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웅. 아침부터 문자가 빗발친다. 시계를 보니, 아직 일어날 시간이 아니다. 가자미 눈으로 확인해 보니, 안전 문자가 연이어 도착하고 있었다. 폭설로 인한 안전 안내 문자 13개가 도착할 때마다 걱정이 한 겹씩 쌓였다.
경기도 용인에서 차를 끌고 서울까지 출근할 남편 걱정, 버스 타고 등교할 고3 아들 걱정, 20분 걸어서 등교할 고1 아들 걱정, 10분 걸어서 등교할 초6 딸 걱정. 옷은 무얼 입혀야 할지, 신발은 어떤 걸 신겨야 할지, 우산은 또 어떤 것을 챙겨줘야 할지, 보온을 위해 무얼 더 착용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머릿속이 분주했다.
빗발 치는 안전문자에 출근·
등교 걱정
방 밖에서도 못지않은 분주함을 담은 통화 소리가 들렸다. 오늘 출근이 가능하겠는지, 아침 회의는 어떻게 해야겠는지. 여러 사람과 주고받는 남편의 대화 속에서 폭설의 위기가 다시금 불안하게 다가왔다. 결국 남편의 출근은 취소되었다. 회의는 다 미뤄졌고, 재택근무로 결정이 났다.
걱정 하나가 사라지긴 했으나 여전히 아이들 걱정이 남아 있었다. '이런 날은 등교를 안 하는 게 맞지 않나?'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학교에서 문자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폭설로 오늘 등교 시간은 12시로 변경합니다." - H고등학교(06:56)
"기상악화로 금일 등교시간을 9시 50분으로 하겠습니다." - B고등학교(07:13)
두 아이의 아우성이 들렸다.
"왜, 형은 12시까진데, 나는 9시 50분이야? 12시까지 갈 바에는 학교를 왜 가?"
학교마다 교직원들의 결정이 다르니, 가정에서는 그에 맞게 준비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고등학교는 타지역에서 오는 학생들이 있으니 그런 조치를 취하는 게 맞겠지만, 초등학교는? 비록 집 근처 학교지만 어린 학생들이 눈길 속에서 등교해도 과연 괜찮을까? 사실 막내가 제일 걱정이었다. 그때 변동 사항을 전달하는 문자가 다시 도착했다.
"폭설로 교통상황이 너무 악화되어 금일 본교는 휴업합니다."-B고등학교(08:00)
우선 한 아이의 등교 준비는 멈춰도 됐다. 초등학교는 어떻게 되는 걸까? 막내딸 아이의 부츠를 신발장에서 찾아 꺼내려는데, 드디어 초등학교에서도 문자가 당도했다.
"밤사이 폭설로 인하여 경기도교육청 권고로 인하여 본교는 재량휴업일을 실시합니다. 학생 및 교직원의 안전을 위하여 휴업함을 알려드립니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긴급상황임을 알려드립니다." - N초등학교(08:00)
도교육청에서 나선 모양이었다. 그리고 연이어 큰아이의 학교에서도 문자가 당도했다.
"(긴급 안내)도교육청 휴업 권고에 따라 오늘 휴업을 결정하였습니다." - H고등학교(08:10)
내일 아침은 일상으로 돌아오길
새벽부터 지속되던 걱정이 한꺼번에 해결되었다. 아무도 나가지 않는다. 아무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새로운 걱정이 다시 들이쳤다.
"오늘 하루 종일 집에서 뭐 해 먹지?"
폭설 속에 새벽 배송을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어제 식재료 주문을 하지 않았다. 나 혼자였다면 대충 집에 있는 걸로 때우면 될 일이었지만, 먹성 좋은 남편과 성장기인 세 아이를 먹일 생각에 또다시 마음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며, 빠르게 메뉴를 고민했다. 두 끼만 먹자.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저녁을 좀 든든히 먹자. 오전 10시가 되어야 슈퍼 문을 여니 그때 부츠 신고 얼른 걸어가서 식재료를 사 오자. 아침 겸 점심으로는 밀키트를 좀 이용하고, 저녁은 김밥을 싸야겠다. 메뉴를 정하고 보니, 마음이 좀 놓인다. 이왕 상황이 이렇게 흘러갔으니, 정말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이는 이 시간을 즐겨봐야겠다.
기상 상황이 궁금하여 자꾸만 열어보게 되는 뉴스에는 안타까운 소식이 연이어지고 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안전을 안내하는 방송도 들린다. 창밖은 쌓인 눈으로 인해 아름답기만 한데, 이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너무도 힘든 일들이 공존하고 있다. 오늘이 무탈하게 어서 지나갔으면 좋겠다. 다시금 맞을 내일 아침은 걱정과 불안이 아닌, 희망에 찬 활기가 가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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