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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의 '탈북자', '탈북민' 용어 대신에 '북향민' 용어를 새롭게 쓰자고 제안했다. (관련 기사 : 왜 굳이 북향민으로 바꿔야 하냐면) 그렇다면 '북향민'으로 불리면 모두가 만족할 것인가? 그건 또 아니다. 그렇게 될 수도 없다. 북에서 온 사람들 중에는 '북향민'으로 불리기 싫다는 사람들도 있고, 아무 정체성도 부여하지 말라는 사람들도 있다. 나 또한 아무 정체성으로도 불리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호칭이 필요하고, 그 호칭에 의해 정체성이 구성될 수밖에 없다.

일단 사회 자체가 우리를 그렇게 분류하기에 '아무튼 호칭되는' 문제는 피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호칭을 바꾸는 것은 존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정체성에서 비롯되는 오해와 편견을 유용하게 줄일 수 있다는 실사구시의 대안으로 활용될 수 있다.

북향민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저 인생 중간에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고, 그전까지 살아왔던 경험이 조금 다른 사람들일 뿐이다. 이들은 지금 보통의 시민으로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살아간다. 언론에서는-언론의 속성이 늘 그런 것이지만-어떤 특별한 북향민이 많이 비쳐지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평범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조용히 살아가는 북향민들의 모습이 언론에 비쳐지지 않고 내가 굳이 여기에서도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평범함을 굳이 조명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 또한 언급되기를 원치 않는다.

"굳이 밝히고 싶지 않다"

많은 북향민 청년들은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는다. 대개는 숨기며 살아간다. 먼저 밝히는 청년들은 소수이다.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이 알려져 봤자 손해일 뿐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구경꾼에 둘러싸인 기분을 경험하는 것은 예사이고 질문 폭탄을 받기 일쑤다. 북한에서 왔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만나는 경험이 생소할 수 있다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대한민국 5300만 인구 중에 북향민 3만 5천 명이면 겨우 0.06%밖에 안 되니 실제로 주변에서 북한에서 온 사람을 만날 기회가 극도로 적다. 북향민 관련 일을 하거나 적어도 북향민 관련 자원봉사라도 해본 사람이 아니라면 뉴스에서나 본 사람들일 뿐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북향민을 직접 대면하게 되면, 고향이 어디냐, 어떻게 탈북했냐고 질문한다. 질문하는 사람은 만남 자체가 우연이고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북향민은 그런 질문이 필연적이고 흔한 일이다. 단답형으로 대답할 수도 없는 질문이어서 피로가 쌓인다. 이런 이유 때문에 차라리 출신을 숨겨버리는 것이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북한출신'이라는 이유로 학업에서, 생업에서, 취업에서, 관계에서 배제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나이가 어린 학생들의 경우 일반 학교에서 따돌림이나 친구관계의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종종 생기고, 이로 인해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북한 출신 학생들만 다니는 대안학교로 이동하기도 한다. 이는 학생이 성인이 된 대학교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겉으로는 원만한 교우관계를 보이지만, '북한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알게 모르게 친구들과의 관계를 어색하게 만든다. 개인에 따라 다른 문제라 함부로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겉보기에 문제 없는 '학우 관계'는 유지해도 '찐친'의 관계로 들어가기는 어렵다는 게 대다수의 이야기다.

남한 출신이나 북한 출신이나 서로에 대한 무의식적인 '경계심'이 있는 것일까? 생업 현장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이어진다. 우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태어난 곳: 북한'이라는 문구를 넣을 수 없다. 있어 봤자 업무역량과는 상관없는 흥밋거리가 될 뿐이다. 인사담당자 입장에서 생각해 봐도 회사에 적합한 인물을 뽑는데 '북한 출신'이 장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희박할 것 같다. 북한연구나 북한정보 관련 업무를 하는 회사가 아니라면 말이다. 일단 북한이라는 곳 자체가 기업에게 기회를 주는 시장이 전혀 아니다. 그러니 장점이 없다. 취업이 곧 생존인 북한 출신 청년들은 당연히 이력서에 '북한' 글자를 지울 테고, 한국사회의 치열한 취업 생태계를 허투루 본, 순진한 나같은 사람만이 이력서에 떡하니 북한 출신을 기록하는 것이다.

 수십차례의 광탈 끝에 국회 비서관으로 일한 조경일 작가
수십차례의 광탈 끝에 국회 비서관으로 일한 조경일 작가 ⓒ 조경일

나는 누가 봐도 북한 출신임이 자명한 이력서와 자소서를 제출했고 '광탈(빛의 속도로 탈락)'을 반복하고 나서야 겨우 이력서에서 출신을 지웠다. 그러고 나서 깨달은 건 출신을 지우면 적어도 서류전형은 어렵지 않게 통과한다는 사실이었다. 수십차례 시도 끝에 면접에 합격하여 국회비서관으로, 다시 국회사무총장 비서로 일을 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을 비추어 보면 취업시장에서 '북한 출신'을 밝히는 것은 곧 '광탈'을 의미한다. 북향민 청년들에게 정체성을 지우는 것은 곧 생존의 문제이다. 한국 사회가 그걸 원한다. 이것이 북향민 청년들의 리얼리티다.

덧붙이는 글 | 조경일 작가는 함경북도 아오지 출신이다. 정치컨설턴트, 국회 비서관을 거쳐 현재 작가로 활동하며 대립과 갈등의 벽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한다. 책 <아오지까지> <리얼리티와 유니티> <이준석이 나갑니다>(공저) <분단이 싫어서>(공저)를 썼다.


#북향민#탈북민#리얼리티와유니티#조경일#아오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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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일 작가는 함경북도 아오지 출신이다. 정치컨설턴트, 국회 비서관을 거쳐 현재 작가로 활동하며 대립과 갈등의 벽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한다. 책 <아오지까지> <리얼리티와 유니티> <이준석이 나갑니다>(공저) <분단이 싫어서>(공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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