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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일 새벽녁 경기도 군포시에 쉴새 없이 내리는 눈.
28일 새벽녁 경기도 군포시에 쉴새 없이 내리는 눈. ⓒ 오마이뉴스

우웅. 아침부터 문자가 빗발친다. 시계를 보니, 아직 일어날 시간이 아니다. 가자미 눈으로 확인해 보니, 안전 문자가 연이어 도착하고 있었다. 폭설로 인한 안전 안내 문자 13개가 도착할 때마다 걱정이 한 겹씩 쌓였다.

경기도 용인에서 차를 끌고 서울까지 출근할 남편 걱정, 버스 타고 등교할 고3 아들 걱정, 20분 걸어서 등교할 고1 아들 걱정, 10분 걸어서 등교할 초6 딸 걱정. 옷은 무얼 입혀야 할지, 신발은 어떤 걸 신겨야 할지, 우산은 또 어떤 것을 챙겨줘야 할지, 보온을 위해 무얼 더 착용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머릿속이 분주했다.

빗발 치는 안전문자에 출근·등교 걱정

 28일 오전 경기도 군포. 도로 제설 작업이 원활치 않아 차들이 멈춰 있거나 서행하고 있다.
28일 오전 경기도 군포. 도로 제설 작업이 원활치 않아 차들이 멈춰 있거나 서행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방 밖에서도 못지않은 분주함을 담은 통화 소리가 들렸다. 오늘 출근이 가능하겠는지, 아침 회의는 어떻게 해야겠는지. 여러 사람과 주고받는 남편의 대화 속에서 폭설의 위기가 다시금 불안하게 다가왔다. 결국 남편의 출근은 취소되었다. 회의는 다 미뤄졌고, 재택근무로 결정이 났다.

 28일 새벽 경기도 군포시 한 아파트 단지에 쌓인 눈들.
28일 새벽 경기도 군포시 한 아파트 단지에 쌓인 눈들. ⓒ 오마이뉴스

걱정 하나가 사라지긴 했으나 여전히 아이들 걱정이 남아 있었다. '이런 날은 등교를 안 하는 게 맞지 않나?'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학교에서 문자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폭설로 오늘 등교 시간은 12시로 변경합니다." - H고등학교(06:56)
"기상악화로 금일 등교시간을 9시 50분으로 하겠습니다." - B고등학교(07:13)

두 아이의 아우성이 들렸다.

"왜, 형은 12시까진데, 나는 9시 50분이야? 12시까지 갈 바에는 학교를 왜 가?"

학교마다 교직원들의 결정이 다르니, 가정에서는 그에 맞게 준비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고등학교는 타지역에서 오는 학생들이 있으니 그런 조치를 취하는 게 맞겠지만, 초등학교는? 비록 집 근처 학교지만 어린 학생들이 눈길 속에서 등교해도 과연 괜찮을까? 사실 막내가 제일 걱정이었다. 그때 변동 사항을 전달하는 문자가 다시 도착했다.

"폭설로 교통상황이 너무 악화되어 금일 본교는 휴업합니다."-B고등학교(08:00)

 28일 오전 경기도 군포 도로에 서 있는 차들. 미끄러진 차량을 행인들이 돕고 있다.
28일 오전 경기도 군포 도로에 서 있는 차들. 미끄러진 차량을 행인들이 돕고 있다. ⓒ 오마이

우선 한 아이의 등교 준비는 멈춰도 됐다. 초등학교는 어떻게 되는 걸까? 막내딸 아이의 부츠를 신발장에서 찾아 꺼내려는데, 드디어 초등학교에서도 문자가 당도했다.

"밤사이 폭설로 인하여 경기도교육청 권고로 인하여 본교는 재량휴업일을 실시합니다. 학생 및 교직원의 안전을 위하여 휴업함을 알려드립니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긴급상황임을 알려드립니다." - N초등학교(08:00)

도교육청에서 나선 모양이었다. 그리고 연이어 큰아이의 학교에서도 문자가 당도했다.

"(긴급 안내)도교육청 휴업 권고에 따라 오늘 휴업을 결정하였습니다." - H고등학교(08:10)

내일 아침은 일상으로 돌아오길

새벽부터 지속되던 걱정이 한꺼번에 해결되었다. 아무도 나가지 않는다. 아무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새로운 걱정이 다시 들이쳤다.

"오늘 하루 종일 집에서 뭐 해 먹지?"

폭설 속에 새벽 배송을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어제 식재료 주문을 하지 않았다. 나 혼자였다면 대충 집에 있는 걸로 때우면 될 일이었지만, 먹성 좋은 남편과 성장기인 세 아이를 먹일 생각에 또다시 마음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며, 빠르게 메뉴를 고민했다. 두 끼만 먹자.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저녁을 좀 든든히 먹자. 오전 10시가 되어야 슈퍼 문을 여니 그때 부츠 신고 얼른 걸어가서 식재료를 사 오자. 아침 겸 점심으로는 밀키트를 좀 이용하고, 저녁은 김밥을 싸야겠다. 메뉴를 정하고 보니, 마음이 좀 놓인다. 이왕 상황이 이렇게 흘러갔으니, 정말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이는 이 시간을 즐겨봐야겠다.

기상 상황이 궁금하여 자꾸만 열어보게 되는 뉴스에는 안타까운 소식이 연이어지고 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안전을 안내하는 방송도 들린다. 창밖은 쌓인 눈으로 인해 아름답기만 한데, 이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너무도 힘든 일들이 공존하고 있다. 오늘이 무탈하게 어서 지나갔으면 좋겠다. 다시금 맞을 내일 아침은 걱정과 불안이 아닌, 희망에 찬 활기가 가득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페이스북 그룹에도 실립니다.


#폭설#안전안내문자#빗발친문자#출근취소#등교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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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평범한 주부. 7권의 웹소설 e북 출간 경력 있음. 현재 '쓰고뱉다'라는 글쓰기 공동체에서 '쓰니신나'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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