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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자주 가던 중국집이 있었다. 생긴 지 3년 조금 넘었는데(내 기억을 믿을 수 없다. 요즘은 일 년 전인가 하면 4, 5년이 지났고 3년인가 하면 5, 6년이 훌쩍 지나버린 적이 많기 때문이다) 짬뽕을 잘하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중국 음식을 자주 먹지 않는데 그 집 짬뽕을 한번 맛본 후로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찾는 짬뽕, 그 불향 맛 사라진 가게의 주 메뉴였던 고기짬뽕. 불향이 스민 국물에 아삭거리는 숙주와 잘게 썬 돼지고기가 씹는 맛을 준다.
내가 찾는 짬뽕, 그 불향 맛사라진 가게의 주 메뉴였던 고기짬뽕. 불향이 스민 국물에 아삭거리는 숙주와 잘게 썬 돼지고기가 씹는 맛을 준다. ⓒ 박성은

육수로 깊은 맛을 낸 국물에 불맛이 스며 있어 칼칼함과 시원함이 다른 중국집에서 먹는 짬뽕과 달랐다. 아삭한 숙주를 듬뿍 넣고 돼지고기를 잘게 썰어 볶은 고명을 가득 올려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워 보이지만 씹을 때 아삭거리는 숙주 맛이 일품이었다. 금방 뽑아낸 굵은 국수 가락도 짬뽕 국물과 잘 어울렸다. 게다가 양도 넉넉해서 점심으로 한 그릇 비우면 저녁까지 든든했다. 출근할 때는 주말 외에는 시간이 나질 않아 자주 가지 못했는데 퇴직 이후에는 자주 가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짬뽕을 좋아했었나 싶게 동네 한 바퀴를 걷다가 불현듯 짬뽕 국물 맛과 불 향이 코에 스미는 듯하면 발길을 돌려 중국집으로 갔다. 겨울에는 운동하고 오다가 한 그릇, 가을에는 스산한 바람에 흔들리는 단풍이 멋있어서 한 그릇. 그러다가 올해 봄. 국수를 먹고 국물을 마시는데 땀이 나서야 아, 이제는 짬뽕 먹을 계절이 지나갔구나 하고 선선해지면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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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길을 걷다 그 집 짬뽕 국물과 아삭거리는 숙주 맛을 떠올리면 뭔가에 홀리듯 발걸음이 그리로 향했다. 집에 오는 손님들에겐 꼭 거기서 파는 짬뽕과 쟁반 짜장을 시켜주곤 했는데 모두 국물 맛이 기가 막히다고 했다. 주변에 맛집을 지니고 사는 자의 마음이 얼마나 뿌듯했겠는가.

지난주 갑자기 짬뽕이 생각났다. 불 향이 나는 국물의 유혹을 견디기 힘들었다. 가게에 갔는데 간판이 달라져 있었다. 내가 즐겨 먹던 고기 짬뽕이 메뉴에 없었다. 주인이 바뀐 것이다. 내가 간 날이 바로 새 주인이 가게를 이어받아 오픈한 첫날이었다.

아쉬워하는 나에게 서빙하시는 분은 전의 가게와 같은 짬뽕 육수를 사용하고 같은 맛을 내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얘기를 했다. 그러나 곧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일단 가게에는 점심시간이 갓 지났는데도 손님이 거의 없었다. 내가 자리를 잡고 앉아 주 메뉴인 빨간 짬뽕을 시키자 곧 부부로 보이는 두 명의 손님이 들어왔다. 전에 있던 사장이 아니라며 아는 척을 하면서 가게가 이사하였냐고 물었다. 주인이 바뀐 것을 무척 아쉬워하며 짬뽕과 짜장면을 시키는 그들을 보며 지나간 맛을 그리워하는 게 나만은 아닌 거 같아 위안이 되기도 했다.

음식 역시 내가 원한 맛이 아니었다. 좋아하는 물 오징어와 호박이 고명으로 올라간 모양새는 그런대로 먹을 만했으나 국물은 너무 빨개서 맵고 기름기가 가득했다. 칼칼한 뒷맛과 불 향은 찾을 수 없었다. 아삭아삭 입안에서 씹히던 상쾌한 숙주 맛이 간절했다. 내가 이렇게나 짬뽕을 좋아하고 그리워한 사람이었나?

음식은 추억과 함께 다가온다. 누군가와 먹었던 음식의 맛과 향이 공간과 어우러져 오랜 시간 동안 기억에 남는다. 그러므로 음식을 먹는다는 건 기억 속에 축적된 추억의 시간을 더듬는다는 말과 같다. 추억은 시간 속에서 오래 오래 발효되어 내 삶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음식은 추억의 매개체가 되고 추억을 불러오는 촉진제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과 먹은 음식이 떠오를 때 대상과 음식은 하나가 되어 추억 속에 저장되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소중한 추억 하나를 잃었다. 길을 걷다가 쌀쌀한 바람에 코끝이 맵고 뺨이 얼어붙을 때 시원하게 녹여주던 따스한 맛과 향을 잃었다. 고작 한 그릇의 짬뽕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내게는 만나기 쉽지 않은 추억의 한 조각이었다.

앞으로 어디에서 전의 그 맛을 찾을 수 있을지 걱정하는 내 마음에 우리 인간은 모두 잃어버린 맛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이게 음식에만 국한된 것일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각인된 맛과 향을 찾아 이리저리 떠도는 유목민.

나는 내가 맛본 불 향이 스민 칼칼하고 담백한 깊은 국물 맛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그 맛을 찾기 위해 여러 중국집을 탐색할 수도 있다. 어쩌면 나란 인간은, 아니 우리는 기억하는 아름다움을 찾아가기 위해 인생을 사는 건 아닐까. 설령 영원히 찾지 못한다 해도. 진한 아쉬움은 남겠지만.

나는 오늘도 걷는다. 그 무엇을 찾기 위해. 내 피에 흐르는 유목민의 뜨거움을 잠재우며 고작 한 그릇의 짬뽕을 찾기 위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추억#그리움#유목민의삶#우리가찾는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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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은 (gogolik) 내방

은퇴 후 얻게 된 자유로운 시간을 일상의 변화를 통해 새롭게 조각해 가는 초보 은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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