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산기포, 동학의병호남본영을 창설하다
[백산기포는 일명 백산대회라 일컫는 혁명군 조직과 '호남창의대장소(湖南倡義大將所)'라는 '동학의병호남본영'을 창설하는 등 제1차 동학농민혁명에 있어 중요한 거점이었다. 다시 말해 동학의병본부 창설과 동학농민군, 동학혁명군이라는 정식 군대조직이 백산성에서 이뤄졌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전봉준은 무장기포를 전후로 하여 김덕명, 김개남, 최경선, 손화중 등과 사전에 조율, 전라도 각 고을의 동학 접주, 대접주에게 통문을 보내어 보국안민, 제폭구민의 동학의 대도창명을 위하여 도인(道人)들이 기포할 것을 호소하였다.
동학농민군은 전략적인 요충지 백산성(白山城)에 3월 25일(양.4.30)을 전후하여 총집결했다. 백산성은 사방팔방이 훤하게 터진 들녘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어 관군의 접근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또한 백산 뒤편은 깎아지른 절벽이며, 앞쪽도 오르는 길이 경사지고 험해 방어는 물론 반격하기에 편리한 곳이다.
동쪽으로 인접해 있는 동진강이 서해로 곧게 흐르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고부천이 서해로 흘러들고 있다. 남쪽으로는 고부, 동쪽으로는 신태인, 북쪽으로는 김제로 통하는 교통의 중심지라 할 수 있다. 특히 백산성은 백산의 정상부를 둘러싸고 있는 테뫼식 산성(山城) 즉 사발을 엎어 놓은 모양이 있었는데 동학농민군이 다시 산성을 증축하여 방어벽을 쳤다.
호남동학군 지도부와 정예군사가 모이다
백산성에 집결한 주력부대는 무장, 영광, 장성, 함평, 무안, 고창, 흥덕, 정읍, 고부, 태인, 부안, 금구, 김제 등 전라도 일대에서 몰려들었다. 백산기포의 주요 인물들은 전봉준과 손화중을 비롯하여, 금구의 김덕명, 태인의 김개남, 최경선, 정읍의 손여옥, 유용수, 차치구, 흥덕의 고영숙, 고부의 정익서, 김도삼, 완산의 서영도, 장흥의 이방언, 익산의 오지영, 삼례의 이명로, 남원의 유태홍 등을 비롯하여 각 고을의 유명 지도자들이 참가했다.
이때 동참한 동학농민군의 숫자는 전봉준 재판심문기록인 <전봉준공초>에는 4000여 명이라고 말하였다. 또한 혁명 후 관변기록에는 1만여 명으로 되어 있으나, 여러 문헌을 참고하면 대략 7000~8000여 명으로 집계된다. 지난 교조신원운동에서 몇 만 명이 집결해 취회를 열었던 것에 비하면 적은 숫자이다. 그때는 평화적인 집회였고 지금은 목숨을 바쳐야 하는 혁명 즉 전쟁이기 때문에 동학군 정예 군사들만 모인 것이다.
모든 전쟁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숫자 줄이기와 늘리기는 동학혁명사에서도 볼 수 있다. 동학에서는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는 아군의 숫자를 부풀렸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아군의 숫자를 줄여서 말한다. 숫자를 늘리는 것은 적에게 아군의 위용을 드러나게 하고 패한 후에는 보복을 줄일 겸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또한 관군은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동학군의 숫자를 최대한 늘리고, 관군의 숫자를 줄여서 말한다. 이러한 경향은 관군이 수많은 동학군을 소탕했다고 전공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또 관군의 숫자를 줄이는 것은 적은 숫자로 승리하였다고 전공을 높이기 위한 공명심의 발로이다. 그래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동학군과 관군의 전체 숫자를 파악하기 힘든 것이다.
특히 1차 동학농민혁명사에 관군의 숫자를 전라감영군과 한양경군의 숫자로만 파악하면 계산이 틀린다. 전라도 각 고을의 병력과 민보군, 민병대, 보부상군 등 수많은 관군 소속 병력들이 있었다. 이러한 관군병력을 전체로 파악하면 동학군이나 관군의 숫자가 비슷하게 나온다.
서장옥포와 김덕명포가 기포하다
한편 금산의 서장옥포는 3월 8일경 충청도 진산현에서는 동학도인 수천여 명이 흰 두건을 쓰고 농기구와 몽둥이를 든 채 읍내로 진격하였다. 그들은 아전 등 탐관오리들의 집들을 불태워 버렸다.
서장옥의 혁명군은 충청도 진산현 방축점에 동학도소를 설치하고, 관군과 보부상을 상대로 일전을 불사하면서 막대한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 또한 금구 원평 김덕명포 도인들은 무장기포보다 앞선 3월 12일경 금구 원평을 출발하여 태인과 부안을 거쳐 백산에 도착했다.
3월 25일 백산성에는 동학호남연합군 7천여 명이 집결하였다. 동학농민군은 지도부 구성과 의병연합군 본부성격의 호남창의대장소(湖南倡義大將所)를 창설하였다. 총대장에는 전봉준, 총관령에는 김개남·손화중, 총참모에는 김덕명·오시형, 영솔장은 최경선을 추대하였다. 비서로는 송희옥·정백현을 임명하였다.
전봉준, 호남의병대장으로 추대되다
백산대기포 즉 백산대회에서 전봉준 장군이 호남창의대장소 총대장으로 추대된 것은 '창의(倡義) 즉 의병을 일으켰다'는 말로, 전봉준 장군이 의병대장(義兵大將)으로 추대되었다는 역사적인 근거가 된다.
동학농민군은 중요한 안건을 처리하거나 결정할 때는 중의(衆議)를 모아 의결하기로 합의하였다. 동학군 조직 작업이 마무리된 후, 총대장 전봉준은 탁자위에 지도를 펴놓고 동학군이 임해야 될 작전계획에 대해 설명하였다.
"우리 군은 원평을 거쳐 전주성으로 진격하다가 감영군을 유인 황토재로 후퇴하여 결전을 치르고, 다시 관군을 장성으로 유인할 것입니다. 그 후 전주성 함락을 위한 작전에 돌입할 것입니다."
전봉준 대장의 작전은 동학군이나 관군들 전체에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전술이었다. 관군을 유인하여 따돌리고 목표인 전주성 점령에 전략을 세운 것이다.
백산성의 호남창의대장소에서는 군편제를 중군(中軍), 좌군(左軍), 우군(右軍)의 3군 체제로 결정하고, 선봉대에 기마병(騎馬兵)을 두었다. 그리고 중군은 총대장 전봉준, 좌군은 총관령 김개남, 우군은 총관령 손화중, 기마군은 영솔장 최경선이 맡았다. 또한 전봉준의 총대장기는 '동도대장', 좌군기는 '보국안민', 우군기는 '제폭구민'으로 하였다.
그리고 동학의 오만년지운수(五萬年之運數)를 상징하여, 오색(五色, 청색, 황색, 적색, 백색, 흑색) 깃발을 사용하기로 하였으며, 각 포·접기도 모두 사용하기로 하였다. 드디어 백산성에서 출진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또한 백산에서 본격 출진에 앞서 격문과 4대강령, 그리고 12개조기율을 발표하였다.
<격문>
우리가 정의를 들어 이에 이름은 그 본의가 결코 다른 데 있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들을 힘든 고통에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 위에 두고자 함이라. 안으로는 탐학한 관리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는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내몰고자 함이라. 양반과 부호 앞에서 고통받는 민중들과, 관찰사와 지방장관 밑에서 굴욕을 당하는 하급 관리들은 우리와 같이 원한이 깊은 자라. 조금도 주저하지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만일 기회를 잃으면 후회하여도 돌이키지 못하리라.
호남창의대장소(湖南倡義大將所) 재백산(在白山)
<4대강령>
1. 사람을 죽이지 않고 물건을 해치지 않는다.
2. 충효를 다하고 세상을 구제하며 백성을 편안히 한다.
3. 왜놈들을 몰아내고 성도를 맑게 한다.
4. 군사를 몰고 한양으로 들어가 권세 귀족을 없앤다.
<12개조 기율>
1. 항복한 자는 잘 대접한다.
2. 곤궁한 자는 구제한다.
3. 탐학한 자는 추방한다.
4. 순종하는 자는 경복한다.
5. 도주하는 자는 쫓지 않는다.
6. 굶주린 자는 먹인다.
7. 간사하고 교활한 자는 없앤다.
8. 빈한한 자는 진휼한다.
9. 불충한 자는 제거한다.
10. 거역한 자는 효유한다.
11. 병든 자는 진찰하여 약을 준다.
12. 불효한 자는 형벌한다.
백산성은 '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이라는 말처럼 죽창과 백색 옷으로 뒤덮였다. 전봉준 총대장은 출정 준비를 마친 후 백마에 올라타 대장기를 앞세우고 선두에 섰다. 그 좌·우에는 김개남 총관령과 손화중 총관령, 그 뒤에는 최경선 영솔장과 수십 기의 말로 구성된 기마군(騎馬軍)이 뒤따랐다.
전주성을 향하여 진군하라
전봉준 총대장은 대열의 앞과 뒤를 오가며, 동학농민군에 명령했다.
"전주성을 향하여 진군하라!"
"대장기와 오색기는 앞으로!"
"기마병(騎馬兵) 앞으로!"
"재인부대 풍물패는 앞으로!"
"좌군 앞으로!"
"우군 앞으로!"
"식량 보급 부대 앞으로!"
"시천주 주문을 외워라!"
"가슴과 등에 붙인 부적은 한울님의 영부이다. 화살과 총알도 비켜 가는 천하무적의 신표다!"
백산기포는 전라감사 김문현을 통해 매일 의정부에 보고되었다. 김문현은 사실 지난해(1893.3.20) 전라감사로 임명될 때 왕으로부터 "전라도는 조선왕조의 선조가 태어난 곳으로 다른 지역과는 다른 곳이니, 근래 나쁜 세력이 발생하여 사납고 세차게 퍼져나가고 있다는 동학의 무리들을 없애버리고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백산에 집결한 동학농민군은 7천여 명을 넘어서 1만여 명에 육박하고 있었다. 동학의 주문(呪文) 소리가 하늘 높이 울려 퍼지고 탁 트인 들판을 지나 지평선 끝까지 뻗어 나갔다. 혁명군의 당당한 발걸음은 땅을 진동시키며 뽀얀 흙먼지를 일으켰다. 동학농민군의 행군은 거대한 물결을 이루어 거침이 없었으며, 전라감영이 있는 전주성을 목표로 치고 올라갔다. 그러곤 예동을 거쳐 태인현 용산을 휩쓸고 태인관아를 손쉽게 점령했다.
[백산성. 동학농민군, 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 그들은 이제 아무런 두려움도 없었다. 천하영결 전봉준이 앞장섰고, 천하용장 김개남이 지휘하고, 천하덕장 손화중이 함께하는 동학군은 그야말로 천하무적이었다. 백성은 바다였다.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침몰시키기도 한다. 혁명군은 농민군이었다. 이제 조선을 한 번 갈아엎을 때가 되었다. 그래서 정부를 뜯어고치고, 외세를 몰아내고, 탐관오리를 척결하여, 백성이 하늘인 세상, 농민이 신명 나는 세상을 열고자 하였다.]
덧붙이는 글 | 이윤영 기자는 동학혁명기념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