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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어젯밤 11시 쯤, 중학생 딸 아이는 지금 이 계엄령이 긴급상황에 군인이 모든 걸 통제한다는 그 계엄령이 맞는 거냐고 묻는다. 엄마 어릴 때도 계엄령이 있었냐고도 한다. 내가 겪은 계엄령은 완전 기저귀 차는 아기일 때 있던 일이라 겪은 일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아이 침대에 같이 누웠다. 요새 아이는 자기 전에 나랑 침대에서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며 낄낄대는 걸 좋아한다. 사춘기 아이와 엄마 사이에 가장 중요한 건 친함을 잃지 않는 태도다. 이 시덥잖은 15분 대화가 우리의 친함을 이어주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요새 최대한 시덥잖기 위해 노력중이다.

아이는 당장 내일 학교는 어쩌냐며, 시험이 또 연기되는 거냐고 묻는다. 지난 10월, 임시공휴일 지정으로 아이 중간고사 일정이 바뀐 적이 있어서다. 한국전쟁 다시 시작인 거냐고도 묻는다. 검색 결과로는 다행히 전쟁은 아니다.

계엄령이 떨어지자마자 아이들 카톡에서도 여러 말이 오갔나보다. 아이는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었다. 계엄령 선포로 국민의 기본권이 무시되면 카톡으로 정부 욕한 사람 잡아가는 거 아니냐고 한다. 우리집 아이들은 밤 11시에 핸드폰을 안방에 놓고 각자 침대로 간다. 직전까지 하던 카톡이 아이 마음에 걸렸나 보다.

엄마가 너보다 더 어릴 때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을 잡아간 적도 있지만 2024년에 중학생 카톡을 감시해서 잡아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아이는 작게 한숨을 쉰다. 나는 아이를 끌어안았다. 괜찮아, 아무 일 없을 거야. 아빠랑 엄마가 다 지켜줄 거야, 라며 아이를 토닥거렸지만 정말 내가 아이를 지킬 수 있는 것인지 나도 불안했다. 아이는 내 토닥임이 통했는지 금방 쌔근쌔근 숨소리로 바뀌었다.

핸드폰을 보면 밤을 샐 거 같아서 나도 그냥 눈을 감았다. 6시 반에 알람 없이 눈이 떠졌다. 핸드폰을 켜자마자 계엄령 해제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자면서도 뾰족했던 신경들이 부드럽게 눕는다. 눈은 뻑뻑한데 다시 잠이 들진 않았다. 찻길과 가까운 방이라 마을버스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에는 시끄럽던 그 소리가 이렇게도 정답게 들릴 수 있는 게 놀라웠다.

7시 반에 아이를 깨웠다. 잠에 취한 목소리로 '학교 간대?'라고 묻는다. 계엄령 해제됐다하니 10분만, 하며 이불을 정수리까지 끌어당긴다. 이불을 예쁘게 펴주고 나왔다. 이불을 둘둘 말아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자는 둘째 아이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초등학생이지만 이미 나보다 커버린 아들, 만일 이 아이가 어젯밤에 군대에 있었다면? 나는 밤새 한숨도 못 잤을 거다.

집에서 이리 평화로운 얼굴로 깊은 잠을 자고 있는 아이를 보니 코끝이 찡해서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내 푸닥거리에 부스스 잠을 깬 아이는 엄마가 아침부터 왜 이러나 싶은 표정으로 나를 본다. 둘째는 일찍 잠든 터라 전날 밤의 난리를 모른다. 나는 그냥 이뻐서 그랬다며 아이를 더 꼭 안았다.

"엄마, 시험은 싫지만 전쟁은 더 싫겠지? 시험이 더 나을 때도 있어!"

어느새 씻고 나온 큰아이가 씩 웃으며 철든 소리를 한다. 시험 기간마다 지구 멸망이나 전쟁을 친구들과 떠들던 아이인데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바뀌었다. 무탈한 일상의 소중함을 아이도 이렇게 배운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도서관에서 예약도서를 받아서 자동차 서비스 센터에 갔다. 나쁠 것도 좋을 것도 없는 이 오전 일과가 세상에서 제일 고마웠다. 행복은 거창한 꿈이나 특별한 시간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

어제 예약한 일을 오늘 무심하게 할 수 있는 것, 그게 행복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의 햇살은 유난히 따뜻했다.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집 안을 부드럽게 감싸며 하루가 시작되는 그 순간이 마치 정결한 의식 같았다. 나도 모르게 경건해졌다.

오늘 밤, 나는 아이랑 침대에서 더 최선을 다해 시덥잖은 소릴 할 예정이다. 늘 세상 모르게 자는 둘째 얼굴도 아주 오랫동안 바라볼 거다. 아무것도 아닌 이런 하루가 아주 오래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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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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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12.3 윤석열 내란 사태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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