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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친구들과 나들이로 장례식장 탐방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날을 잡아 집 근처에서 5분 거리 장례식장부터 30분 거리까지 세 군데의 장례식장을 돌아봤다. 계획 신도시에 살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장례식장이 있었다.

그중 집에서 제일 가까운 장례식장은 공원 같았다. 잔디장이 대부분이고 납골당도 한쪽에 있었다. 잔디장은 2인, 4인, 8인 등 선택지가 많았다. 내 눈엔 납골당보다 잔디장이 훨씬 좋아 보였다.

잔디장은 흙항아리에 화장한 뼛가루를 넣어 묻는다. 흙항아리는 비가 올 때마다 점점 녹는다고 했다. 항아리도, 뼛가루도 결국에 다 흙으로 스며든다.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이유

올 추석, 남편 산소를 가는 아이들 산책로 같은 남편의 산소
올 추석, 남편 산소를 가는 아이들산책로 같은 남편의 산소 ⓒ 김길석

지난 2월, 남편 장례가 끝나고 얼마 안 있어서 사흘 동안 비가 왔다(관련 기사: 차마 열지 못했던 남편 방, 이런 게 남아있을 줄이야 https://omn.kr/2b6k1 ). 남편은 아마 그때 대부분 흙과 섞여 어디론가 스며들었을 것이다. 사람은 흙으로 돌아간다라는 말이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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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남편 자리 옆에는 작은 공간이 하나 더 있다. 내가 갈 곳이다. 미리 예약을 할 수는 없지만, 한 명이 먼저 떠나면 옆자리를 확보할 수 있다. 남편을 보내고 나서 보니, 나는 미리 죽을 자리를 알아본 게 정말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사람들에게 들으니 장례식 자체로 고생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일례로 3일장은 끝났는데, 화장할 곳이 없어서 운구차에 시신을 싣고 2~3시간 거리의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사람이 죽었는데 무슨 돈 걱정을 하냐 싶기도 하겠지만, 실은 그 모든 것이 다 비용이다.

남편이 떠난 뒤 나는 종종 남편 잔디장에 가서 앉아 하소연하는 날이 많았다. 오전에 가면 기다란 차가 줄줄이 들어온다. 근처 다른 지역에서 화장하기 위해 들어오는 차라고 했다. 화장 순서는 이곳에 빈소를 차린 사람들이 먼저라서, 그들은 들어와서도 한참을 기다린다.

남편은 자정이 가까웠을 때 소천하는 바람에 3일장이 실제로는 2일장이 됐다. 손님을 하루만 맞았는데도 나는 장례가 끝나고 깊은 몸살을 앓았다.

빈소와 화장과 발인을 모두 집 근처 5분 거리에서 해도 그렇게나 힘들었는데, 저렇게 장거리로 돌아다니면 상주들이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 죽을 준비를 미리 하는 건 자식들에게 주는 큰 선물이다.

남편이 가고 6개월 쯤 지나자 내게 슬슬 커밍아웃 하는 여자들이 생겼다. 내 주변에는 병든 남편을 보살피는 여자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들은 내게 소리죽여 말한다.

"자기 남편은 너무 깔끔해. 아무도 고생시키지 않았잖아. 아유, 난 죽겠어. 자기가 부러워."

이런 식이다. 처음엔 나를 놀리나 싶었는데, 이제는 이해도 된다. 긴 병에 효자 없다. 이 말은 부부끼리도 해당된다. 효자는 젊기라도 하지, 노인이 노인을 돌보기는 쉽지 않다. 요양원도 사실 내키지 않는다. 중환자실에 누워서 하루에 몇 십만 원씩 쓰는 경우들을 보면 그래도 집에 있는 게 나은 거 아니냐고 위안도 해보지만, 사람은 내 손톱 밑 가시가 제일 아픈 법이다.

그래도 곁에 있는 게 낫다고 있을 때 감사하라고 나는 대답한다. 감사는 하지만, 그래도 장례를 어떻게 치를지는 미리 알아보라고 꼭 말한다. 막상 닥치고 하려면 자식들이 더 고생한다고 하면, 한숨을 내쉬던 지인의 눈이 반짝한다.

남편이 가고 석 달도 안 된 때에 나는 '연명치료 거부서'에 서명했다. 요샌 의료 기술이 좋아져서 어떻게든 사람을 살려놓는다고 하는데, 콧줄과 인공호흡기 끼고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 일인가 싶다. 다들 나 같은 마음인 줄 알았는데 설명 들은 노인들 중에서 서명에 동의한 사람은 반밖에 안 되길래 사람들 생각은 다를 수도 있구나 했다.

내 삶으로 스며드는 빈자리

나 죽을 자리도, 연명 치료 거부서류도 만들어놓으니 일흔이라는 내 나이도 가뿐하다. 남편 옆으로 가기 직전까지 내 손으로 밥 해 먹고 화장실 가는 게 작은 목표가 됐다. 일주일에 세 번은 아파트 수영장에 가서 안 쉬고 10바퀴씩 돈다.

하체 운동이 중요하대서 발차기로만 몇 바퀴 더 돌기도 한다. 5년 넘게 나가는 색소폰 동호회에서 연습도 열심히 한다. 처음엔 악보도 잘 볼 줄 몰랐지만 이제 악보를 보고 바로 연주할 줄 안다. 요즘은 연말 공연 연습 중이다.

죽음을 준비하면서 오히려 삶이 더 선명해졌다. 수영장 물살을 가르는 순간마다, 색소폰을 불며 깊은 호흡을 할 때마다, 내 몸과 마음이 더 단단해지는 게 느껴졌다.

남편이 없는 삶은 여전히 허전하지만 그 빈자리도 조금씩 내 삶으로 스며든다. 누군가의 죽음이 내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닐 테니 그저 벌어진 일이라고 받아들인다. 벌어진 일이 너무 무거워서 어느 날은 한참을 우는 날도 있지만, 한참이 매일은 아니니 괜찮다.

나는 떠나는 날까지 잘 먹고, 잘 걷고, 잘 웃으며 이 삶을 살아내고 싶다. 언젠가 남편을 다시 만나게 될 때 당신 떠난 후에도 나는 당신이 남긴 따뜻한 흔적을 붙잡고 열심히 살았다고 말할 것이다. 남편을 보낸 후 첫 번째 겨울이 오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SNS에도 실립니다.


#연명치료거부서명#장례식#7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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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석 (gilseok) 내방

단단한 삶을 만들고 싶은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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