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성습지 한가운데서 대구소방 소속 소방항공대 헬기에서 사람이 내려오는 소방 훈련을 하고 있다. ⓒ 정수근
지난 29일 두 개의 큰 국가하천인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달성습지 하중도 위로 갑자기 헬기 한 대가 낮게 내려와 소방 훈련을 한다. 그러자 이곳을 찾은 겨울 철새들이 혼비백산 달아난다. 그중에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큰고니도 있다.
그 많던 철새들이 삽시간 흩어졌다. 철새들이 모두 떠난 그 자리엔 헬기 소리만 요란하다. 이곳은 대구 달성구청이 흑두루미와 재두루미 등의 겨울 철새들이 올 것을 대비해 갈대와 잡풀 등을 밀어내고, 평탄한 개활지로 만들어둔 곳이다. 철새들이 날아와 쉬었다 갈 수 있도록 달서구청 차원의 배려를 행한 것이다.

▲많은 겨울철들이 달성습지를 찾아 쉬고 있다. 가운데 흰색 큰 새가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큰고니다. ⓒ 정수근

▲평화롭게 쉬고 있던 겨울철새들이 혼비백산 달아나고 있다. ⓒ 정수근
철새도래지 달성습지에서 헬기 훈련을 하는 나라
그런데 그 바로 옆 200여 미터 정도 떨어진 달성습지 하중도 안으로 헬기가 한 대 날아와 소방 훈련을 벌였다. 그 덕분에 겨울철새들을 위한 이 공간에 있던 철새들은 모두 떠날 수밖에 없었다.
"서대구 달성습지에서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이 나라에는 정말 윤리도 없는가, 너무 화가 난다"
이 현장을 지켜보던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저자인 생태학자 김종원 전 계명대 교수가 기가 막힌 듯 이렇게 말했다. 옆에 있던 대구환경운동연합 회원 도예가 배제일 선생도 "빨리 항의 전화라도 해야 한다"라며 전화기를 들고 나선다.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달성습지에서 대구소방이 항공 소방 훈련을 하고 있다. 이 덕분에 이곳을 찾은 겨울철새들이 혼비백산 달아났다. 정수근

▲달성습지에 내려 쉬고 있던 큰고니가 날아간다. ⓒ 정수근
사실 이들은 달성습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강정고령보 앞 광장에 건설된 4대강사업 홍보관 디아크 앞에서 금호강 르네상스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던 차였다. 대구시가 이 일대에 화려한 관광교량을 설치해 겨울 철새들과 야생동물들의 삶터를 교란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정작 달성습지 안에서는 헬기를 이용한 소방 훈련을 실시해서 겨울철새들과 야생동물들을 내쫓는 기가 막힌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금호강 난개발 저지 대구경북공동대책위에서 금호강 르네상스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 정수근

▲대구소방 소속 헬기가 달성습지에서 소방 훈련을 실시하다가 거센 항의를 받았다. ⓒ 정수근
망원경으로 그 헬기가 119 대구소방 소속 헬기란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119로 전화를 걸어 "철새도래지에서 어떻게 헬기 훈련을 하느냐"라며 "당장 훈련을 중단하라"라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대구소방안전본부(대구 소방)는 "아마도 우리 소속 소방항공대에서 훈련을 실시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연락해서 상황을 알아보겠다. 알아보고 소방항공대에서 연락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답했다.
항의 전화 후 시간이 조금 흐르자 훈련은 중단됐다. 하중도 위에서 정지비행을 하던 헬기는 하중도에 내렸던 소방대원들을 다시 실은 후 서서히 북서쪽 하늘로 날아갔다. 잠시 후 연락이 온 대구소방 119항공대 소속 담당 팀장은 "그동안 정기적으로 행해오던 소방 훈련이다. 전혀 그런 사실을 몰랐다. 앞으로는 시정될 수 있도록 더 알아보고 조치를 취하겠다"라고 말했다.
생태 윤리가 없는 나라... 윤리를 회복해야
겨울 철새들로 장사진을 이루던 곳은 텅 비었고, 달성습지에는 고요만 남았다. 휑한 바람 소리만 요란하다.
이런 훈련을 그동안 정기적으로 했다니 정말 기가 막히고 이해가 안 되는 노릇이다. 이곳이 대구의 유명한 습지란 사실은 대구 시민이면 다 아는 사실이고, 습지가 철새들을 비롯한 무수한 야생동물들의 서식지란 사실은 상식 아닌가.

▲철새들이 하나도 없이 다 떠나버리고 빈 공간만 남았다. ⓒ 정수근

▲겨울철새들은 모두 떠나고 빈 공간만 덩그러니 남았다. ⓒ 정수근
달성습지는 인간의 영역이 아닌 야생의 영역이다. 철새를 비롯한 야생동물들이 인간 개발을 피하고 피해서 마지막으로 머물게 되는 그들의 마지막 남은 영토다. 이런 곳에서 헬기를 이용한 훈련이 행해지고 있고, 대구시는 그 앞으로 화려한 관광교량을 세워서 이 일대를 관광단지로 개발하려 하고 있다.
"이 나라에는 (생태) 윤리가 없다. 정말 너무나 천박하다"
김종원 전 교수의 일성이 내내 머리에 머물게 되는 하루다.

▲금호강 르네상스 개발사업을 반대하는 서명운동이 벌이지고 있다. ⓒ 정수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