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국회 주변에 등장한 무장한 계엄군에게 시민들이 항의하고 있다. ⓒ 권우성
윤석열 대통령 비상계엄이 실현되면서 한때 이를 '괴담' 취급했던 주요 언론의 과거 보도 행태가 소환되고 있습니다. "민주당과 야권이 192석을 차지한 상황에서 곧바로 해제될 게 뻔한 계엄령을 대통령이 왜 선포하겠나"라면서 더불어민주당의 '계엄령 준비설'을 음모론 취급했던 <조선일보> 사설 '국민을 바보로 아는 '계엄령 괴담''(9월 4일 자)이 대표적입니다.
이 신문은 사설에 앞서 그 전날(9월 3일) '계엄 유지하려면, '불체포 특권' 野(야)의원 42명 체포해야'라는 제목의 '팩트체크' 기사에서 이미 윤석열 정부의 계엄령은 '실현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습니다.

▲조선일보는 지난 9월 4일 사설 ‘국민을 바보로 아는 '계엄령 괴담’‘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계엄령 준비설’을 음모론으로 취급했지만, 12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현실화되자 ''계엄 준비설' 제기… 김민석이 맞았다'고 보도했다. ⓒ 조선일보
당시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도 윤 대통령이 충암고 동문인 김용현 국방부 장관을 지명하자 "국지전과 북풍 조성을 염두에 둔 계엄령 준비 작전"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이 신문은 "헌법 77조 5항에 따라, 국회 재적 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즉시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면서 "국회 재적 과반수 찬성(민주당 170석)으로 즉시 계엄 해제" 할 수 있기 때문에 계엄령은 "불가능"하다고 판정했습니다.
아울러 "계엄 해제를 막으려 국회의원 체포 구금 계획"이라는 민주당 주장도 "국회의원은 현행범이 아닌 이상 국회 동의 없이 체포 구금하지 못 한다"는 헌법 44조와 계엄법 13조를 들어 역시 "불가능"하다고 판정했습니다.
"유언비어, 시위 참가 국회의원을 현행범으로 체포 구금" 할 수 있다는 주장도, "의결정족수 미달시키려면 야당 의원 42명 이상을 현행범으로 체포해야" 하기 때문에 "비현실적인 가정"이라고 일축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지난 9월 3일 ‘계엄 유지하려면, '불체포 특권' 野(야)의원 42명 체포해야’라는 제목의 ‘팩트체크’ 기사에서 윤석열 정부의 계엄령은 ‘실현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 조선일보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같은 '악조건'에도 지난 3일 밤 비상계엄을 강행했습니다. 다행히 야당뿐 아니라 일부 여당 의원까지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에 찬성하면서 계엄은 6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자칫하면 정족수를 채우지 못할 수도 있었습니다.
당시 경찰은 국회 입구를 봉쇄하고 국회의원 출입까지 막아 일부 의원은 월담을 해야 했고, 무장한 계엄군이 헬기로 국회의사당으로 진입했습니다. 많은 국회의원이 경찰 봉쇄를 뚫지 못 했거나, 우원식 국회의장이나 정당 대표 등 주요 요인이 계엄군에게 체포되는 일이 벌어졌다면 자칫 국회가 무력화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계엄 상황에서도 국회 활동은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데도 이번 계엄사 포고령에는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위헌 요소가 버젓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팩트체커는 예언가 아냐... '미래 예측'까지 검증하기 어려워
결과적으로 3개월 전 "윤석열 정부에서 계엄령은 불가능하다"는 <조선>의 팩트체크는 틀렸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윤석열 정부의 '비이성적 행위'를 탓하기에 앞서 <조선>이 '팩트체크'란 도구를 제대로 활용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팩트체커는 예언가가 아닙니다. 이른바 '팩트(사실관계)'가 포함된 정치인 발언의 정확성은 객관적으로 따질 수 있지만,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단순 음모론이나 '미래 예측'은 검증 대상으로 삼기 어렵습니다.
당시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탄핵 위기 상황이나 충암고 인맥 등 여러 정황을 근거로 제시했지만, '계엄령'과 인과 관계는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미래에 실제 벌어질 수도 있는 현 정권의 극단적 행동에 대비하자는 야당의 정치적 경고를 현재의 제도적·법률적 제약만 내세워 '음모론'으로 일축하면, 자칫 실제 계엄령이나 친위 쿠데타 가능성에 대한 사회의 경각심까지도 누그러뜨릴 수 있습니다.
3개월 전 실현 불가능하다고 외쳤던 계엄령이 막상 현실이 된 뒤에야 "김민석이 맞았다"고 해봤자 다시 주워 담기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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