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밤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이모에게 온 전화였다.
"야! 빨리 한국 들어와라. 엄마가 혼자 이름도 모르는 요양사 옆에서 돌아가시게 생겼다!"
무슨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여행 가방을 꺼냈다. 캐나다 공항에서 가장 빠른 티켓을 끊어서 한국에 돌아왔다. 내가 엄마집에 들이닥치자 24시간 요양보호사는 도망치듯 집을 나가버렸다. 파킨슨 초기 환자와 요양사 둘만 있는 집에서 환자가 제대로 된 돌봄을 받을 거라고 믿은 내가 순진했다.
파킨슨 병 엄마와 보낸 7년

▲파킨슨 병은 운동으로 진행을 늦출 수는 있지만 막을 수는 없다. ⓒ marcohaenssgen on Unsplash
그날로 캐나다 생활을 접고 엄마 돌봄 생활이 시작됐다. 흰죽만 얻어먹던 엄마는 내가 끼니마다 해 드리는 새로운 반찬에 눈에 띄게 기력을 회복했다. 부축이 필요하긴 했지만 매일 나가는 산책도 엄마를 조금씩 살아나게 했다. 그렇게 엄마와 7년을 보낸 올해 2월, 나는 엄마를 요양원에 보냈다. 엄마가 94세, 내가 67세 되는 해였다.
파킨슨 병은 온몸의 근육이 점점 굳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운동으로 진행을 늦출 수는 있지만 막을 수는 없다. 그걸 늦춰 보겠다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했지만 7년의 시간을 이길 수는 없었다. 이제 식도 근육까지 마비가 온 엄마는 미음조차 삼킬 수가 없었다. 의사는 콧줄로 영양공급을 해야 한다고 했다. 병원에서 콧줄을 해주면 내가 집에서 모시겠다 했지만 의사는 응급 상황이 올 수도 있다면서 안 된다고 했다.
어머니는 생명을 잉태하는 순간, 지금까지 존재 해왔던 나를 버리고 여자에서 어머니로 다시 태어난다. 아기에 대한 사랑은 나만의 성공을 향한 욕망과 이기심과도 이별을 요구한다. 나를 앞세우기 전에 너를 위하는 마음, 그 마음이 나도 모르게 행동으로 바뀌어 가는 마법이다. 그렇게 너를 위하여 나를 비우고 내려놓는 삶이 내가 아는 어머니의 사랑이다.
어머니를 간호하며 보낸 7년은 내가 받은 사랑을 갚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매일 엄마 곁을 머물며 듣던 작은 숨소리와 떨리는 음성은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워 주었다.
아프고 지친 몸으로도 자식 걱정 뿐이던 어머니를 보며, 나는 사랑이란 결국 온전히 자신을 비워내는 일임을 배웠다. 그 시간이 힘겹지 않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후회는 없었다. 7년은 내가 어머니의 손을 붙들고 세상의 시계 바늘을 멈출 수 있었던, 한없이 고요하고 따뜻한 순간들이었다.
정호승 시인의 <이별>의 한 대목,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을 듣는 순간 느닷없이 눈물이 앞을 가렸던 것은 '떠나는 그대'가 나에게는 어머니였던 탓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꼬옥 잡아보지만 매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세월, 순간 순간 다가오는 이별이 야속했나 보다. 이별에서 오는 운명의 애틋함이다. 어머니의 모습은 하루 하루 스러져 가는데 아직 놓을 수 없는 내 마음이 서러웠나 보다.
요양원에서 나는 어린 아이가 된다

▲휠체어에 위태롭게 앉혀진, 앙상하게 여윈 어머니. ⓒ temiscamingue on Unsplash
매주 토요일, 면회를 할 때마다 나는 어머니의 천진하고 사랑스러웠던 서너 살의 어린 딸이 된다. 이번주는 또 어떠실지, 애타는 마음으로 어머니가 나오시는 문쪽을 놓치기라도 할 듯 바라본다. 휠체어에 위태롭게 앉혀진, 앙상하게 여윈 어머니 얼굴이 보인다.
어머니를 발견하자 마자 한걸음에 달려가 "엄마! 엄마! 엄마!" 이제 말을 배운 아이처럼 엄마를 끝없이 불러댄다. 톤을 높였다 낮췄다, 엄마의 눈길 한번 받으려 온갖 재롱을 담아 안달을 부린다. 그 순간 만큼은 오로지 엄마가 세상의 전부였고 엄마 곁에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으려던 어린 아이가 된다.
"엄마! 보고싶었어! 엄마! 예뻐졌네! 엄마! 사랑해!"
내가 부산스럽게 신나서 노래하듯 조잘대면 미동도 없던 어머니의 몽롱하던 눈빛에 생기가 돌고 드디어 나를 알아본다. 있는 힘을 다해 고개를 끄덕이려 안간힘을 쓰며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딸을 바라본다. 온 세상을 다 가진들 그 순간만큼 가슴 뭉클할 수 있을까! 벅찬 마음으로 어머니를 가만히 안아본다. 이제 어머니는 내 품에 쏘옥 안기는 작디 작은 아기가 되었다.
당신이 온 생애를 바쳐 나를 사랑으로 키워주신 것처럼, 당신 또한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로 사랑받고 있음을 기억하시라고 어머니의 마른 어깨를 다독인다. 나를 알아본 어머니 눈빛에 잔잔한 기쁨이 차 오르는 게 보여서 안심이다.
정호승 시인은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라고 노래하지만, 나는 어머니가 떠나기 전까지 내 힘껏 사랑하리라. 오늘 내 손길이 94세 노모에게 세상에서 가장 포근하고 따스한 온기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67세 딸이 한 올 한 올 풀어내는 정성이 꽃이 되어 어머니에게 닿길 기도하며 요양원을 나선다.
덧붙이는 글 |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이별의 순간까지 어머니가 부디 더이상의 육체적 고통이 악화되지 않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지내실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