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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제과점에 진열된 빵(자료사진, 기사와 관련 없습니다)
한 제과점에 진열된 빵(자료사진, 기사와 관련 없습니다) ⓒ 연합뉴스

학교를 옮기고 매일 출근하던 그 길에 다모아 제과점이 있었다. 다른 가게들이 굳게 셔터를 내린 이른 아침 시간에도 부지런한 사장님은 언제나 빵을 구웠고 잘 구워진 식빵을 봉지에 담곤 했다. 그즈음에 그곳을 지날 때면 코끝을 파고드는 빵 굽는 냄새가 햇살과 어울려 참 따스한 느낌을 주었다.

처음엔 그 빵집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그저 그런 주변의 풍경으로 녹아들어 있어서 눈에 띄지 않는 가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어서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건 전적으로 주변에 어떤 상점들이 있나 살펴보지 않고 주변 거리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나의 습관 탓이지만 어느 사월의 이른 아침, 아침 식사를 거르고 나와 부드러운 먹거리를 찾으러 다니다 발견한 귀퉁이의 작은 빵집엔 규모보다 알차게 다양한 빵이 준비되어 있었다.

보들보들한 식빵과 단팥이 가득 들어간 팥빵, 하얀 앙금이 꽉 들어찬 만주, 그 가게의 사장님이 자신 있게 추천하는 꽈배기와 넓은 부분에 소보로가 가득한 맘모스빵까지, 그곳엔 고소한 냄새만큼 빵이 가득했다. 가게의 규모와 겉모습에 비해 생각보다 맛도 좋았다. 가끔 단 것이 당기거나 빵이 먹고 싶을 때면 나는 그곳을 찾았고 빵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던 사장님은 그날의 메뉴를 선정해 주곤 했다. 빵을 평생 사랑하고 사랑해 온 사람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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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하고 따뜻한 햇살만큼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빵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가게가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뚝딱거리더니 유명제과점 간판을 달고 영업을 시작하는 날이 왔다. 밖에서 보기에도 가게는 넓고 쾌적해 보였고 무엇보다 밝았다. 하긴 이 지역에 전국구의 빵집 하나 정도는 생길 만도 했다. 오히려 낙후된 지역이라 늦은 감도 없지 않았다.

카페 형식의 넓은 가게는 빵을 사는 사람들과 차를 마시는 사람으로 첫날부터 북적거렸다.

새로 생긴 가게에 손님이 많은 날에는 다모아 제과점 앞을 지나기가 미안했다. 약간 어두운 가게 안에 홀로 앉아 있는 사장님의 실루엣이 마음이 아팠던 탓인가. 새로 생긴 가게에 빵이 동나는 만큼 다모아 제과점에는 재고가 쌓이기 시작했다. 빵을 굽느라 분주했던 사장님은 홀로 앉아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고 때로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새 가게에는 사람들이 앉고 서며 물건을 주문하고 차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애초부터 경쟁이 되지 않는 게임이었다. 사람들은 예전에 빵을 사러 다니던 가게에 더는 가지 않았다.

대신 매일매일 전국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새로운 빵이 나오는 가게를 더 선호했다. 어디서나 같은 맛, 같은 종류의 빵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동네에 단 하나, 다모아 제과점에서 만들 수 있는 빵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고 있었다. 슈크림으로 가득 차 입술을 혀로 핥으며 먹어야 하는 슈크림빵, 안에 고운 단팥이 가득한 팥빵, 가운데 크림이 넉넉해서 혀를 살살 녹이던 크림빵까지 모두.

이건 좀 억울하다. 평생을 바쳐온 한 사내의 집념이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애초부터 없었던 존재처럼 사라져 버리는 일이.

아무도 오지 않는 가게에서 혼자 어둠을 지키고 있는 사장님의 모습을 보는 것이 점점 힘들어질 무렵, 다모아 제과점은 문을 닫았다. 늘 열려있던 문은 셔터가 굳게 내려져 '임대 문의'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결국 그렇게 될 것을 안 사람처럼 오히려 마음이 담담했다.

그러나 한 가게가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과정을 나는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았다. 잊지 않으리라 다짐도 했다. 그러나 그뿐, '임대 문의'라는 종이가 사라지고 또 다른 카페가 그 자리에 들어선 이후 '다모아 제과점'은 어디에도 없었다.

신문에서는 자영업 폐업이 100만을 넘는다고 한다. 연말 예약이 하나도 없는 식당이 늘고 하루에 5건의 손님을 받기도 힘들다는 기사가 넘칠 때면 나는 내가 목격했던 제과점을 떠올린다. 텅 빈 공간에서 폐업하는 분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을 홀로 고민하고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니 목이 메이기도 한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고 어느 시인은 말했다. 세월이 지난 지금, 문득 '다모아 제과점'을 떠올리면 아직도 명치끝이 아려 온다.

공간은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범위라고 한다. 그러나 내게는 물리적인 것보다 심리적인 의미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한 사내의 어두운 실루엣과 함께 희미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다모아 제과점. 그 어두운 실루엣이 화석처럼 견고하게 마음에 새겨진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사라진 것을 애써 찾는 사람들에게 슈크림 같기도 하고 진한 단팥 같기도 한 향기와 질감이 가슴에 남는다. 그건 그대로 앙금이 되어 가라앉는다. 기억 속으로. 시대의 한 장면 밖으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자영업폐업100만시대#사라지는것#공간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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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은 (gogolik) 내방

은퇴 후 얻게 된 자유로운 시간을 일상의 변화를 통해 새롭게 조각해 가는 초보 은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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