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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언니가 카카오톡에 답글 올렸지. 놀랐어. 좀 죄송한 표현이지만 귀엽지?"
"그러게 말이야. 그 언니가 답글을 올릴 줄은 상상도 못 했어."
"맞아 귀엽고 대단해."

왕언니의 연세는 89세이고 우리 레인은 물론이고 수영장 전체에서도 최고 연장자로 알고 있다. 수영장에서 우리 레인은 12명이고 실상은 상급반이지만 실버반이라고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89세 87세, 86세 80대 후반이 세 분이고 70대가 6명 60대 후반이 3명이다. 대충 계산해보니 평균나이가 75세로 나온다.

우리 반 바로 윗반이 연수반이지만 그 누구도 그 반으로 가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연수반에서 올초에 70대 후반인 회원 한 명이 우리 반으로 오기도 했다. 누구도 서두르지 않고 급하게 수영을 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속도를 맞추며 하고 있다. 50분 강습에 25m를 25~28바퀴 정도 돌고 있다.

 80대 후반 언니들의 수영 경력은 올해로 거의 30년을 훌쩍 넘기고 있다.
80대 후반 언니들의 수영 경력은 올해로 거의 30년을 훌쩍 넘기고 있다. ⓒ artemverbo on Unsplash

왕언니는 1번 언니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그 호칭은 코로나 있기 몇 년 전까지는 왕언니가 선두에서 출발하고 나머지 회원이 그 뒤를 따르면서 생겼다. 7~8년 전쯤인가? 선두의 자리를 후배들에게 넘겨주었다.

후배들이 언니가 1번을 더 해야 한다고 했지만 "아니야, 이젠 젊은 사람들이 앞에서 할 때가 됐지. 아니 지났지" 하며 극구 반대하셔서 할 수 없이 1번 자리를 60대 후반인 조금 젊은 회원이 이어받게 되었다. 왕언니는 웬만해선 결석도 하지 않는다. 몸이 아프거나 여행을 떠나지 않는 한 출석률은 96% 정도로 높다.

80대 후반 언니들의 수영 경력은 올해로 거의 30년을 훌쩍 넘기고 있다. 나도 어느새 14년이 되었지만 나의 2배도 넘는 세월 동안 수영을 하신 거다. 이에 수영장 후배들은 그 세 분의 언니들을 알게 모르게 롤모델로 삼고 있기도 하다.

그 언니들의 연세를 알고 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놀라면서 "나도 저 언니들처럼 그 나이까지 할 수 있을까?"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저분들이 정말 90세가 다 되신 거예요?"라고 물어보는 이들도 있다.

우리 레인 대부분은 12년 정도 상급반에서 함께 운동을 해왔다. 마치 한 식구처럼 누군가가 며칠 안 보이면 전화, 혹은 개인 카톡을 해서 안부를 묻기가 일쑤이다. 나이를 떠나 오래된 친구처럼 편해졌다. 이러니 대화방이 더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한 달 전쯤 단체 대화방(단톡방)을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다. 몇 명은 "그거 만들어서 뭐하게" 하며 반대했고 몇 명은 찬성했다. 하지만 대화방이 없으면 총무가 하는 일이 더 많아지니,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수영장 소식, 우리 반 회식 알림, 결혼식, 병상 소식 등 소소한 공지사항이 제법 많기 때문이다. 또 개인적인 이런저런 소식이 궁금할 때 소통의 창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오래전부터 단톡방을 만들려고 했지만 연세가 적잖은 언니들이 과연 적응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앞섰다. 혹여 소외감을 느끼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날이 갈수록 총무가 일일이 말로 전 하는 것도 한계가 있기도 했다.

총무가 개인 사정으로 결석을 했는데, 공지사항이 있을 경우 다른 누군가에게 따로 부탁하곤 했었다. 몇몇 사람들이 그래도 단톡방은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한 달 전에 만들게 되었다.

단톡방엔 여러 명이 모여 있으니, 누가 뭘 물어봐도 쉽게 답을 해줄 수 있는 장점도 있으니 말이다. 단톡방을 만들고 나니 편리한 점이 더 많아졌다.

개인 사정으로 결석을 하는 사람이 "오늘은 무슨 사정으로 결석해요" 하고 올리니 궁금증이 사라지기도 했다. "ㅇ월 ㅇ일에는 단체 회식이 있어요. 그러니 한 분도 빠짐없이 참석 바랍니다. 날씨가 추워진다고 해요. 건강 조심하세요"라고 총무가 올리기도 한다.

왕언니는 그런 글에 "총무님이 수고가 많아요. 건강조심하고"라고 답을 하거나, 하트 표시로 답 글을 대신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누구는 단톡에서 나가기도 했고, 60대 후반임에도 불구하고 답글을 안 다는 회원도 있다. 아예 읽지도 않은 회원도 있다. 그런 여러 가지 형태 모두 개인의 취향일 것이다.

단톡방에서 나간 회원한테 총무가 "언니 카톡방에서 왜 나갔어요?" 하고 물으니 "내가 어딜 나가?" 하기에 "아~~네" 하고 말았다고 한다. 무슨 설명을 어떻게 해야 할지 힘들다고 했다. 80대 언니 두 분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기에 단톡방에 초대하지 못했다고 총무가 말해주었다.

얼마 전엔 수영장에 들어서는 왕언니를 향해 박수를 치면서 "언니 멋져요. 언니가 카카오톡에 답글을 올리셨잖아요" 하며 하트를 날리기도 했다. 왕언니께서 답글을 다는 것이 좋다는 문화를 알고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왕언니께서 카카오톡에 답글을 다는 것을 모를 수도 있어서 손주들이나 다른 누구한테 배웠다면 더더욱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언니는 멋쩍다는 듯이 "글씨가 안 보여서 더듬더듬 썼어" 하며 수줍게 웃었다.

덧붙이는 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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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순 (jhs3376) 내방

주로 사는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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