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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보 엄마 딱지가 유난히 오래가는 것 같았다. 아이를 키우는 모든 과정이 어려웠다. 첫 아이는 다들 그렇겠거니 하면서도 놀이터를 가도, 키즈 카페를 가도, 만년 이등병처럼 모든 게 버거웠다.

그러다가 아이가 올해 꽉 찬 네 돌이 되자마자 시행한 자폐 스펙트럼 검사를 통해 아들의 결이 다른 아이들과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버겁게 하는 상황들이 나 혼자만의 착각이 아닌, 내 아이의 발달 장애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오히려 후련했다. 적기 살짝 조심스럽지만, 어떤 면에선 아이나 내 탓이 아니라는, 일종의 면죄부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그러나 면죄부도 잠시, 여전히 아이가 여기저기서 소리를 지르거나 의도치 않은 민폐를 끼칠 때는 '저희 아들이 좀 남과는 달라서 그래요, 아들이 발달 장애예요'라는 말이 생각만큼 쉽게 나오지 않았다.

'발달 장애인데 뭐 어쩌라고? 장애여도 부모가 잘 봐야 하는 거 아냐?'

온라인 맘카페에서 누군가 올린, 아무렇지도 않게 스크롤하며 보던 글들이 다시금 생각났다. 써있던 모든 글들이 다 나를 향한 것 같아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엔 나와 아들이 짊어져야 하는 십자가라는 생각에 입을 꾹 다문 채 시간이 흘렀다.

지난주 주말에는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저렴한 키즈 카페를 아이와 함께 찾았다. 안 그래도 주말에 출근하는 남편 덕분에 뭘 해야 할지 고민하던 참에, 비 오는 주말에 급히 예약을 넣어 성공한 나를 칭찬했던 날이기도 했다.

키즈카페에서 일어난 일

블럭 놀이를 하는 아이들과 아들 키즈카페에서 블럭탑을 쌓고 있는 아이들을 발달장애인 아들이 다가가는 사진
블럭 놀이를 하는 아이들과 아들키즈카페에서 블럭탑을 쌓고 있는 아이들을 발달장애인 아들이 다가가는 사진 ⓒ 오선정

키즈 카페는 어딜 가나 엇비슷한 공간이기에, 새로운 공간에서 불안해하는 우리 아이도 금방 적응했다. 그렇게 시작은 제법 좋았다.

아이는 금방 적응했지만 어른인 내게 난관이 있었다. 대부분의 키즈 카페는 미끄럼틀 구역에 볼풀이 있는데 여긴 스펀지 블록이어서다. 이 블록은 과도하게 유연하여 발이 늪으로 푹푹 빠진다. 아이들은 폴짝폴짝 잘도 다니지만 어른이 바로 건너기에는 꽤나 힘이 들었다.

나는 어떤 키즈 카페에 가든 그간 아들 옆에서 전담 마크를 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무슨 갯벌에 빠진 사람마냥 계속 허우적대며 걷다 보니, 걷기가 싫어졌다. 나도 다른 엄마들처럼 티 테이블에서 애를 '눈으로만' 보는 호사를 누리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블록이 아닌, 조금이라도 단단한 바닥 매트에서 서서 관찰하고 싶었다. 그래서 가장자리 단단한 매트 쪽으로 옮겨갔다.

그러다가 일이 생겼다. 다른 아이들이 블록을 성처럼 쌓아놓은 곳을 우리 아들이 지나가다 넘어뜨린 것이다. 워낙 힘없는 블록인지라 잘 쓰러지긴 한다.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면 넘어갈 분위기이다.

아들은 5살이지만 아직 미안하다고 말하는 법을 모른다. 그걸 알 리 없는 상대편 아이는 블록을 쓰러뜨리고도 멀뚱히 서 있는 아들에게 잔뜩 짜증을 냈다. 그래, 그럴 수 있다. 후다닥 달려가서 내가 대신 미안하다고 말하는데, 거기 있던 큰 아이가 아들 머리를 정확히 겨냥해서 블록을 던지기 시작했다.

아들은 제 머리가 맞은지도 모르고 다시 유유히 자리를 떴다. 그걸 본 다른 아이도 재밌는지 아들 머리를 겨냥해서 블록을 던졌다. 그렇게 서너 번 반복하더니 자기들끼리 낄낄 댔다.

속은 상했지만, 아이들도 무심코 혹은 화가 나서 나온 행동이겠거니 하고 이해했다. 오히려 아들을 쫓아가며 'OO아, 조심했어야지!' 하고 아이를 탓했다. 다른 아이들을 꾸짖는 것보다 내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게 어쩌면 더 쉬웠던 것 같다.

아이들은 다시 블록 탑을 쌓았다. 블록이 제법 가볍고 부피감도 있어서 나 같아도 재밌을 거 같았다. 아들도 다른 아이들과 같이 블록을 쌓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지켜보았다.

그러나 아들은 얼마 안 있어 그 블록탑을 또 넘어뜨렸다. 이번에는 블록을 손으로 '콕' 하고 만졌으니, 어찌보면 '일부러' 그랬다고 볼 수도 있었을 거다. 그 '콕' 한방에, 제법 부피감 있던 블록은 모래성처럼 흩뿌려졌다. 아이들은 또다시 블록을 던져 아들을 응징했다. 처음엔 왜 내 성을 망가뜨리냐는 원망 섞인 소리를 타고 날아오던 블록이 나중에는 히히덕거리는 비웃음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나는 지켜봤다. 아까는 못난 아들을 탓했지만,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그 아이들도 '함께' 탓했다. 여기는 함께 노는 곳이라고, 블록을 쏟은 건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구한테 블록을 던져서는 안 된다고 정확히 말했다.

"친구야, 블록을 실수로 망가뜨린 건 미안해. 그래도 블록을 쏟았다고 동생 머리에 블록 던지면 안 되지~ 여기는 다 함께 노는 곳이잖아, 그렇지?"

아이에게 하는 말이어도 싫은 소리는 싫은 소리이기에, 말을 하는 내 가슴도 콩닥콩닥 떨렸다. 말하면서 조금은 울컥했던 것도 같다.

자주 만나는 벽, 하지만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키즈카페에서 주로 혼자 노는 아들 뒷모습. 그래도 아직도 나에겐 사랑스럽다.
키즈카페에서 주로 혼자 노는 아들 뒷모습. 그래도 아직도 나에겐 사랑스럽다. ⓒ 오선정

나는 엄마라서, 또 내가 없는 어디에서는 아들 혼자 팔매질을 맞고 있을지 몰라서 이렇게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 먼저 아이들에게 잘못한 행동에 대해 알려줬고, 이후에는 거듭 양해를 구했다.

나도 알고 있다. 아이들끼리 놀다 보면 이런 사소한 다툼이나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비일비재 하다는 것을. 그래서 지금까지는 피하는 쪽을 택했던 것 같다. 앞뒤 안가리고 냅다 사과하는 쪽을 택했다. 그게 일을 커지지 않게 만드는 내 나름의 문제 해결법이었다.

어디선가 '특수 아이들의 부모들이 오히려 특수하다'라고 하는 말을 본 것도 같다. 유난스럽다는 걸 돌려 말했던 게 아닐까 싶다. 처음엔 그 말에 참 가슴이 아프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게 나는 아니겠지,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끝은, 점점 심해지는 자기 검열이었다.

초보 엄마인 나는 여전히 자주 흔들린다.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며 매일 새로운 벽을 만난다. 그 벽은 높고 견고해서 종종 무력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제 이 벽은 나를 가로막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더 단단하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기로 했다.

내 아이가 세상과 다른 속도로, 다른 방식으로 자라는 동안 나도 내 방식대로 자라고 있다.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배우고, 이를 지키기 위해 싸우며 아이와 함께 나도 성장한다. 아이를 감싸며 동시에 아이가 세상을 만날 용기를 키울 수 있도록 나도 용감해지는 중이다. 언제까지 자기 검열을 하며 아들을 쫓아다니기만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나는 부들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용기를 내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언젠가는 연습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성장해 있는 나였으면 좋겠다.

"멋진 형아가 자꾸 말해주면 언젠가 동생도 알아들을 거야. 그러니 조금만 도와줄래?"

다른 아이들을 쳐다보며 건네는 그 말이 나에게조차 어색했지만,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아이들의 눈빛은 조금 누그러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다만, 아이가 세상을 만나는 동안 내가 그의 가장 단단한 배경이 되는 것, 세상이 다정하지 않더라도 아이가 나를 통해 다정함을 배울 수 있도록 매일 용기를 내는 것이다. 나를 넘어서는 엄마가 되어가는 길, 아직도 끝나지 않은 내 성장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아직도 손가락 브이가 서툰 나의 아들. 카메라를 쳐다봐주기만 해도 감지덕지한 나의 아들. 그래도 엄마와 함께 성장해줘서 고마워. 나를 아프게도 했다가, 씻은 듯이 낳게도 하는 마법을 부리는 우리 아들이 나에겐 여전히 최고의 설렘이고 사랑이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발달장애#자폐스펙트럼#키즈카페#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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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아들을 키우며 책 읽고 글 쓰는 엄마입니다. 발달 장애 아들과의 일상에서 생기는 작은 이야기 조각들을 모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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