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무도 모른다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어떤 사과도 찾아볼 수 없는
지독히도 뻔한 책 소개를 해보자. "평범한 인간이 조직 안에서 상상하지 못할 악행을, 그것도 무덤덤하게 행할 수 있음을 지적한 책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다." 반대로 같은 책을 참신하고 충격적으로 소개 해볼 수도 있다. " 한국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나타났다!" 그렇다. 가장 충격적인 현실로 인해, 가장 뻔한 책을 다시 읽어야 할 시대가 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12월 3일 계엄령을 선포했다. 시민들과 국회의원들의 빠른 개입으로 계엄령 해제안이 가결 되었고,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령을 해제했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은 하야를 거부했으며, 여당인 국민의힘은 탄핵에 반대함을 당론으로 공식 채택했다.
2024년 12월 5일 국회에서 치러진 국정감사 전에 국방부 장관은 사의표명을 했는데, 이는 국정감사 참여 자체를 회피하는 행동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한편 국정감사 현장에서도 군경 고위급 간부들은 그 누구도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비상 계엄 상황에서 군경의 이해하지 못할 활동에 대한 해명이 상호 모순되는 부분들도 나타났다. 국방부 장관, 경찰청장, 계엄령 관련 군장성 등 국가 안보의 최고위급 공무원들 중 그 누구도 계엄령 사태에 전혀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으며, 이해 가능한 수준의 사과도 전무했다.
그 누구도 이 비상식적 계엄령이라는 상황에 대해 정의로운 판단과 행동을 하지 않았다. 즉,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한국에 나타났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도서출판 한길사
2. 1945년의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저자인 한나 아렌트는 저서를 통해 '생각의 무능(inavility to think)'에 주목했다. 유대인 학살의 핵심 책임자 중 하나였던 아이히만은 자기기만과 무지 속에서 자신들이 한 행위를 똑바로 인지하지 못했다. 실제로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에 대해 끔찍하다는 감정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매우 능률적으로 학살을 저질렀다. 다만 아이히만은 최고위층 회의에 초대되었고, 유대인 소개(학살)에 적극적인 최고위층을 보면서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냈다. 이에 대해 저자인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연구했다
"그(히틀러)의 성공만으로도 제게는 이 사람을 복종해야만 할 충분한 근거가 됩니다." 그(아이히만)는 자기가 그랬던 것처럼 그 '좋은 사회'가 모든 곳에서 열정과 열성을 가지고 반응하는 것을 보았을 때 사실상 그의 양심은 휴식 상태에 있었다. 판결문에 나오는 말처럼 "양심의 소리에 자신의 귀를 가까이할" 필요가 그에게는 없었다. 그것은 그가 양심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의 양심이 "자기가 존경할 만한 목소리와 함께", 자기 주변에 있는 사회의 존경할 만한 목소리와 더불어 말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P.198)
아이히만의 모습은 예수의 무죄를 확신했지만, 여론에 밀려 예수를 사형하고는 자신의 무죄를 논했던 빌라도의 모습과 똑같았다. 실제로 아이히만은 자기 스스로의 양심에 따라 법과 의무를 준수했을 뿐임을 주장했다. 그는 양심의 소리를 거부하기 위해 법을 지킨다는 자기변호를 했다.
아이히만은 주체적 인간으로서 합리적 판단을 할 용기를 내지 않았다. 더 나아가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이라는 생각을 할 용기 자체를 내지 않았다. 이는 다른 독일인들도 마찬가지였으며, 학살에 협조한 일부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었고, 악인이 되었다. 언어와 사고를 스스로 허락하지 않은,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인류가 목도한 것이다.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이 10월 3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의 국군방첩사령부 국정감사에 출석해 있다. ⓒ 남소연
3. 2024년의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이번 비상계엄령 사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분노를 금치 못하는 부분은, 한국사회에 여전히 계염령에 대한 트라우마가 존재함에도 고위 공무원들 중 누구 하나 계엄령을 막거나 계엄령 중간에 헌법을 수호하고자 하는 의지를 천명한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믿고 있던 군사 쿠테타가 일어났음에도 이를 충실히 이행한 고위 공무원들이 더 많았다는 점은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하야를 거부하며 계엄령의 책임이 민주당에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국민의힘은 비상계엄령은 잘못된 판단이었지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반대함을 당론으로 공식 채택했다. 군경의 고위 공무원들은 사과 표명은 차치 하더라도, 별다른 입장 표명조차 내놓지도 않고 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2024년 12월 한국에 온 것이다.

▲류혁 법무부 감찰관은 비상계엄 관련 법무부 회의를 거부하고 즉시 사표를 제출했다. ⓒ MBC
4. 2024년 12월의 대한민국은 1945년의 독일과 다를 수 있을까
다만 희망도 있었다. 류혁 법무부 감찰관은 비상계엄 관련 법무부 회의를 거부하고 즉시 사표를 제출했다. 그리고 그 역시 MBC와의 인터뷰에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떠올릴 수 있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비상계엄령이 발령되자 시민들은 여의도 국회로 모였고, 계엄령이 해제된 날부터 오늘까지 전국에서 촛불을 들고 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2024년 12월 한국에 왔지만, 이를 거부할 합리적 의사판단 능력과 용기를 지닌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는 존재한다.
2024년 12월의 대한민국에 한나 아렌트가 남긴 고찰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2024년 12월의 대한민국은 1945년의 독일과 다를 수 있을까. 이번 만큼은 아이히만이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를 할 수 있을까.
'"그(아이히만)는 자신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는 완전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의 마지막 말로 남긴 기괴한 어리석음보다도 이 점을 더 분명히 진술하면서 자기는 기독교인이 아니며 죽음 이후의 삶을 믿지 않는다는 점을 일반적인 나치스 식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그는 "잠시 후면, 여러분. 우리는 모두 다시 만날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운명입니다. 독일 만세, 아르헨티나 만세, 오스트리아 만세. 나는 이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고 말했다.
죽음을 앞두고 그는 장례 연설에서 사용되는 상투어를 생각해 냈다. 교수대에서 그의 기억은 그에게 마지막 속임수를 부렸던 것이다. 그의 '정신은 의기양양하게 되었고', 그는 이것이 자신의 장례식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이는 마치 이 마지막 순간에 그가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이루어진, 이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을 요약하고 있는 듯했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P.349)
덧붙이는 글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 저, 김선옥 옮김, 도서출판 한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