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진은 2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
사진은 2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 ⓒ 연합뉴스

1983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던 정진태씨의 재심 신청(2024년 8월 2일 신청, 2024재고단17 서울남부지법)에 대해 검찰이 최근 재심 기각결정 의견을 제시했다. 이 사건은 1983년 정씨가 북한을 이롭게 하고 반제반자본 투쟁을 꾀할 목적으로 반국가단체를 찬양 고무하며, 불온 서적 등을 소지, 탐독하였다는 혐의였다. 이 혐의로 정씨는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후 출소 했다가 올해 8월 2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 불법감금, 가혹행위로 인해 사건이 조작되었다며 재심을 신청한 상태다.

정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변호인의 재심 개시 근거는 불법감금과 가혹행위이다. 특히 불법감금의 경우 1983년 2월 15일경 구속영장이나 체포영장 없이 정씨가 경찰에 체포되어 3월 9일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전까지 관악경찰서 등에서 구금된 채 가혹행위를 당하며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사건내용이 조작되었다는 것이다.

정씨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서울남부지방검찰은 최근 재심 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씨의 변호인에 따르면, 검찰이 재심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근거는 불법 감금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검찰의 불법 체포, 감금에 대한 입장을 살펴보면, 정씨가 검거되었다는 1983년 2월 15일에 작성된 '범죄인지보고(검거)' 보고서만으로는 불법감금을 단정할 수 없다고 한다. 특히 위 보고서에 사용된 '검거'라는 단어는 '입건'이나, '적발'이라는 의미일 뿐, '임의동행' 또는 '체포'에 해당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따라서 위 보고서만으로는 '적법한 임의동행'이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정씨가 1983년 2월 15일경 체포되어 같은 해 3월 9일까지 경찰서에 계속 감금되었는지 여부도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특히 1983년 3월 9일 발부된 구속영장은 영장이 3월 9일에 발부되었다는 증명할 뿐 정씨가 그 전까지 계속 체포상태였는지, 귀가조치되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정씨의 변호인은 검찰의 이 같은 의견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검찰의 주장대로 1983년 2월 15일 검거한 것이 계속된 '체포'상태가 아니라 단지 '적발'이나 '입건'의 의미로만 사용했는지 여부는 이미 재심을 청구할 당시 제출한 기록을 꼼꼼히 살펴보았다면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한다.

정씨가 불법 체포된 후 20여 일간 경찰에 불법감금되었다는 근거의 첫 번째는 정씨가 체포된 후 행방불명 된 정씨의 행방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정씨 부모가 서울남부지검에 제출한 탄원서이다. 1983년 3월 16일 서울남부지청(현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제출한 탄원서에 따르면. "지난 2월 14일 감자기 경찰관이라는 분들에게 연행되어 저희들은 놀라서 그 이튿날 서울에 와 보니 간 곳조차 알 길이 없어서" 행방을 찾던 중 "(관악경찰서에) 연행된 사실을 알게 되어" 면회를 요구했으나 "조사중이라 안된다는 겁니다. 그제서야 관악서에 있음을 알고 서울에서 묵으면서 진태 소식이라도 들을까 하고 3월 9일까지 매일 같이 경찰서로 갔던 바"라고 하였다. 즉 정씨는 연행된 뒤 관악경찰서에 체포된 이후 한 번도 경찰서 밖으로 나오지 못했고, 면회 조차 허락되지 않는 구금상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83년 3월 16일 정씨의 부모가 제출한 탄원서. 위 탄원서 내용 중 정씨의 체포와 연행, 불법감금에 대한 내용이 확인된다.
1983년 3월 16일 정씨의 부모가 제출한 탄원서. 위 탄원서 내용 중 정씨의 체포와 연행, 불법감금에 대한 내용이 확인된다. ⓒ 변상철

정씨 역시 1983년 8월 13일 작성한 '항소이유서'에서 "본 피고인(정 씨)은 1983년 2월 15일~3월 8일까지 24일 동안 관악경찰서 학생보호실과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불법감금 되어 갖은 고문과 정신적 공포에 시달리면서 내란음모죄로 조사를 받았습니다. 증거라는 것은 오직 제가 연구목적으로 기록했던 시민봉기의 전개과정이라는 메모지 몇 장 뿐이었습니다"라고 적고 있다. 또한 검찰에 송치되기 전 수사관으로부터 "검사도 동정하고 있으므로 억울한 일은 없을 것이다. 일일이 시비를 가리지 말고 용서나 빌어라"고 하였다고 한다.

정씨는 이어 "모진 고문과 공포 속에서 어떤 처벌을 받을까 떨다가 대공과로 이첩되면서 이와 같은 말을 듣자 사지에서 풀려난 듯 안도감과 함께 긴장이 풀렸습니다. 그 뒤 곧 검찰에 송치되어 검사로부터 '너는 국가내란죄나 반국가단체구성죄로도 충분히 엮을 수 있고, 계속 수사할 수도 있으나 공산서적소지죄 7조 5항만으로 기소할 것이다. 고분고분해야지 조금이라도 뭣하면 혼난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검사의 비위를 거슬려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경찰조사와 내용이 같은 심문에 경찰에서와 같이 시인하고 말았던 것입니다"라고 적고 있다.

 1983년 8월 정씨가 구치소에서 작성한 항소이유서. 이 항소이유서에는 정씨의 구금일자, 불법 수사 등을 주장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1983년 8월 정씨가 구치소에서 작성한 항소이유서. 이 항소이유서에는 정씨의 구금일자, 불법 수사 등을 주장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 변상철

위 두 기록에 의하면 정씨는 1983년 2월 15일경 서울 관악경찰서로 연행된 뒤 검찰에 송치된 이후에도 가족과의 면회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즉 귀가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물론 '계속된 체포'상태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수십 년이 지난 과거사 사건은 수사기록이 온전히 존재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더욱이 기록이 온전치 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기록 내용 중 불법 수사에 관한 내용을 일반 시민이 가려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40여 전 사건에 대한 객관적 증거를 찾기 매우 어렵고, 현재 재심을 담당하는 변호인, 검찰, 법원에서 정씨가 제출한 기록과 증거 이외에 또다른 증거를 제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현재 제출된 기록에 나타난 불법체포, 불법감금의 내용에 대해 객관적 증거라고 인정하지 못하는 검찰에 입장에 대해 정씨와 변호인은 '검찰의 과거사를 대하는 태도가 안 변했다'며 크게 아쉬워하고 있다. 정씨와 변호인은 '이미 제출된 기록만으로 과거 불법수사가 이뤄졌다는 것이 명백하다. 과거에 잘못된 수사와 기소로 인해 생긴 피해를 사과하는 마음에서라도 재심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재심개시를 인정했으면 한다'는 말을 남겼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변상철씨는 공익법률지원단체 '파이팅챈스' 국장입니다. 파이팅챈스는 국가폭력, 노동, 장애, 이주노동자, 군사망사건 등의 인권침해 사건을 주로 다루는 법률 그룹입니다.


#재심#과거사#파이팅챈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