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농장동물 복지 향상 방안 모색을 위한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 최나영 기자
어미돼지(모돈)의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새끼돼지의 생존율과 면역력도 높아지려면 동물 복지가 향상돼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정부는 지난 2012년부터 동물복지축산농장 인증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을 받은 돼지 농장은 이번 달 기준, 전체 돼지 농장의 0.45%(25개소)에 그치는 실정이다.
또 지난 2020년 축산법 시행령 개정으로, 농가들은 2029년 12월 31일까지 임신한 어미돼지(임신돈)의 사육 공간을 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운 '군사시설'(무리 사육 시설)로 변경해야 하지만, 축산업계에서는 부담스럽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는 국내 농가의 대부분이 임신돈을 좁은 감금틀인 스톨(stall)에서 사육하고 있다. 스톨은 임신돈을 사육하는 시설로, 돼지가 몸을 돌릴 수도 없는 구조로 돼 있다. 이곳에서 사육되는 돼지는 관절 손상, 보행 장애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사람들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가운데, 국내 돼지들의 복지는 조금이나마 향상될 수 있을까. 27일 동물단체와 학계·양돈축산업계·정부·국회 관계자들이 '농장동물 복지 향상 방안 모색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돼지의 행복과 농가의 지속가능성을 모두 잡을 수 있는 방안을 논의했다.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이 행사는 동물복지국회포럼과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AWARE)가 주최했다.
동물단체 "생산성 억지로 올리려 하면 동물 복지 수준 떨어져"
이날 동물단체 측은 스톨 사육 방식에 대한 우려 목소리를 냈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도 지난해 8개 돼지 농장을 대상으로 동물 복지를 평가한 보고서를 발표하며 "임신돈의 사육환경을 조사한 결과, 돼지의 몸이 커지면서 스톨에 너무 끼거나 다리 등이 삐져나오거나 다른 스톨로 넘어가는 등의 문제점이 있었다"고 밝혔다.
함께 조사에 참여한 최태규 수의사도 "방목 상태보다 사람이 적절히 개입해서 먹이를 주고 쉴 곳을 주고 천적으로부터 막아주면 복지 수준도 올라갈 수 있다"며 "하지만 생산성을 억지로 더 올리려고 하다 보면 밀도가 올라간다거나 공기가 안 좋아진다는 등의 이유로 동물 복지 수준이 급격하게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스톨에서 사육되는 임신돈 ⓒ 어웨어 제공
윤진현 전남대학교 교수도 어미돼지가 분만 전 본능적으로 하는 둥지짓기와 같은 행동을 충분히 할 수 있어야 포유에 필요한 옥시토신과 같은 호르몬이 잘 분비돼 생산성도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현재 돼지들 대다수는 분만 전 이 같은 본능적인 행동을 충분히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사육되고 있어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다.
윤 교수는 또 "돼지들이 서열 다툼을 하기 때문에 싸움을 하더라도 정상적인 상황이면 금방 끝낸다"라며 "하지만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계속 싸우니까 상처들도 많이 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축산업계 "수익 보장 없는데 등 떠밀려 가는 건 부담"
소비자단체 "동물복지 기준 제대로 마련돼야 소비자도 바뀔 것"
반면 양돈축산업계는 "동물 복지를 법적으로 강제하는 움직임이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이병석 한돈미래연구소 부소장은 "농가 입장에서는 수익에 대한 보장이 없는 상태에서 자꾸 등 떠밀려서 갈 수밖에 없는 상태니까 답답하다"며 "군사시설을 설치할 때 돼지를 다 빼야 하는데 어떻게 할 건지가 가장 큰 문제고, 군사시설로 전환했을 때 돼지 사육 수가 줄어들 건데 그 부분을 어떻게 할 건지도 걱정"이라고 호소했다.
이 부소장은 소비자의 90%가 '동물복지 인증 축산물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난 어웨어의 설문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현실과 괴리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부소장은 "일부 농가들이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축산물을 내놓았지만, 얼마 되지도 않아서 포기했다"며 "설문조사에서 답하는 것과 실제로 비싸게 나왔을 때 소비자가 사는 것은 다른 차원"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산업계는 항상 '정부가 다 해 주고 소비자가 다 먹으면 우리가 안 할 이유가 뭐가 있냐'고 한다"며 "그런데 자유주의 시장에서 본인들이 어떤 투자를 통해서 사회가 요구하는 것에 맞춰 가는 것도 기업의 책임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이어 조 대표는 "산업계도 같이 노력하고 개선하려는 의지가 같이 해야 한다"며 "지속가능한 축산에 대한 숙제는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다. 상호 노력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조 대표는 정부를 향해 "산업계가 동물 복지를 적용하려 할 때 겪는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정책과 연구 기반 등을 마련 등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조 대표는 정부에 "동물 복지 인증 개념을 하나의 구색 맞추기로 가져가고 있다"며 "기후위기 등으로 공장 축산은 전 세계적으로 계속 문제제기 되고 있다. 동물 복지를 작은 개념으로 끌고 갈 게 아니라, 아주 획기적인 변화를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자연에 풀어 놓아진 어미 돼지가 포유 활동을 하고 있다. 동물 복지 환경 최적화 사례. ⓒ 윤진현 전남대학교 교수 제공
소비자 단체에서는 동물복지 기준이 마련되고, 소비자들에게도 동물 복지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돼야 소비자들의 실질적인 소비 행태가 바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연화 소비자공익네트워크 회장은 "가령 '동물복지 계란'의 경우도 그 신뢰성이 많이 무너지고 있다"며 "동물복지의 기준을 어디에 맞추고 있는지 알려달라는 소비자들이 상당히 많이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영조 농림축산식품부 동물복지정책과장은 "동물복지 축산 인증을 받지 않은 일반 농장들에 대한 동물 복지도 진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일반 농가들이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내용을 담은 자발적 수준의 가이드라인 것을 만들어서 일반 농가들에게도 보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소리의숲'(https://forv.co.kr)에도 실립니다. ‘소리의숲’은 2024년 9월 문을 연 1인 언론입니다. 소리의숲 홈페이지에 들어오시면 더 많은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