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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6일, 양심과 신념에 따라 군 복무를 거부한 이들 60여 명이 역사상 처음으로 대체복무요원으로 소집됐습니다. 그 이후로 4년이 지난 현재까지 1500명이 넘는 인원이 3년 동안 교정시설에서 합숙복무를 하고 있습니다. 병역거부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과거와 달리 대체복무제도 시행 이후에는 오히려 많은 이들의 관심 밖으로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에 대체복무제도를 직접 경험한 이들이 현장에서 길어 올린 생생한 경험을 전하는 기획 〈대체복무 표류기〉를 준비했습니다. 심사와 복무 전반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살펴보고 이에 대한 해법을 모색합니다.[기자말]
나는 비폭력 평화주의를 추구하는 단체 등에서 활동하며 형성된 신념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 깊게 뿌리 내린 군사주의 문화에 반대하기 위해 병역거부를 결심했다.

감옥에 수감될 줄만 알았는데 병역거부 운동의 숙원 과제였던 대체복무제도가 다행히 도입되었다. 징벌적 성격의 반쪽짜리 대체복무제도지만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탄생한 제도인 만큼 일단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부딪히며 대안을 모색하고 싶었다.

그래서 대체복무를 신청했고 현재 복무 중이다. 교정시설(교도소 및 구치소) 배치 전에 실시하는 3주간 합숙교육에 참가하기 위해 방문한 대체복무교육센터 정문에는 '신념과 병역의 조화를 위한 첫걸음'이라는 문구가 커다랗게 걸려 있었고 이것을 목표하는 국가기관이 생겼다는 것을 보니 새삼 감격스러웠다.

 대체복무 교육센터에 걸린 문구
대체복무 교육센터에 걸린 문구 ⓒ 지훈

그런데 대체복무교육센터의 현관문을 열자마자 마주한 것은 병역거부자의 신념과 결코 조화가 될 수 없는, 군대식 질서에 대한 복종이었다. "조용히 대기합니다!"라고 큰 소리로 호통을 치며 기선을 제압하는 교도관의 첫 마디는, 흡사 학창시절 경험한 병영캠프를 연상케 했다.

교도관은 신규 대체복무요원 수십여 명을 강당에 모아놓고, 식당에서 식사할 때 그리고 중앙현관을 지날 때 휴대폰을 사용하지 말 것, 복도에서 삐딱하게 서 있거나 팔짱을 끼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지 말 것 등을 주문하였고 이를 어길시 생활평가 점수 감점을 부과하는 등 불이익한 처분을 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것을 준수하는 게 왜 필요한지 나는 질문했으나 "센터장님의 지시"라는 유감스러운 답변이 돌아왔다. 이처럼 내가 교육센터에서 경험했던 지시와 규율은 대체복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같은 군대식 질서는 대체복무 현장에서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다.

변화를 맞이한 대체복무

3주간의 교육을 마치고 교정시설에 배치되었고 복무 중 보안과 업무를 경험했다. 교정시설에는 보안과, 총무과, 출정과, 직업훈련과, 사회복귀과, 의료과 등 다양한 부서가 존재하는데, 이 가운데 보안과는 교도관이 가장 많이 배치되어 수용자의 생활을 관리하고 교정시설 내 질서를 유지하는 일을 하는 핵심 부서이다.

보안과에 배치된 대원은 보안과 직원의 업무를 보조하는, 일종의 사회복무요원과 같은 일을 하게 된다. 대체복무요원의 복무를 감독하고 있는 법무부 교정본부는 대체복무 도입 초기에 병역거부자들을 구매(수용자 자비 구매물품 공급 업무), 세탁(수용자 의복 및 침구 세탁·지급 업무), 청소(교정시설 내 청소 및 쓰레기 수거 업무) 등 업무에 주요하게 투입했다.

이는 본래 징역형에 복역 중인 수용자들이 출역의 일환으로 수행하던 일인데 그것을 병역거부자들이 그대로 물려받게 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수용자'에서 '대체복무요원'으로 표면적 신분만 바뀐 채 사실상 동일한 일을 하게 되어 부적절하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한편 2023년 4월 국가인권위원회는 교정시설 내 대체복무에 대해 한정적인 업무에서 탈피하여 대체복무요원의 적성 및 자격을 고려하여 업무를 다양화할 것을 권고하였다. 또한 교정시설 내부에서도 대체복무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는 상황이었다. 수용자는 자신이 일하는 영역이 줄어들었다는 이유에서, 교도관은 대체복무요원 배치 이후에도 업무 경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법무부 교정본부는 대체복무요원을 보안과 업무에 투입하는 정책을 지난해 시범 운영하고, 올해부터 전국 기관으로 확대했다. 이로 인해 과거 수용자가 담당했던 일은 대체복무요원의 업무에서 점차 줄어들었고, 보안과 지원을 중심으로 업무가 재편되는 변화를 맞이했다.

신념과 충돌하는 업무들

 교도소의 환자 이송 모습(자료사진).
교도소의 환자 이송 모습(자료사진). ⓒ 법무부 교정본부

내가 보안과에서 수행한 업무 중 하나는 수용자 외부진료 보조였다. 수용자는 기본적으로 교정시설 내에 마련된 의료과에서 진료를 받지만, 그것으로 해소되지 않을 때는 외부 병원을 방문해서 진료를 받는다.

대체복무요원의 외부진료 보조 업무는 수용자가 외부병원 진료를 위해 교정시설 밖으로 외출할 때 수용자 호송팀에 소속되어 동행·보조하는 일이다. 외부진료를 나간 수용자가 도주하는 일이 이따금 발생하는 만큼 수용자 호송은 철저히 예의주시가 필요한 업무 중 하나로 여겨진다.

나는 호송 업무를 보조하면서 내가 가진 비폭력주의 신념과 충돌하는 순간을 종종 마주했다. 외부진료를 나가는 수용자는 수갑을 비롯한 이른바 보호장비로 몸을 결박당하고, 교도관은 총을 소지한다. 수용자의 도주를 예방한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이를 지켜보면서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대체복무요원이 직접 물리력을 행사하고 장비를 사용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이를 지원하는 업무는 해야 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적절한지 고민이 생겼다.

또한 수용자가 탑승한 휠체어를 밀 것을 지시받기도 했다. 수용자는 도주할 수 없도록 몸이 휠체어에 결박된 채 이동한다. 수용자의 몸은 휠체어에 묶여있고 그 휠체어를 내가 움직인다면 수용자에게 강제력과 물리력을 행사하는 계호 업무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담당 직원이 대체복무요원의 업무와 권한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서 발생한 해프닝으로 볼 수도 있지만 현장에서는 이 같은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당시 나는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고 응했지만 과연 괜찮은 것인지 계속 마음에 걸렸다.

내가 했던 또 다른 업무는 중앙통제실 보조였다. 중앙통제실은 교정시설의 CCTV 관제실로, 영상 계호 대상으로 지정된 수용자를 카메라로 24시간 감시하는 것이 핵심 임무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94조는 '교도관'이 전자장비를 이용하여 수용자 또는 시설을 계호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판례에서도 전자장비를 사용한 영상 계호는 '교도관이 육안으로 하는 시선계호'를 대체한 것으로 규정한 바가 있다(2015헌마243). 그럼에도 전국의 많은 대체복무요원은 현재 중앙통제실에 배치되어 교도관이 보는 CCTV 영상을 함께 보고 있다.

나는 이 업무에 배치되기 전 보안서약서에 날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업무상 알게 된 정보에 대해서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어떤 종류의 정보에 접근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확실히 깨달았다. CCTV를 관찰하는 것은 수용자의 내밀한 일상을 24시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수용자가 잠을 자고 밥을 먹는 일에서부터 옷을 갈아입고 용변을 보는 일까지 지켜보는 일이었다.

정보인권 분야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이곳에서도 나의 신념과 충돌하는 지점을 마주했다. CCTV 영상은 그 민감성이 인정되어 개인정보 보호법에서도 특별하게 규제하는 정보이다. 법률에 의해 적법한 권한을 부여받은 교도관과 달리 대체복무요원은 교도관의 업무를 보조한다는 이유만으로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불특정다수 수용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대체복무요원이 화재 위험을 발견하고 조치하는 사례나 자살시도를 하는 수용자를 발견하고 사고를 예방하는 사례처럼 긍정적인 면도 있다. 하지만 수용자의 사생활을 이렇게 깊숙하게 침범하는 일이 적절한지 혼란스러웠다.

이외에도 업무 수행 중에 수용자의 개인정보를 보게 되는 일도 있었다. 수용자의 주민등록번호, 범죄 내용, 질병 기록, 상담일지, 성적 지향 등 민감한 개인정보가 대체복무요원에게 노출되는 일이 잦았다.

교도관도 자신이 맡은 업무 범위에 한정하여 수용자의 개인정보에 부분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하물며 대체복무요원의 경우 애초에 수용자의 개인정보를 몰라도 업무 수행에 지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업무상 알게 된 수용자의 개인정보를 유출하지 않도록 개개인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애초부터 개인정보에 접근하는 사람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등 안전성 확보 조치가 필요하다. 이는 개인정보를 다루는 기관이라면 지켜야 할 법적 의무임에도 현장에서 이 같은 노력은 부족하다.

신념을 보장하는 대체복무의 길

 종교나 비폭력·평화주의 신념 등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가 처음 시행된 2020년 10월 26일 오후 대전교도소 내 대체복무 교육센터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 63명의 입교식이 열렸다. 사진은 대체복무자의 생활관 외부 모습.
종교나 비폭력·평화주의 신념 등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가 처음 시행된 2020년 10월 26일 오후 대전교도소 내 대체복무 교육센터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 63명의 입교식이 열렸다. 사진은 대체복무자의 생활관 외부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나는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대체복무 생활관에 적혀있는 '신념과 병역이 조화로운 대체복무'라는 공감하기 어려운 문구를 마주한다. 현 대체복무제도는 모든 면에서 신념과 조화롭지 못하다. 위계적 질서가 강조되는 교정시설이라는 공간은 병역거부자의 신념과 조화로울 수 없다.

수용자 또는 대체복무요원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조직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군대에 가까운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념이라는 헌법적 가치와 병역이라는 법률상 의무는 교정시설이 아니라 사회복지기관, 병원, 비영리단체 등 공익적 성격을 지닌 기관에서 진정한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대체복무가 당분간 교정시설에 국한된다고 하더라도, 수용자를 대면하여 직접적인 위계를 형성하는 보안과 업무 등은 재고가 필요하다. 이미 보안과가 아닌 부서에서도 대체복무요원이 복무하고 있으며 이를 더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예컨대 교정시설의 본래 임무이지만 역부족이었던 교육교화·사회복귀 등의 기능을 강화하는 데 대체복무요원이 어떻게 기여할지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대체복무를 선택한 이들에게 그 신념과 충돌하는 일을 시키는 한, '신념과 병역이 조화로운 대체복무'는 영원히 요원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지훈(병역거부자, 대체복무요원)입니다. 안전상의 이유로 가명을 썼습니다. 이 기사는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대체복무#양심#병역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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