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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삼랑진 강둑길
밀양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삼랑진 강둑길 ⓒ 김종성

여러 하천이 만나는 합수부 혹은 두물머리에 자리한 강변 마을은 어디나 풍경이 좋다. 밀양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동네 삼랑진읍(경남 밀양시) 또한 강의 풍경이 2배로 풍성해지는 곳이다. 삼랑진(三浪津)은 만조 때 남해 바닷물이 이곳까지 올라와 세 갈래(三) 물결(浪)이 일렁이는 나루(津)라는 뜻이라니 상상만 해도 멋진 풍광이다.

자전거 여행자에게 삼랑진은 3곳을 유랑할 수 있는 '찐' 여행지라고 느껴질 만한 최고의 강변마을이다. 밀양강을 따라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다른 지역의 아리랑과 달리 신나는 아리랑 노래가 있는 밀양여행, 낙동강 자전거 길을 따라 을숙도·다대포해변·몰운대가 기다리는 부산여행, 낙동강 삼랑진교를 건너면 낙동강 레일파크와 와인동굴이 나오는 김해다.

* 자전거 여행길 : 삼랑진역 - 낙동강 삼랑진교 - 김해 화포천 - 봉하마을 (17km)

 문화재가 된 삼랑진역 옛 급수탑
문화재가 된 삼랑진역 옛 급수탑 ⓒ 김종성

밀양·부산·김해 3곳을 유랑할 수 있는 삼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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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랑진은 기차역 삼랑진역이 있어 찾아가기 좋다. 온통 덩굴식물로 뒤덮여 멀리서도 금방 눈에 띄는 옛 급수탑이 문화재(등록문화재 제51호)와 포토존이 되어 당당히 서있다. 삼랑진역은 부산 부전역에서 오는 경부선과 광주송정역까지 가는 경전선이 오간다.

매 4일과 9일에 열리는 오일장날이면 삼랑진읍에 자리한 작은 송지시장도 다른 장터처럼 사람들로 북적이는데 유난히 자전거족이 많다. 밀양, 부산, 김해 등지에서 자전거 라이딩 겸 나들이 삼아 찾아오는 사람들이다.

상가앞, 도로가, 차도변, 마을 정자까지 별별 노점이 들어찼지만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는 재밌는 오일장터 구경을 했다. 세 갈래 물줄기가 만나는 나루답게 장터에는 미꾸라지, 잉어, 가물치 같은 민물고기가 풍성하다. 밀양은 농산물이 풍성해서인지 밀양오일장, 송지오일장, 수산오일장, 무안오일장 등 서로 다른 날짜에 동네마다 여러 장이 선다.

 삼랑진 송지오일장 풍경
삼랑진 송지오일장 풍경 ⓒ 김종성
 삼랑진의 장쾌하고 멋진 강둑길
삼랑진의 장쾌하고 멋진 강둑길 ⓒ 김종성

자전거족이 많이 오가는 국수집에 들어갔다가 부추국수를 처음 먹었다. 잘 말린 부추 가루를 섞어 뽑은 면발에 멸치가 추가된 육수에 섞어내는데 부추 특유의 향과 질감이 입안에 감돈다. 한 테이블에 여러 명이 합석해 국수를 먹다가 김해에서 왔다는 아저씨와 얘기를 나누던 중 의도한 대로 여행정보를 얻어 듣게 되었다. 낙동강 삼랑진교를 건너가면 김해 화포천이 나오는데 천변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이자 묘역이 있는 봉하마을이 있다는 거다.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껜 좀 죄송하지만, 전에 다녀왔던 봉하마을보다 더 끌렸던 건 화포천에 날아와 서식한다는 겨울철새 기러기였다. 기러기를 떼로 볼 수 있는데다 사람들에게 익숙해선지 가까이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는다는 말에 남은 국수를 후루룩 마시고 자전거 핸들을 돌려 가까운 낙동강 자전거길로 향했다.

먼 길을 흘러오느라 지쳤지만 막바지에서 밀양강이 힘을 보태준 덕택에 부산으로 유유히 흘러가는 낙동강이 한눈에 펼쳐지는 삼랑진 강둑길. 우리나라 어느 강둑길보다 멋지고 장쾌한 강변 풍경이 펼쳐진다. 화포천 기러기가 어서 보고 싶었지만, 나도 모르게 자전거 페달질이 느려지는 곳이다.

자전거 여행자는 삼랑진 강둑길에서 이어지는 낙동강 자전거 길을 따라 부산으로 갈 수도 있다. 낙동강이 낳은 철새들의 섬 을숙도와 다대포 해변이 멀지 않다. 밀양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너른 물길이 훤히 보이는 곳에 김해로 건너갈 수 있는 삼랑진교가 나있다.
 긴 하천형 습지 화포천
긴 하천형 습지 화포천 ⓒ 김종성

겨울철새 기러기들을 품은 화포천

화포천은 자전거여행 중 만나게 되는 여타 하천과 많이 다르다. 축축한 느낌이 물씬한 물가엔 수초와 물속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버드나무들이 가득하다. 알고 보니 화포천은 긴 습지다. 길이가 21.2㎞로 하천형 습지의 특성을 지닌 우리나라 대표 습지 중 하나라고 한다. 천변에 나있는 산책로와 강둑길을 거닐다보면 내 눈엔 보이지 않아도 나를 보고 있는 존재들이 느껴진다.

자연미 그득한 화포천이 2000년대까지 하류에 쓰레기 매립장이 들어설 정도로 방치되고 오염되어 있었다니 믿기 힘들다. 2008년 화포천변 봉하마을이 고향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화포천 생태계 복원에 나서면서 지역주민들과 시민들의 동참으로 김해의 대표적 생태계 우수지역으로 되살아났단다.

 화포천 산책로
화포천 산책로 ⓒ 김종성
 평온하게 쉬고 있는 화포천 기러기들
평온하게 쉬고 있는 화포천 기러기들 ⓒ 김종성

화포천길을 따라 자전거 산책을 하다보면 자꾸만 고개를 위로 들게 되는데, 대여섯 마리 단위로 하늘을 나는 기러기들 때문이다. LP판에서 나는 것 같은 꺼끌꺼끌한 목소리로 얘기를 나누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려온다. 대열에서 50미터쯤 쳐진 기러기 한 마리가 다급한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데 마치 "같이 좀 가자!"라고 외치는 듯해 눈길이 머물렀다.

천변 나무 아래 벤치에서 물을 마시고 쉬고 있는데 가까운 곳에서 기러기들이 떼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포천을 추천한 자전거족 아저씨 말 그대로의 풍경이 나타났다. 수초가 풍성하고 폭이 넓은 하천에 기러기들이 모여 있었다. 머나먼 길을 날아와 지친 몸을 쉬고 있는 기러기들은 한껏 평화롭고 편안해 보였다. 화려하지 않은 깃털과 온순하게 생긴 얼굴이 정답다. 한 번 짝을 맺으면 다른 짝을 찾지 않아 부부의 백년해로를 상징하는 새이기도 하다.

주변 동네 사람들이 귀찮게 하지 않는지 정말 가까이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아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많은 기러기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기는 처음이라 떨렸는지 카메라 액정 창이 흔들거려 심호흡을 한번 하고 찍어야했다. 생명과 동물을 사랑하는 이에게 가장 아름다운 보상은 다름 아니라 동물이 모습을 드러내주는 것이라는 말을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화려하지 않은 깃털과 온순하게 생긴 얼굴이 정다운 기러기
화려하지 않은 깃털과 온순하게 생긴 얼굴이 정다운 기러기 ⓒ 김종성
 봉화산에서 보이는 봉하마을
봉화산에서 보이는 봉하마을 ⓒ 김종성

화포천변에 서 있는 이정표에 봉하마을(김해시 진영읍)이 보여 자전거 핸들을 돌렸다. 전에는 기차역 진영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봉하마을에 갔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찾아가니 전혀 다른 여정과 풍경이 펼쳐진다. 자전거 여행을 놓지 못하는 이유다.

마을 어느 집 돌담에 밀짚모자를 쓴 고 노무현 대통령이 그려져 있다. 자전거 타고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는 듯 활짝 웃는 얼굴로 여행자를 반겨 주셨다. 문득 그림은 그리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영단감이 나는 감나무 밭과 벼농사를 하는 너른 들판, 마을의 든든한 수호신 같은 봉화산이 정겹게 다가왔다. 봉화산과 산속 작은 사찰, 봉하마을을 이어 걷는 마을길이 나있어 둘러보기 좋다. 봉하마을에서 기차역 진영역과 한림정역이 가깝다.

 봉하마을길에서 마주친 길냥이
봉하마을길에서 마주친 길냥이 ⓒ 김종성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자전거여행#삼랑진#송지오일장#화포천#봉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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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 (sunnyk21) 내방

나는야 금속말을 타고 다니는 도시의 유목민. 매일이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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