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5일 금요일 오후 7시, 고려대학교 중앙광장 지하 1층 CCL(CJ Creative Library)에서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 유가족과 함께하는 고려대학교·서울여자대학교 간담회'가 열렸다. '소셜투어 4기: 기억을 이어가는 여행'의 일환으로 진행된 간담회는 고려대·서울여대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 기획단이 주관하고, 고려대학교 생활도서관, 고려대학교 제54대 총학생회 나날 인권복지국과 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가 공동주최했다.
간담회 이틀 전에 경희대학교 교수진이 발표한 시국선언문에 가시처럼 목에 걸리는 구절이 있었다. "나는 이태원 참사 이후 첫 강의에서 출석을 부르다가, 대답 없는 이름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알지 못했다." 이는 특히 대학 사회에서 이태원 참사가 어떤 의미였는지 보여주는 문장이었다.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이들의 대부분은 20대 청년들이었고 더러는 대학생이었기에 몇몇 대학에서는 참사 후 학내에 분향소를 설치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분향소에서 같은 교정을 걷던 학우를 추모하는 것 이상은 할 수 없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벌어진 참사라는 것, 나 혹은 누구라도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는 충격, 희생자들을 지켜주지 못한 국가에 대한 실망과 분노는 그저 각자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이태원 참사 2주기가 찾아왔다. 지난 2년간 정부는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계속해서 회피해왔고 아직 진상 규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는 중에 이태원 참사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조금씩 멀어져 가는 것이 아닐지, 이대로 참사를 지우려는 정부의 뜻대로 서서히 잊혀가는 것은 아닐지 우려되기도 했다. 수많은 사건이 날마다 쏟아지는 데다가 사회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기에 우리의 일상은 너무나 각박해지고 있다.
그렇기에 이태원 참사 2주기 추모 행진에 갔을 때도, 이번 간담회를 준비하면서도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까?'라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그 걱정은 매번 말끔히 씻겨 나갔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을 가득 채운 이들, 짧지 않은 간담회 시간 내내 귀를 기울이며 눈물 흘리는 얼굴들을 보며 알게 되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고 있었다. 함께 슬퍼하고 아파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렇다면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여기에 아직도 우리가 슬퍼하며 기억하고 있음을, 그리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앞으로도 기억할 것임을 주변에 알리고 서로의 힘이자 다짐이 되기 위하여.
![지난 11월 15일에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 유가족과 함께하는 고려대학교·서울여자대학교 간담회 진행 모습](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4/1202/IE003384484_STD.jpg)
▲지난 11월 15일에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 유가족과 함께하는 고려대학교·서울여자대학교 간담회 진행 모습 ⓒ 소셜투어
주말 저녁에 택시도 없고, 이태원까지 뛰어갔었죠
그런 노력의 하나로 준비한 대학 연속 간담회의 마지막 순서였던 고려대·서울여대 간담회는 희생자 유연주씨의 아버지이자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부운영위원장 유형우씨가 패널로 참석했다. 이태원 참사 당일의 이야기부터 정부의 이해할 수 없는 대처, 특별법 통과와 관련 책임자들의 판결, 기억공간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태원 참사를 둘러싸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 문제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간담회가 열린 11월 중순의 가을 풍경처럼 2년 전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던 날도 단풍이 예쁘게 물들었다. 연주씨는 친구들과 이태원에 핼러윈 축제를 즐기러 갔고, 유형우씨 부부는 단풍 구경과 산책 겸 광화문에서부터 자택이 있는 청구역 근처까지 걸어왔다. 밤 11시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태원에서 인명 사고가 일어났다는 뉴스를 보고 그대로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시간이 늦어 이미 지하철은 끊겼고, 주말 저녁이라 택시도 잡히지 않는 상황에 유형우씨와 가족은 그저 이태원을 향해 뛰는 수밖에 없었다.
지하철 한 정거장 정도를 뛰어가니 경찰차가 있었다. 그때 연주씨가 지내던 대학 기숙사로부터 지금 바로 가톨릭대학교 병원으로 가보라는 연락을 받았다. 마음이 다급해진 연주씨의 가족은 경찰에게 사정을 말하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주취자 단속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했다. 주변을 지나는 택시들에 도와달라고 매달린 끝에 한 택시에 합승하여 병원까지 올 수 있었다는 유형우씨의 말에서 그때의 혼란스러웠던 상황이 그대로 느껴져 왔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연주씨는 이미 심정지 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꼭 살아있는 것처럼 얼굴에 인상을 쓰고 있었다. "아빠가 왔는데 아무것도 못 해주는 게 너무 속상하고, 힘없는 아빠가 된 것 같아 미안했어요." 유형우씨는 지금도 연주씨가 그때 인상을 쓰며 무슨 말을 하려 했을까, 아빠에게 도와달라고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고 말했다.
![발언하는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부운영위원장 유형우씨(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연주 씨 아버지)](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4/1202/IE003384486_STD.jpg)
▲발언하는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부운영위원장 유형우씨(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연주 씨 아버지) ⓒ 소셜투어
의문만 남긴 경찰 수사와 국정조사
그날부터 연주씨의 가족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만 가득 일어났다. 소통을 위해 유가족에게 한 명씩 배정되어 있던 전담 경찰은 연주씨와 함께 이태원에 갔다가 사고를 당한 친구가 연주씨의 장례를 치르고 있던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뒤늦게 알아차린 유형우씨가 경찰에게 묻자 죄송하다, 몰랐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또 경찰은 연주씨의 통장 내역을 조회했다. 이 역시 무슨 경위인지 따지자, 경찰은 연주씨가 이태원에 가는데 사용한 교통수단을 알아내기 위해서라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을 내놓았다.
참사 이후 꾸려진 이태원 참사 특별수사본부(아래 특수본)와 국정조사는 이태원 참사의 원인을 단순히 인파 밀집의 문제로 파악하여 안전 관리의 책임을 당시 근무했던 공무원 중 누구에게 물을 것인지에 집중되었다. 이 때문에 가장 큰 책임을 갖고 있는 고위공직자 박희영 용산구청장,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등이 책임을 피해 가고 최근 판결에서 무죄를 받고 풀려날 수 있었을 거라고 유형우씨는 추측했다. 현재 이태원 참사 발생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로 기소된 각 기관 책임자 중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이임재 전 용산구청장(금고 3년)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통과시킨 법안이 그거 하나밖에 없어요"
위와 같은 이유로 유가족들은 경찰로부터 독립된 특별조사위원회(아래 특조위)가 이태원 참사를 조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조위 설치, 이태원 참사 피해자의 권리 보장 등의 내용을 담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도 불구하고 이후 여야의 합의로 올해 5월에 통과되었다.
특별법에 기초한 이태원 참사 특조위는 지난 9월에 출범해 활동을 시작했다. 대통령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하고 이유를 알 수 없이 특조위원 임명을 늦추는 등 지금까지 정부에 의해 진상 규명이 지연되어 온 것에 대해 유형우씨는 "시간이 가는 것이 두려워요.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가기 전에 최대한 조사를 해야 하고 유가족과 생존자의 증언을 수집해서 당시 참사 현장에 대해 정확히 밝혀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지금처럼 현장 공무원의 안전 관리 책임만 논하며 이태원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조사하는 것이 묻히는 것도 두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여야 합의 과정에서 특별법의 내용을 협상하면서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하루라도 빨리 진상 규명을 위한 조사를 하는 게 먼저라는 것이 유가족의 입장이었다고 유형우씨는 덧붙였다.
![유가족 패널에게 질문하는 간담회 사회자 안혜림(좌), 이다인(우)](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4/1202/IE003384490_STD.jpg)
▲유가족 패널에게 질문하는 간담회 사회자 안혜림(좌), 이다인(우) ⓒ 소셜투어
기억 공간, 유가족과 시민의 힘으로
유가족들은 정부에 의해 뿔뿔이 흩어져있다가 그해 11월 중순 경에 모이기 시작했다. 모인 유가족들이 녹사평역에 마련한 분향소는 유가족이 함께 슬픔을 견디고 위로하는 공간이자 이태원 참사의 진상 규명이 필요함을 계속해서 사회에 알리는 창구였다. 그런 이유로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고 서울시청이 있기도 한 광화문으로 분향소를 옮기려는 시도가 있었고, 최종적으로는 시청 앞으로 분향소를 옮기게 되었다.
정부는 이러한 유가족의 노력과 기억 공간 운영에 대해 그 어떤 지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울시는 시청 앞에 설치한 분향소가 불법 점거라며 철거 명령을 내리고 과징금을 청구했다. 두 번의 여름과 겨울을 시청 앞 광장 한 켠에서 보낸 유가족들은 올해 6월에야 서울시의 협조로 을지로1가 부림빌딩에 기억 공간 '별들의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현재 별들의 집은 임대 기간 만료로 새 보금자리를 찾아 경복궁역 근처의 적선빌딩으로 이전한 상황이다. 별들의 집에서 유가족은 기억 팔찌 만들기, 유가족 간담회 등 여러 활동을 하며 시민과 함께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고 투쟁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정부로부터 외면받다 보니 유가족들이 정말 힘들 때가 많아요. 시민 여러분이 연대해 주시고 공감해 주시면 유가족에게 큰 힘이 됩니다."
![간담회 참석자들이 포스트잇에 적은 질문과 연대의 메시지](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4/1202/IE003384491_STD.jpg)
▲간담회 참석자들이 포스트잇에 적은 질문과 연대의 메시지 ⓒ 소셜투어
한 번에 하나씩, 모든 것을 이뤄내는 사람
유가족 패널과 사회자의 대담 시간 후에 이어진 청중과의 질의응답에서 한 참석자가 유형우씨에게 이번 간담회에 패널로 참석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유형우씨는 학생들을 보면 연주를 만나는 것 같고, 연주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주게 되는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이런 자리에서 이렇게 희생자의 부모로서 여러분들한테 이런 얘기를 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못 꿨어요. 저는 그냥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아이를 잘 키우려고 열심히 일하던 아빠였을 뿐이에요. 그런데 지금 투쟁가가 되어 있어요. 이 자리에 제가 또다시 앉지 말아야 하고 여러분의 부모님, 또 다른 가족들이 이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저는 (참사를) 겪었기 때문에 다시는 이런 참사를 겪지 말자는 차원에서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노력을 해야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지 말씀드리고 싶어서 오게 되었습니다."
연주씨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즐거웠던 추억이 있다면 들려주실 수 있을지 묻는 말에 유형우씨는 한결 부드러운 말투로 연주씨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연주씨는 노력파였다. 1분 1초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던 사람이었다고 유형우씨는 기억한다. 플래너를 사달라고 해서 사주니 1년 치 계획을 세우고 한 단계씩 차근차근 밟아 나가던 사람. 경찰관의 꿈을 위해 1종 보통 운전면허 시험에서 일곱 번을 떨어져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서 결국은 이뤄내는 사람.
이태원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참사가 또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지금보다 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앞으로 해야 할 것이 많을 것이다. 때로는 절망하고 좌절할 일도 많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연주씨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야 할 길이 멀고 끝은 보이지 않을지라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 보면 우리는 결국 바라던 세상에 이르게 될 거라고 믿는다.
간담회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 기억과 마음을 나누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기꺼이 같은 시민으로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이웃으로서, 친구로서, 한 명의 사람으로서의 슬픔을 함께하고자 모인 간담회 참석자들이 더 나은 사회를 희망하기 위한 힘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앞으로 대학을 비롯한 우리 사회 곳곳에 더 많은 연결과 연대의 접점이 생긴다면 좋겠다. 그것을 바탕으로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회적 참사들이 어느 것도 잊히지 않고 기억되기를,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의지가 모여 변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 유가족과 함께하는 고려대학교·서울여자대학교 간담회 단체사진](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4/1202/IE003384493_STD.jpg)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 유가족과 함께하는 고려대학교·서울여자대학교 간담회 단체사진 ⓒ 소셜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