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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소녀가 있다. 그림에 재능이 있는 두 소녀는 강원도 두메산골, 전교생 7명 작은 중학교의 같은 반 친구다(관련 기사:
전교생 7명 중학교 운동회는 이렇게나 다릅니다 https://omn.kr/2aix7 ).
채린이와 윤아가 그 주인공이다. 채린이는 엄마의 고향인 삼척시 하장면에서 태어나, 엄마의 모교이기도 한 하장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조그마한 산골 마을에서 '독보적으로' 그림 잘 그리는 아이로 통했다.

▲무기력(이채린)'무기력'를 주제로 채린이가 그린 그림이다. 자신이 꼬리가 잘리고 접시 위에 올려져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의 인어를 표현했다. 더 많은 그림은 12월 18일~21일 삼척문화예술회관 제1전시실에서 감상하실 수 있다. ⓒ 이채린
윤아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빠의 고향인 하장으로 이사 왔다. 어렸을 때부터 연필로 글씨를 쓰는 일보다 그림 그리기를 훨씬 많이 했다는 윤아의 등장으로 백두대간을 품은 이 작은 마을은 두 명의 화가도 품은, 명실공히 축복의 땅이 된 것이다.
미술학원 한번 다녀본 적 없이 그저 혼자 그리고 또 그리며 꿈을 키워온 윤아와 채린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인 지금까지 같이 그림 그리며 단짝 친구로 지내고 있다.
서로의 그림 실력에 놀란 두 소녀... 교사들도 자주 놀랐다

▲용기(전윤아)'용기'를 주제로 윤아가 그린 그림이다. 박스 안에 고양이가 있음에도 치즈를 얻으려는 쥐의 용기를 그렸다. 더 많은 그림은 12월 18일~21일 삼척문화예술회관 제1전시실에서 감상하실 수 있다. ⓒ 전윤아
각자의 세계에서 그림으로 주목받으며 살아온 두 소녀는 서로의 그림을 보고 처음에는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언제나 '그림 잘 그리는 아이'라고 하면 자신을 가리켰던 말이었는데 '어라! 저 친구도 엄청나네!' 했다는 것이다.
착하고 순한 성정의 두 친구는 서로의 그림을 질투하지도 않고 희희낙락 그림 그리고 감탄하며 소박하고도 경이로운 매일을 보내고 있다.
나는 두 소녀의 담임교사이다. 작년, 채린이와 윤아가 입학했을 때부터 둘의 그림으로 우리 학교 교무실에서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자주 감탄이 쏟아졌다. '무언가'를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장중 벽화 디자인(전윤아)윤아가 디자인한 하장중 벽화이다. 키스해링의 작품을 오마주하여 작년 하장중 전교생 6명의 캐릭터를 담았다. ⓒ 홍정희
작년 미술 시간에 전교생이 학교 벽면에 벽화 그리기를 할 때 그 디자인을 윤아가 했다. 교실 칠판에 시시각각 그려지는 귀여운 캐릭터들은 채린이의 작품일 경우가 많았다.
국어 시간에 아이들이 직접 창작한 그림책을 출판하여, 온라인 서점에서 절찬 판매 중이기도 하다.

▲<나의색>(이채린), <거울>(전윤아)두 친구가 출간한 그림책은 온라인 서점에서 절찬 판매중이다. ⓒ 홍정희
그리고 그 '무언가'의 결정판으로 우리 교사들은 두 예비 화가의 전시회를 열기로 작당했다. 작년부터 계획하여 올해 학교 예산을 정할 때 전시회 예산을 따로 반영해 두었다. 지나온 1년, 두 친구는 부지런히 그림을 그렸다.
교사들은 지역의 문화예술회관을 대관하고, 두 친구가 그린 그림에 맞는 액자를 선별하여 주문하고, 팸플릿을 만들고, 학교 유튜브를 개설해 전시회 홍보를 시작했다. 윤아, 채린이와 같은 반인 병준이는 전시회 팸플릿에 두 친구를 소개하는 글을 썼다.
"그림 잘 그리는 두 친구가 한 교실에서 만난 것도 대단한 우연인데, 윤아와 채린이는 서로 질투도 하지 않으면서 사이좋게 같이 그림 그리고 서로의 그림을 칭찬하며 잘 지냅니다. 저는 두 친구에게서 그런 아름다운 우정을 배웠습니다. 제 친구들의 그림을 따뜻한 마음으로 감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팸플릿(앞)하장중학교 전시회 팸플릿(앞) ⓒ 홍정희
이제 모든 준비가 되었다. 백두대간에서 탄생한 두 화가의 그림 전시회가 곧 열린다. 주제는 '감정'이다(청소년들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에 대해 표현했다고 한다).
만약 강원 삼척 가까이 사신다면, 또는 강원도로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다면 무한히 성장할 두 예비 화가의 그림을 보러 와주셨으면 좋겠다.
전시일과 전시장소는 다음과 같다. 오는 12월 18일(수) ~ 21일(토)까지, 강원 삼척문화예술회관 제1전시실이다. 두 친구의 인사말을 덧붙이며, 제자들의 그림을 널리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 담임의 노골적 홍보 기사를 이만 마칠까 한다.

▲팸플릿(뒤)하장중학교 전시회 팸플릿(뒤) ⓒ 홍정희
"안녕하세요. 저는 전윤아입니다. 제 친구 채린이와 함께하는 전시회의 주제는 '감정'입니다. 생애 첫 전시회를 기획하며 '배고프다'와 '힘들다' 같은 것도 감정이라고 할 수 있나?라는 생각에서부터 시작해 보았습니다. 표현할 감정을 정하고, 누군가와 그림으로 그 감정을 나눌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 중간중간 막연하다고 느껴져 좀 힘들기도 했어요.
그러나 덕분에 생각을 많이 하게 되어 저의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중에는 저의 경험을 그린 그림도 있고, 각 그림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그것에서 감정을 찾을 수 있도록 구성한 그림도 있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니 여러분의 상상력으로 저의 작품을 멋있게 꾸며주세요." -하장중학교 2학년 전윤아-
"안녕하세요. 저는 이채린입니다. 전시회를 준비하며 여러 '감정'이 실감 나게 느껴지는 그림은 어떤 것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부정적인 느낌의 감정들은 오랫동안 깊게 느낄 수 있어서 기억나는 만큼, 느껴지는 대로 더욱 열심히 그렸어요. 긍정적인 느낌의 감정들은 잠깐 스쳐 지나갈 때가 많아서 부정적인 감정보다 그리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고민하고 작업하는 동안 제 마음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 같아서, 그것만으로도 저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그린 그림들엔 인물이 많이 나오는데요, 인물 자체에도 신경을 썼지만 그들이 느낄 상황과 감정에 더 집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전시회에 와주신 분들과 그 '감정'으로 통하고 싶어요." -하장중학교 2학년 이채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