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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경제를 움직이는 혈관인 금융의 사회성을 회복하고 대안적인 금융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비영리단체 ‘사회적금융연구원’은 11.27일 국회에서 한국 사회적금융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조망하는 포럼을 개최했다. 이글은 이번 포럼에서 논의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으로,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우리나라 사회적금융(social finance)의 현주소와 전망을 소개할 예정이다.[기자말]

GABV(Global Alliance for Banking on Values)라는 국제단체가 있다. 사회, 환경적 가치를 추구하는 '가치 중심 은행들의 연합체'인데, 현재 45개 나라 총 70개 기관이 가입되어 있다. 이 중에는 북미와 유럽 등 부유한 국가의 금융회사도 있지만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가난한 나라에서 활동하는 기관도 무척 많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인 한국은 어떨까? 한 곳도 없다.

GABV 누리집 www.gabv.org
GABV 누리집www.gabv.org ⓒ GABV

이 단체에 소속된 은행들은 소외된 이웃을 돌보고, 무너진 지역을 살리며, 망가진 지구를 회복하고,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 주체들에 날개를 달아주는 '착한' 금융을 실천한다. 이익을 많이 남기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흰 백조가 다수를 이루고 있다고 해서 검은 백조의 존재가 부정되지 않듯,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충분히 지속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금융시장은 신용(credit)을 매개로 작동된다.
소에 등급이 매겨지는 것처럼, 사람/조직에도 점수가 따라다닌다. 은행은 이 점수를 토대로 심사 기준을 정해놓고, 기준에 미달하는 신청자에겐 대출을 허락하지 않는다. 배제의 원칙이 작동된다. 이처럼 신용 점수가 낮아 금융회사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현상을 금융 결핍(financial lack)이라고 부른다.

그림의 「나」 지역이 이 결핍 공간이다.
점수가 낮을수록 공급은 줄어든다. 따라서 신용이 낮은 이들은 어디든 돈을 빌려주는 곳을 찾아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이곳은 포식자들이 들끓는 밀림이다. 고금리와 살인적 추심으로 돈이 궁한 이들의 등골을 빼먹는 불법 사채업자들이 절박한 상황에 몰린 먹잇감을 노린다.

신용도와 공급의 상관관계 시장금융의 작동 방식
신용도와 공급의 상관관계시장금융의 작동 방식 ⓒ 문진수

금융시장에서 이 공간을 원천적으로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금융 소외자들을 악당들로부터 보호해 줄 사회적 장치가 필요하다. 선 밖으로 밀려난 이들을 안으로 끌어들여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포용(financial inclusion)적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다. 채무조정, 신용 회복, 개인 회생, 파산 면책 등이 그런 '장치'들이다.

금융회사들은 이 공백을 메우는 일에 동참하는 것을 '사회공헌'이라고 부른다.
시장의 법칙은 준엄하고 결핍은 피할 수 없으니 작게나마 선의를 베풀어 사회에 공헌하겠다는 뜻이다. 이 해석이 현실의 금융회사가 어떤 관점에 서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은행은 '신용창조'라는 요술 방망이를 휘둘러 돈만 벌면 그만일 뿐, 공백을 메우는 건 자신들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누가 이 역할을 대신할까. 정부다.
사례는 많다. 대표적인 제도가 미국의 지역재투자법(CRA)이다. 1977년에 연방법으로 제정된 이 법률에 따라 미국의 예금 수취 금융회사들은 저소득층, 소수민족, 소기업, 낙후 지역 등 금융 취약 계층/지역에 자금을 제공해야 한다. 실적이 부진한 금융회사는 정부의 인/허가가 필요한 사업을 진행할 때 불이익을 받는다. 금융 결핍을 메울 수 있는 길을 제도화한 것이다.

독일에는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소유한 공공은행(Sparkasse) 350여 개 남짓 존재한다. 이 은행들의 최우선 임무는 금융 취약 계층에 돈/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이다. 지방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에 신용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익이 생기면 지자체에 출연금을 내고, 손실이 발생하면 지방정부가 무한책임을 진다. 금융이 지역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 셈이다.

영국은 사회투자시장(social investment market)을 조성할 때, 정부가 중개기관을 직접 발굴, 육성했다. 기존에 없던 생태계를 만들려면 자금을 중개하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이들에게 소규모의 자금을 제공해 자리를 잡도록 도운 것이다. 이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도매 기금(Big society capital)을 설립해 큰돈이 이 생태계로 유입될 수 있도록 했다.

영국 사회투자시장 중개기관 Social investment ten years on (2010, Social Investment Task Force)
영국 사회투자시장 중개기관Social investment ten years on (2010, Social Investment Task Force) ⓒ SITF

시장기구가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않는 것을 '시장실패'라고 부른다. 정부의 개입이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것을 '정부실패'라고 한다. 우리 금융시장은 두 경우 모두에 해당한다. 시장은 금융 결핍을 메우는 것을 자신들 책임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정부의 개입은 금융회사들의 돈주머니를 늘려주는데 기여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회경제 제도는 선진국을 모방한 것이 많다. 금융 영역은 언어부터 운영체제에 이르기까지 영미식 제도와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 중에는 '좋은'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우리는 좋은 것은 방치하고 '좋지 않은' 것들만 차용해서 쓰고 있는 것 같다. 금융이 사회에 어떻게 복무해야 하는가에 대한 관점이 없다. 금융에 관한 한, 대한민국은 '후진' 나라다.

덧붙이는 글 | 문진수 기자는 사회적금융연구원장입니다


#사회적금융#협동사회금융포럼#사회적금융연구원#금융결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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