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장애인의 ‘자립’은 그 자체로 주목할 만한 가치를 지닌다. 시설이나 가족의 품을 벗어나 이동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 일할 권리 등 어느 하나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사회에 온몸으로 맞서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애인의 자립에는 적지 않은 품이 든다.

만연한 장애인 차별 요소들을 극복하는 데 공동체의 지원과 지지, 응원이 수반돼야 한다. 한 장애인의 자립을 납작하게 다룰 수 없는 이유다. 자립하기까지의 과정과 당사자의 주변 관계, 그리고 당사자의 목소리를 함께 살펴보았다.

9년간의 자립 준비 끝에 지난 4월 드디어 자립한 자폐성 장애인 이명섭(29, 읍 마암리)씨의 이야기다.
 9년 만에 자립에 성공한 자폐성 장애인 이명섭씨
9년 만에 자립에 성공한 자폐성 장애인 이명섭씨 ⓒ 옥천신문

2015년 봄, 이제 막 스무살이 넘은 명섭씨는 누나를 따라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IL센터) 문을 두드렸다. 누나는 학교를 졸업한 명섭씨를 돌봐줄 여러 장애인복지시설을 찾아 등록시켰지만, 명섭씨는 번번이 적응하지 못하고 나왔다. 그렇게 돌고 돌다 찾은 곳이 IL센터였다.

명섭씨는 사람과의 만남을 극도로 기피했다. IL센터를 처음 왔을 때도 구석에 쪼그려 앉아 우는 모습을 보였다. 주보호자였던 누나는 이런 명섭씨를 돌볼 곳이 마땅치 않다며 읍소했고, IL센터는 명섭씨를 지원하기로 했다. 단, 약속을 제안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명섭씨가 울든 뭘 하든 센터에 보내달라고. 그것만 지켜준다면 센터에서의 시간은 센터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명섭씨는 약속을 지켰다. 그날 이후로 지금껏 벌써 10년 가까이 센터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용만 9년째… 길고 길었던 자립 준비 기간

AD
사람을 무서워 했던 명섭씨는 후드 모자를 뒤집어쓰고 마스크를 쓴 채 눈만 내놓고 센터에 처음 나타났다. 무더운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모자와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그래도 IL센터는 재촉하지 않았다. 명섭씨가 센터 이용자들과의 관계에 적응하고 스스로 벗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1년 뒤 장애인평생교육시설 해뜨는학교의 개학일에 명섭씨가 모자와 마스크를 벗고 나타났다.

당시를 회상한 해뜨는학교 최명호 교장은 "모자와 마스크를 벗고 나타난 명섭씨한테 후광이 보였다. 그 정도로 많이 변화된 모습이었다. 물론 그 모습도 오래 가진 못했지만 그런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변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라고 말했다.

명섭씨의 성장 속도는 결코 빠르지 않았다. 자기만의 세계를 지키고자 하는 경향이 강한 자폐의 특성처럼 명섭씨는 자신만의 루틴(생활 습관)이 명확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가야 하고, 정해진 일을 해야 했다. IL센터는 굳이 이를 깨려고 들지 않았다. 루틴대로 사는 게 사는 데 큰 문제가 없다면 고칠 이유도 없다고 봤다.

명섭씨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답변이 일주일이 되어도, 2주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지만 기다렸다. 오래 걸려도 결국 답변은 돌아온 것처럼, 명섭씨는 더디지만 분명히 성장할 거라 믿고 지원했다.

변화는 나타났다. 명섭씨를 옛날부터 봐온 학창시절 선생님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깜짝 놀라곤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어울리는 명섭씨의 모습 자체가 눈에 띄는 성장이었다. 최근에는 IL센터에서 배운 난타로 수많은 관객 앞 무대에 섰고, 충북 요리대회에 참가해 수상을 하기도 했다. 인파 속에서 장애인 권리를 외치는 투쟁길에 오른 것도, 낯선 이들이 지나다니는 거리 위에서 1인 피켓 시위를 한 것도 명섭씨가 자진해 펼친 일들이었다.

최명호 교장은 "우리는 애초부터 '자립'을 목적으로 뒀기 때문에 9년 동안 자립 준비에만 집중을 해왔다. 명섭씨 누나에게도 처음에 '(명섭씨가 자립하는 데) 1~2년이 걸릴지 5~10년이 걸릴지 모른다. 그 시기가 되면 얘기할 테니 우선 센터를 믿고 명섭씨를 보내만 달라'라고 당부했다"라며 "명섭씨가 IL센터나 해뜨는학교뿐만 아니라 복지관 등 여러 기관들을 다니면서 대인관계를 늘리도록 하는 게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장애 있다는 이유에서 임대차 계약 거부 당해

명섭씨가 본격적으로 자립을 준비한 건 약 4년 전 체험홈에 입주하면서부터다. 어머니와 함께 살던 삼청리 집에서 나와 장애인 자립 준비 시설인 체험홈(읍 문정리)으로 이사했다. IL센터 자립지원팀과 활동지원사의 지원을 받아 요리와 세탁, 청소 등 집안일을 배워 나갔고, 체험홈에 입주하면서 세대주를 분리해 수급비를 직접 수령하며 통장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당시 명섭씨가 거주한 체험홈은 남성 이용자 2인이 입실할 수 있는 공간으로, 명섭씨에 이어 30여년 넘게 시설에서 살다 나와 자립 준비를 하던 김훈재(55)씨가 입주했다. 둘은 그렇게 룸메이트로, 지금은 둘도 없는 형동생 사이가 됐다.

지난해 2월 김훈재씨가 먼저 자립을 선언하며 "명섭아, 나 먼저 갈게"라는 말을 남기고 체험홈을 떠났다. 2년이 채 안 돼 자립한 형을 보며 명섭씨는 마음이 아팠단다. 함께 지낸 형의 빈자리도 컸지만, 무엇보다 본인도 자립을 이루고 싶은 욕망이 컸다. 하지만 형이 한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년간 준비해온 자립에 나서고 싶다가도 막상 혼자서 지낼 생각을 하니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들이 사무쳤다. 그럴 때마다 IL센터 자립지원팀 최지유 담당자에게 문자를 보내 속사정을 알렸다.

최지유 담당자는 "명섭씨가 평소에 자립 의지는 강했는데, 가끔 두려움 같은 것들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자립을 하면 센터의 지원이 끊기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명섭씨에게 자립을 한 뒤에도 체험홈에 있을 때처럼 센터의 지원은 계속될 거라고 반복해서 얘기해줬다. 혼자가 아니라고. 그렇게 자립을 했고, 그 뒤로 사후관리도 계속 이루어져 지금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라고 설명했다.

명섭씨는 지난 4월 체험홈에서 나와 마암리에 있는 한 원룸으로 이사했다. 공공에서 관리하는 공간이 아닌, 조금 더 '내 집'에 가까운 공간으로 거처를 옮겼다. 하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장애인들이 자립 과정에서 당면하는 대표적인 차별은 집을 구하는 데서부터 발생한다. 입주자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접한 집주인, 부동산 관계자들은 집 계약에 인색했다.

명섭씨도 읍내 한 원룸 입주를 희망했으나 명섭씨에게 발달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접한 집주인이 계약을 거절했다. IL센터는 '명섭씨가 발달장애가 있지만 소통이 충분히 가능하니 우선 명섭씨와 만나보고 결정하면 안 되겠냐'고 요청했지만, 집주인은 만남조차도 거부했다. 그래서 명섭씨는 자립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집을 구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라고 답변했다.

 자폐성 장애인 이명섭씨
자폐성 장애인 이명섭씨 ⓒ 옥천신문

조그마한 원룸에 불과하지만 온전히 자신의 물건으로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해뜨는학교 수업에서 만든 미술, 공예 작품들이 옹기종기 전시돼 있었고, IL센터에서 참여한 웨딩체험 때 턱시도를 입고 찍은 독사진이 액자에 담겨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취미인 요리를 할 수 있는 부엌도 작지만 깔끔하고 아기자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제는 혼자 사는 데 적응했다는 명섭씨는 "누나도 잘 살라고 응원해줬다"라며 "IL센터 임경미 소장, 최명호 사무국장, 박정하 팀장, 김선희, 최지유 활동가에게 감사하다. 저의 자립을 도와주셨다. 앞으로 결혼도 하고 잘 살겠다"라고 말했다.

명섭씨는 내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금구리 일원에 건립한 영구임대주택에 입주할 예정이다. 높은 임대료 부담을 덜 수 있게 됐고, 무엇보다 지금 집과 달리 햇빛이 잘 드는 집으로 이사한다는 데 크게 만족해 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옥천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자립#장애인#IL센터#자폐#공동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지역의 공공성을 지키는 풀뿌리 언론 <옥천신문> 입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