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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2주기였던 2024년 10월 29일로부터 보름 정도 지난 11월 13일, 서울대학교 86동 207호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함께하는 서울대학교 간담회'가 열렸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간담회는 서울대학교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 기획단과 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가 함께 준비했다.

기억과 추모가 희미해지지 않도록

서울대학교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 기획단은 '소셜투어 4기 : 기억을 이어가는 여행'에서 만난 인연으로 시작되었다. '소셜투어 4기 : 기억을 이어가는 여행'은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려는 대학생들이 이태원 참사,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사회적 참사와 관련된 현장을 찾아가고 공부하는 프로젝트였다. 이태원 참사 2주기 무렵에는 '소셜투어 4기'에서 사회적 참사에 대해 고민하던 대학생들이 직접 유가족 간담회를 개최했다. 6개 대학에서 열린 유가족 간담회는 200명이 넘는 참가자들과 유가족이 만나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위로하는 자리가 되었다. 서울대학교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 기획단도 참사 2주기가 막 지난 시점인 11월, 참사에 대한 기억과 추모의 마음들이 흩어지고 희미해지지 않도록 서울대학교에서 유가족 간담회를 열고자 했다.

기억해 나가는 의미를 느낀 홍보 활동

간담회를 준비하며 가장 많은 신경을 쓴 부분은 홍보 활동이었다. 구체적으로는 포스터와 소형 전단지를 학내에 부착하고, 홍보부스를 설치했으며, 온라인 커뮤니티와 카카오톡 채팅방을 통해 간담회의 존재를 학내에 알렸다.

11월 4일부터 6일까지 3일간은 홍보부스를 차렸다. 자하연 앞, 학생회관 앞, 인문대 해방터 등 학내 구성원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에 부스를 차린 뒤, 소형 전단지를 나눠 주고 직접 제작한 판에 포스트잇으로 추모의 한마디를 받았다. 홍보부스를 운영한 기획단원들은 웃으며 리본을 받아 가는 사람들, 주변에 나눌 것이라며 리본을 더 달라고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참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학내에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홍보는 햇빛 아래 단풍이 빛나는 가을의 좋은 날씨 속에서 주로 진행됐다. 전단지를 나눠 줄 때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추모를 상징하는 보라 리본도 함께 건넸는데, 보라 리본이 손에서 손으로 넘어갈 때마다 받는 사람이 리본의 의미를 상상하며 가방이나 방에 걸어 두기를 바랐다. 학생들은 수업을 마치고 맑은 기분으로 전단지와 리본을 받아 가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보였다.

한편으로는 홍보가 차가운 빗속이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이루어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기획단원들이 건네는 리본과 전단지를 받아 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더 적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경우, 참사에 대해 같이 추모하자며 건네는 리본과 전단지에 깃들어있는 마음이 상대방에게 전달될 가능성은 작다고 느껴졌다. 사람의 마음과 관련된 일에 있어 불확실함이 동반되는 것은 당연하다. 때문에 홍보부스를 운영한 기획단원들은 추모가 행인의 선의나 기분에 따라 좌우되는 우발적 양상을 띠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가 참사를 기억하고, 활동해야만 한다고 느꼈다.

서울대라는 공간에서 간담회를 여는 것

서울대학교는 다른 학교와 달리, 학교 측에서 간담회 개최를 방해하는 일은 없었다. 사실, 간담회 개최를 방해하지 않는 것은 학교와 학생들이 참사에 대해 추모하는 마음이 커서라기보다 참사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기획단원들은 느꼈다. 간담회 개최에 대한 방해도 없었지만, 간담회에 관심을 두는 사람 자체도 적어 다른 학교보다 간담회 참여자를 모집하는 데 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9월 하순부터 학내 학생회관 앞에 설치한 "이태원 참사를 기억합시다"라는 홍보지 앞에 쌓여있던 보라 리본이 짧은 기간 내에 모두 사라져 다시 충분히 보충해야 했던 것, 누군가 보라 리본을 담은 컵에 조용히 과자를 놓고 갔던 것은 희생자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전해주는 듯했다. 넓은 캠퍼스 어딘가에 참사를 함께 기억하고 추모하는 '동료'가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큰 힘이 되었다.

 지난 4일, 서울대학교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 기획단원들이 자하연 앞 오거리에 간담회 홍보부스를 설치하는 모습.
지난 4일, 서울대학교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 기획단원들이 자하연 앞 오거리에 간담회 홍보부스를 설치하는 모습. ⓒ 와카바야시 치카

누군가의 미소나 손 흔들기만으로도

간담회를 시작하기 전까지 마냥 희망적인 생각만 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놀러 가서 죽었다", "참사 희생자로 정치 놀음을 하려고 한다"라는 2차 가해성 댓글을 이태원 참사 관련 게시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거대한 혐오의 물결 앞에서 기억과 추모를 외치는 기획단원들의 목소리가 행여 묻히는 것은 아닌지 간담회 날짜가 다가올수록 걱정이 커지기만 했다.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시작된 간담회는 마치 기획단원들의 걱정이 기우였음을 알려주는 듯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정미라씨(이지현씨 어머니)는 힘겨운 투쟁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거리에서 누군가가 지어주는 미소나 손 흔들기만으로도 유가족들은 매우 큰 힘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쓸쓸하고, 외로운 길을 걷고 있다고 느꼈을 유가족에게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해 주는 것처럼 간담회장을 꽉 채운 청중을 보며,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다.

 지난 13일, 서울대학교 86동 207호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의 모습.
지난 13일, 서울대학교 86동 207호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의 모습. ⓒ 소셜투어

축제가 기쁘기보단 두려워졌다

간담회는 담담한 어투로 시작됐다. 진중한 분위기 속에서 "소중한 자녀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은 가족의 삶이 파괴되었다는 것과 동일하다"는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

이태원 참사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경찰 수사. 관련자의 자료 제출 거부와 위증에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에 실패한 국회. 그리고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을 향한 조직적 2차 가해를 그저 방관하는 정부.

유가족을 돕기는커녕 외면만 일삼는 정부의 대처는 국가에 대한 유가족의 불신을 특히 가중시켰다. 정미라씨는 "이제는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면, 기쁜 마음보다는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고 고백했다. 사랑하는 자녀를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 사회 시스템 탓에 잃은 것처럼,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할 것만 같다는 불안감이 온몸을 잠식한다는 것이다.

유가족들을 일으켜 세운 것은

바뀌지 않는 현실에 대한 실망과 허망함으로부터 유가족들을 일으켜 세운 것은 다름 아닌 유가족들이었고, '연대'였다. 시청 앞 분향소와 기억소통공간 '별들의집'에서 만나, 유가족들은 함께 웃고, 울고, 서로를 위로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받을 수 있었다. 세상을 떠난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9명을 기리는 동시에,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공간으로서 기능하는 분향소의 의미가 다시금 마음 깊이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전라북도 전주에 위치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전주 합동분향소' 또한 마찬가지였다. 전주 합동분향소의 경우,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전북 지역의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소중한 사람을 잃은 기억을 공유하며 연대를 이어가고 있었다. 전주 합동분향소를 직접 차린 문성철씨(문효균씨 아버지)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분향소가 존속되어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가슴속에 새길 수 있었다.

 지난 13일, 서울대학교 86동 207호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의 모습. 왼쪽부터 사회자 조성윤, 정미라씨(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지현씨 어머니), 문성철씨(이태원 참사 희생자 문효균씨 아버지), 사회자 엄가을.
지난 13일, 서울대학교 86동 207호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의 모습. 왼쪽부터 사회자 조성윤, 정미라씨(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지현씨 어머니), 문성철씨(이태원 참사 희생자 문효균씨 아버지), 사회자 엄가을. ⓒ 소셜투어

마주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마주할 용기

분향소를 보존하고, 지키고자 하는 유가족들은, 녹록지 않은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유가족의 투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분향소를 찾는 시민의 수와 투쟁에 도움을 주던 활동가의 수는 참사 초반과 비교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더군다나 시간이 지나며 참사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틈을 타 과격해지는 2차 가해의 강도는 유가족이 오롯이 감당하기에 너무나 버겁다.

그럼에도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앞으로 나아간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유가족들에게는 세상을 허망하게 떠나는 희생자가 더 이상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누구보다도 강렬했다.

"저희는 그저 정의를 원해요. 한국 정부가 옳은 일을 해주길 바라요. 이 사건을 제대로 조사하고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해주는 것이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2년간의 이야기를 담은 수필, <참사는 골목에 머무르지 않는다>에 등장하는 문구이다. 모든 참사는 사회적이다. 이는 참사는 예측 불가능한 '사고'가 아닌 막을 수 있는 인위적인 재앙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가 막을 수 있던 참사라는 사실을 마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인터넷은 참사의 진실을 왜곡하는 정보로 오염되어 있고, 혐오의 목소리는 연대와 지지보다 커 보이기 일쑤이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참사의 본질을 직시할 때, 유가족과 연대하는 목소리를 낼 때에야 변화는 비로소 일어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불편한 진실과의 조우이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서울대학교 86동 207호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 포스터.
지난 13일, 서울대학교 86동 207호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 포스터. ⓒ 소셜투어

당신이 동참해야 하는 여정

비록 간담회는 마무리되었지만, 우리들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져 나간다. 참사 그 후, 다음과 같은 과제들이 우리 앞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첫째,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아래 특조위)의 추후 활동에 주목해야 한다. 참사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많은 사람이 이태원 참사에 관한 진상규명이 이미 끝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특조위 설치를 위한 특별법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좌절되었다가 5월에서야 여야 합의로 통과되었다. 지난 9월 출범한 특조위의 본격적인 조사는 내년 초에 시작된다. 유가족들은 피해자가 가족들에게 인계되기까지의 행적, 참사에 얽힌 사회구조적인 책임, 유가족들이 겪은 2차 가해 등 9대 진상규명 과제를 특조위에 제출한 상태이다. 특조위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감시하고, 진실이 규명되는 과정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둘째, 기억을 위한 공간을 오래도록 남겨야 한다. 기억한다는 것은 마음속에 그것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 두는 일이다. 참사의 현장이 압력에 부서지고, 날카로운 말에 깎이고, 끝내 콘크리트로 덮여 그 터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곳은 무형의 공간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어야 한다. 동시에 그 기억을 나눌 수 있는 실제적 공간 또한 필요하다. 이태원 참사의 추모 공간은 6호선 녹사평역, 서울시청 앞, 중구 부림빌딩을 거쳐 현재에는 서울 종로구 적선현대빌딩 1층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차례 이전 끝에 도착한 이곳 또한 임시공간으로, 우리에게는 영구적인 추모 공간의 부재라는 문제가 아직 남아 있다. 사회는 참사를 기억하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개개인을 넘어 사회적 차원의 애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일상과 가까운 곳에 추모를 위한 공적 공간이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연대의 힘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길고 긴 투쟁 전면에 서 있는 이들에게서 연대를 배운다. '함께 기억하려는 시민들이 어떻게 힘을 보탤 수 있을지, 어떤 연대의 순간에 가장 많은 힘을 얻으시는지'를 묻는 말에 유가족은 시민들이 행진할 때 건네주는 응원의 손짓, 어느 추운 날 연인이 주고 간 핫팩, 거리에서 누군가 달고 있는 보라 리본을 들어 답했다. 연대는 거창한 것이 아니지만, 그 힘만은 분명하다. 우리는 더 많이 참사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더 많이 참사에 관하여 이야기하여야 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연대의 힘을 전달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이번 간담회를 개최한 이유이기도 하다.

유가족은 죽음을 끌어안고, 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투쟁한다. 우리는 유가족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시작하여 이제는 유가족과 함께 그 길을 걸으려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이자 모든 참사의 생존자인 당신이 그 여정에 동참하기를 소망한다.

 지난 13일, 서울대학교 86동 207호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의 참가자들의 모습.
지난 13일, 서울대학교 86동 207호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의 참가자들의 모습. ⓒ 소셜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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