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두대 위에 올라서서
오히려 봄바람이 감도는구나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

강우규(姜宇奎, 1855~1920) 의사가 65세에 서대문형무소 사형 집행장의 단두대에서 남긴 유언이다. 새로 부임하는 제3대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폭살하고자 남대문역두에서 폭탄을 던졌으나 죽이지 못하고 붙잡혔다. 그리고 일제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순국하였다.

강우규는 1855년 7월 14일 평남 덕천군 무룡면 제남리에서 강재장의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모는 가난한 농부였다. 10여 세에 한문을 배우고, 성장하면서 한방의술을 익혀 한약방을 차려 생계를 꾸려 나갔다.

송상도의 <기려수필>에 따르면, "소년시절 한손으로 독수리를 잡을 정도로 용맹스러웠고 일찍이 서당에서 한문을 배워 그 뛰어난 기억력으로 총명함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30세가 되던 해 함남 홍원으로 이사하여 홍원읍 남문 앞에서 잡화상을 경영하였다. 한방에서 돈을 모아 제법 규모 있는 잡화상을 차리게 된 것이다.

생업에 종사하면서 교육에 관심을 보여 육영사업에 뛰어들었다. 계기가 된 것은 훗날 임시정부의 국무총리를 지낸 민족주의자 이동휘를 만나면서였다. 그는 근대적 교육자인 아버지의 뒤를 잇고, 교육을 통한 애국계몽운동에 나섰다. 강우규의 민족의식에 눈을 트이게 한 것이다.

1910년 경술국치로 국내에서 활동이 탄압을 받게 되자 가족 일부를 노령으로 보내고 그는 이듬해 간도와 노령으로 망명하여 한방의로서 생계를 유지하며 요하현의 신흥동에 정착. 교회를 세우고 한인들의 기독교 신앙과 민족의식을 고양시켰다. 1917년 초 신흥동에 사립 광동학교를 설립하여 한인교육에 열정을 쏟았다.

1919년 국내에서 3.1혁명이 발발하고 이 소식은 며칠 후 신흥동에도 전해졌다. 3월 4일 교민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였다. 3월 26일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박은식·최명숙·김치보 등과 노인동맹단을 결성하고, 그는 요하현 지부의 책임자가 되었다. 65세 이상의 우국 노인들이 중심이 된 단체이다.

노인동맹단은 총독부 폭파를 위한 결사대, 제2의 3.1혁명 시도, 일제 요인 척살 등을 준비하였다.

신흥동으로 돌아온 그는 요하현 지방을 순회하면서 동포들에게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자신이 직접 행동에 나서고자 러시아돈 50루블을 주고 미국제 고성능 폭탄과 수류탄을 구입했다.

그의 목표는 새로 부임하는 사이토 총독이었다. 1919년 6월 11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본 기선을 타고 14일 원산에 도착했다. 원산에 머물며 정보를 수집하고, 8월 4일 서울에 도착했다. 9월 2일 사이토가 특별 열차를 타고 남대문역두에 도착한다는 정보였다.

그는 폭탄을 명주 수건에 싸서 허리춤에 감추고 남대문역두에 나가 동원된 출영객 속에 몸을 숨기고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오후 5시 사이토가 거드름을 피우며 열차에서 내려 출영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쌍두마차에 오르는 순간, 소지했던 폭탄을 던졌다. 굉음이 진동하고 주위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폭탄을 마차에서 4미터 가까운 거리에서 작렬하여 사이토가 탄 마차에는 폭탄 파편 몇 개가 명중하고 그의 옷자락을 찢었다. 그 대신 무라타 소장 등 총독부 요인 등 37명이 사망하거나 큰 상처를 입었다.

비록 사이토 총독을 폭살시키지는 못했으나 많은 사상자를 내게 하였고, 일제 당국에 큰 충격을 던져 주었다. 특히 당사자인 사이토는 부임 초에 한국인 독립투사의 저항에 부딪혀 큰 충격을 입었음을 물론이다. (주석 1)

의거를 결행한 그는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와 그동안 도와준 지인들의 집과 여관에 은신하다가 9월 17일 총독부 조선인 경무 김태석에 붙잡혔다. 1920년 2월 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재판이 열렸다. 일본인 재판장이 사이토를 목표로 삼은 이유를 묻자, "일본이 불의로써 우리나라를 병탄했다. 이는 세계의 인도(人道)가 용서치 않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조선의 국민으로서 너희들의 노예로서 복종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나는 해외로 망명하면서 종교(기독교), 교육사업에 인심(人心)을 계발하고 인재를 양성하여 조국광복을 기도한 것도 죽음으로서 이룩하고자 한 결심이었다. 일본은 조선을 지배할 능력이 없으며, 따라서 이른바 동화(同化) 등은 치몽(痴夢)과 같은 것이다." (주석 2) 라고 당당하게 소신을 밝혔다.

일제 검사는 첫 공판에서부터 사형을 구형했다. 강우규 의사가 상급법원에 공소하였다. 그 이유를 들어본다.

내가 공소를 한 것은 결코 사형을 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최자남(의거 동지) 등을 변명 하기 위한 것이요. 그리고 검사가 나를 매명한이라 하니 나는 매명한이 아니요.…결코 사형을 면키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폭탄의 위력을 몰랐다. 내가 왜 그 불쌍한 신문기자나 사진반을 죽이겠소. (주석 3)

사형이선고된강우규 의사는 서대문형무소에서 마지막 날을 기다리며 아들 중건(重建)에게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는다고 조금도 슬퍼하지 말아라. 네가 만일 내 사형받는 것을 슬퍼하는 어리석은 자라면 내 자식이 아니다. 내 평생 나라를 위해 한 일이 너무 없으니 도리어 부끄럽다. 내가 자나깨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청년들의 교육이다. 내가 죽어서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지금은 훌륭한 사람들도 많으니 소홀할 리가 없겠지만 그래도 눈을 감으면 쾌활하고 용감히 살피는 13도의 청년들이 눈에 선하다. 너는 나의 이 유언을 전국 학교와 교회에 통지하여라. 조선청년이 향할 곳은 기독교이니 먼저 기독교를 믿어 심령을 밝게 한 후에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막내아이 영재는 재주가 있으니 끝까지 공부를 시켜야 할 것이다. (주석 4)

강우규 의사는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단두대에서 서두에 실린 유시를 남겼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주석
1> 김윤식, <속음청사>, 510쪽.
2> 박은식, <독립운동지혈사>18쪽, 상하이, 1920.
3> <동아일보>, 1920년 5월 8일.
4> 앞의 신문, 1920년 11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