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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소녀가 있다. 그림에 재능이 있는 두 소녀는 강원도 두메산골, 전교생 7명 작은 중학교의 같은 반 친구다(관련 기사: 전교생 7명 중학교 운동회는 이렇게나 다릅니다 https://omn.kr/2aix7 ).

채린이와 윤아가 그 주인공이다. 채린이는 엄마의 고향인 삼척시 하장면에서 태어나, 엄마의 모교이기도 한 하장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조그마한 산골 마을에서 '독보적으로' 그림 잘 그리는 아이로 통했다.

무기력(이채린) '무기력'를 주제로 채린이가 그린 그림이다. 자신이 꼬리가 잘리고 접시 위에 올려져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의 인어를 표현했다. 더 많은 그림은 12월 18일~21일 삼척문화예술회관 제1전시실에서 감상하실 수 있다.
무기력(이채린)'무기력'를 주제로 채린이가 그린 그림이다. 자신이 꼬리가 잘리고 접시 위에 올려져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의 인어를 표현했다. 더 많은 그림은 12월 18일~21일 삼척문화예술회관 제1전시실에서 감상하실 수 있다. ⓒ 이채린

윤아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빠의 고향인 하장으로 이사 왔다. 어렸을 때부터 연필로 글씨를 쓰는 일보다 그림 그리기를 훨씬 많이 했다는 윤아의 등장으로 백두대간을 품은 이 작은 마을은 두 명의 화가도 품은, 명실공히 축복의 땅이 된 것이다.

미술학원 한번 다녀본 적 없이 그저 혼자 그리고 또 그리며 꿈을 키워온 윤아와 채린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인 지금까지 같이 그림 그리며 단짝 친구로 지내고 있다.

서로의 그림 실력에 놀란 두 소녀... 교사들도 자주 놀랐다

용기(전윤아) '용기'를 주제로 윤아가 그린 그림이다. 박스 안에 고양이가 있음에도 치즈를 얻으려는 쥐의 용기를 그렸다. 더 많은 그림은 12월 18일~21일 삼척문화예술회관 제1전시실에서 감상하실 수 있다.
용기(전윤아)'용기'를 주제로 윤아가 그린 그림이다. 박스 안에 고양이가 있음에도 치즈를 얻으려는 쥐의 용기를 그렸다. 더 많은 그림은 12월 18일~21일 삼척문화예술회관 제1전시실에서 감상하실 수 있다. ⓒ 전윤아

각자의 세계에서 그림으로 주목받으며 살아온 두 소녀는 서로의 그림을 보고 처음에는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언제나 '그림 잘 그리는 아이'라고 하면 자신을 가리켰던 말이었는데 '어라! 저 친구도 엄청나네!'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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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고 순한 성정의 두 친구는 서로의 그림을 질투하지도 않고 희희낙락 그림 그리고 감탄하며 소박하고도 경이로운 매일을 보내고 있다.

나는 두 소녀의 담임교사이다. 작년, 채린이와 윤아가 입학했을 때부터 둘의 그림으로 우리 학교 교무실에서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자주 감탄이 쏟아졌다. '무언가'를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장중 벽화 디자인(전윤아) 윤아가 디자인한 하장중 벽화이다. 키스해링의 작품을 오마주하여 작년 하장중 전교생 6명의 캐릭터를 담았다.
하장중 벽화 디자인(전윤아)윤아가 디자인한 하장중 벽화이다. 키스해링의 작품을 오마주하여 작년 하장중 전교생 6명의 캐릭터를 담았다. ⓒ 홍정희

작년 미술 시간에 전교생이 학교 벽면에 벽화 그리기를 할 때 그 디자인을 윤아가 했다. 교실 칠판에 시시각각 그려지는 귀여운 캐릭터들은 채린이의 작품일 경우가 많았다.

국어 시간에 아이들이 직접 창작한 그림책을 출판하여, 온라인 서점에서 절찬 판매 중이기도 하다.

<나의색>(이채린), <거울>(전윤아) 두 친구가 출간한 그림책은 온라인 서점에서 절찬 판매중이다.
<나의색>(이채린), <거울>(전윤아)두 친구가 출간한 그림책은 온라인 서점에서 절찬 판매중이다. ⓒ 홍정희

그리고 그 '무언가'의 결정판으로 우리 교사들은 두 예비 화가의 전시회를 열기로 작당했다. 작년부터 계획하여 올해 학교 예산을 정할 때 전시회 예산을 따로 반영해 두었다. 지나온 1년, 두 친구는 부지런히 그림을 그렸다.

교사들은 지역의 문화예술회관을 대관하고, 두 친구가 그린 그림에 맞는 액자를 선별하여 주문하고, 팸플릿을 만들고, 학교 유튜브를 개설해 전시회 홍보를 시작했다. 윤아, 채린이와 같은 반인 병준이는 전시회 팸플릿에 두 친구를 소개하는 글을 썼다.

"그림 잘 그리는 두 친구가 한 교실에서 만난 것도 대단한 우연인데, 윤아와 채린이는 서로 질투도 하지 않으면서 사이좋게 같이 그림 그리고 서로의 그림을 칭찬하며 잘 지냅니다. 저는 두 친구에게서 그런 아름다운 우정을 배웠습니다. 제 친구들의 그림을 따뜻한 마음으로 감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팸플릿(앞) 하장중학교 전시회 팸플릿(앞)
팸플릿(앞)하장중학교 전시회 팸플릿(앞) ⓒ 홍정희

이제 모든 준비가 되었다. 백두대간에서 탄생한 두 화가의 그림 전시회가 곧 열린다. 주제는 '감정'이다(청소년들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에 대해 표현했다고 한다).

만약 강원 삼척 가까이 사신다면, 또는 강원도로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다면 무한히 성장할 두 예비 화가의 그림을 보러 와주셨으면 좋겠다.

전시일과 전시장소는 다음과 같다. 오는 12월 18일(수) ~ 21일(토)까지, 강원 삼척문화예술회관 제1전시실이다. 두 친구의 인사말을 덧붙이며, 제자들의 그림을 널리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 담임의 노골적 홍보 기사를 이만 마칠까 한다.

팸플릿(뒤) 하장중학교 전시회 팸플릿(뒤)
팸플릿(뒤)하장중학교 전시회 팸플릿(뒤) ⓒ 홍정희

"안녕하세요. 저는 전윤아입니다. 제 친구 채린이와 함께하는 전시회의 주제는 '감정'입니다. 생애 첫 전시회를 기획하며 '배고프다'와 '힘들다' 같은 것도 감정이라고 할 수 있나?라는 생각에서부터 시작해 보았습니다. 표현할 감정을 정하고, 누군가와 그림으로 그 감정을 나눌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 중간중간 막연하다고 느껴져 좀 힘들기도 했어요.

그러나 덕분에 생각을 많이 하게 되어 저의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중에는 저의 경험을 그린 그림도 있고, 각 그림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그것에서 감정을 찾을 수 있도록 구성한 그림도 있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니 여러분의 상상력으로 저의 작품을 멋있게 꾸며주세요." -하장중학교 2학년 전윤아-

"안녕하세요. 저는 이채린입니다. 전시회를 준비하며 여러 '감정'이 실감 나게 느껴지는 그림은 어떤 것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부정적인 느낌의 감정들은 오랫동안 깊게 느낄 수 있어서 기억나는 만큼, 느껴지는 대로 더욱 열심히 그렸어요. 긍정적인 느낌의 감정들은 잠깐 스쳐 지나갈 때가 많아서 부정적인 감정보다 그리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고민하고 작업하는 동안 제 마음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 같아서, 그것만으로도 저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그린 그림들엔 인물이 많이 나오는데요, 인물 자체에도 신경을 썼지만 그들이 느낄 상황과 감정에 더 집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전시회에 와주신 분들과 그 '감정'으로 통하고 싶어요." -하장중학교 2학년 이채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하장중학교 유튜브 링크를 공유합니다. 전시회 홍보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SfRgTykmb4g


나의 색?

이채린 (지은이), 당신의바다(2024)


거울

전윤아 (지은이), 당신의바다(2024)


#하장중학교그림전시회#하장중학교전윤아#하장중학교이채린#삼척문화예술회관하장중학교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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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그리움을 얘기하는 국어 교사로, 그림책 읽어주는 엄마로, 자연 가까이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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