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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신부 맞절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가 맞절을 하고 있다.
신랑신부 맞절결혼식에서 신랑 신부가 맞절을 하고 있다. ⓒ 박귀단

지난 주말 조카 결혼식이 있어 두 딸과 35개월 손자와 함께 제주특별자치도에 갔다. 결혼문화가 독특한 제주, 몇 번 갔지만 언제나 설렘과 떨림이 있는 매력적인 섬이다. 그곳은 볼거리와 즐길 거리도 많지만 맛집 투어도 빼놓을 수 없다.

고향 관매도를 지키고 계신 큰오빠부터 막냇동생까지 집안 형제들이 오랜만에 모두 모였다. 결혼식은 오전 11시다. 우리는 10시 반경 식장에 도착했다. 형제 가족들은 이미 도착해서 축하 인사를 건네며 덕담으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결혼식은 육지와 마찬가지로 양가 어머님이 화촉을 밝히면서 시작했다. 요즘에는 대부분 주례 없는 결혼식이다. 조카 결혼식도 주례 대신 신랑 아버지인 동생이 덕담으로 갈음했다. 동생은 정연복 시인의 결혼 축시 '아름다운 부부'로 아들과 며느리를 축하했다.

신랑 아버지가 신랑 신부에게 덕담 하는 사진 신랑 신부가 신랑 아버지의 축사를 경청하고 있다.
신랑 아버지가 신랑 신부에게 덕담 하는 사진신랑 신부가 신랑 아버지의 축사를 경청하고 있다. ⓒ 박귀단

'정신의 기둥 하나만으로
서 있는 겨울나무같이

오직 믿음과 사랑 안에서
하나 되는 아름다운 부부

(~ 중략 ~) 행복하여라 하늘만큼
땅만큼 행복하여라'

"신랑 태현이 좋아하는 게임과 치킨을 주 1회 허락하겠다." "신부 희서가 좋아하는 드라이브를 주1회 하겠다"는 신랑 신부 성혼선언문 낭독에 하객들이 "귀엽다"며 소리내서 웃었다.

신랑은 축가로 가수 이클립스 '소나기'를 멋지게 불렀다. 신랑 신부는 퇴장 행진 중간에 귀엽게 퍼포먼스를 했다. 하객들이 꽃잎을 뿌려 플라워샤워 해주며 '키스해'를 외치고, 신랑 신부 키스로 본식은 잘 끝났다. 폐백은 생략했다.

결혼식 자체는 육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일기 예보와 달리 맑고 쾌청한 가을 날씨도 조카의 결혼을 축복했다.

신랑신부면 됐지, 부신랑 부신부는 뭘까

결혼 기념사진 촬영을 지켜보니, 육지와 두 가지가 달랐다. 하나는 육지에 없는 기념사진으로 신랑 신부와 사회자, 부신랑 부신부 다섯 명이서만 찍는 기념사진이다. 다소 생소할 수 있는 개념인 '부신랑 부신부'는, 신랑 신부의 친구 중 한 명이 옆에서 심부름을 도맡아 해주는 사람을 말한다. 축의금도 대신 받아준단다.

또 다른 하나는 기념사진 촬영 모습이다. 육지에서는 신랑 신부 가족과 일가친척이 모두 모여 한 장으로 단체 사진을 촬영한다. 그런데 제주의 결혼식은 조금 달랐다. 신랑 일가친척과 신부 일가친척을 구분해서 각각 따로 찍었다. 육지와는 다른 기념사진 촬영 풍경이다.

예식이 끝나고 연회장으로 갔다. 1층은 신부 하객, 2층은 신랑 하객으로 구분됐다. 입구에서 하객의 손등에 스티커를 붙여서 인원수만 파악하고 있었다. 육지와 달리 하객 식권이 없다. 결혼식장에 참석하지 못하면 연회장으로 가면 되기 때문이다.

연회장에서는 결혼 예식 시작부터 오후 5시까지 하객을 대접한다. 신랑 신부도 하루 종일 하객을 대접하고 결혼식 이틀 후 신혼여행을 떠났다.

우리는 서울에서 온 조카부부와 여섯 명이 한 테이블에 앉았다. 우리 형제들이 모두 함께 앉을 자리가 없어서 따로 앉았다. 뷔페 음식은 풍성하고 맛깔스럽게 차려져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꼴깍' 군침이 돌았다. 제주도는 재료가 싱싱하니 음식이 더 맛있을 수밖에 없다. 평소 해산물을 좋아하는 손자가 홍합과 전복을 맛있게 먹어주니 기특했다.

혼주인 동생 가족과 신랑 신부가 연회장 테이블을 돌며 하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자 여기저기서 하객들이 봉투를 건네기 시작했다. '앗, 난 봉투 준비 안 했는데 어쩌지?' 하며 순간 당황했다. 신혼여행 잘 다녀오라고 축의금 외에도 봉투를 건네주는 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축 결혼'이라고 쓰인 축의금 봉투였다. '휴~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주도 결혼식에선 신랑 신부나 부신랑 부신부에게 주다 보니, 보통 축의함이 없는 게 보통이란다. 결혼식장 로비에 사람들이 많았지만, 결혼 축의금 접수대가 의외로 한산했던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 나는 축의금을 계좌이체 했기 때문에, 다른 이들도 대부분 계좌 이체한 줄로 알았다.

하루 내내 결혼식 하는 제주

제주도는 통상 하루 내내 결혼식을 하고 하객을 접대한다. 얘길 들어보니 요즘은 많이 간소화됐지만, 예전엔 결혼식을 3일 동안 했다고 한다.

첫날은 '돼지 잡는 날'로 돼지 잡고 동네잔치를 열었단다. 제주도는 음식의 주재료가 돼지고기다. 고기국수도 돼지고기에 말아 나온다. 둘째 날은 '가문 잔치 날' 이라 해서 친척과 방문객을 대접하는 날이다. 셋째 날은 '결혼식 본식'을 치르는 날로 실제로 신랑 신부가 결혼식을 하는 날이다.

예나 지금이나 결혼식 부조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다만 제주도는 풍습상 '겹 부조'가 관례화되어 있다. 한 사람이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에게 각각 따로 부조하는 것을 말한다. 즉, 부조하는 사람이 부모도 알고 자식도 알면, 10만원 부조 봉투를 3개 준비해서 신랑 아버지, 신랑 어머니, 신랑에게 각각 따로 부조 봉투를 내는 것이다.

조의금 부조 봉투도 마찬가지다. 상주가 5명일 경우 부조하는 사람이 5명을 다 알고 서로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10만원 부조 봉투를 5개 만들어서 부조함에 넣는 것이 아니라 5명 상주에게 각각 부조 봉투를 낸다. 제주 부조 문화는 말 그대로 기브앤테이크(give-and-take)다.

제주도는 옛날부터 주로 여자가 '해녀' 등 경제활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부부간에도 각각 독립된 경제활동을 해서 생긴 부조 문화다, 이로 인해 신랑·신부의 친구 중 한 명이 축의금을 챙기거나 옆에서 심부름을 도맡아 해 주는 '부신랑 부신부' 문화도 생겨났다.

'원님 덕에 나팔분다'는 속담처럼 나 또한 조카 결혼식 덕분에 3박 4일간 제주도에 머물렀다. 결혼식 전날 저녁은 공항에서 가까운 식당을 예약하고 간 뒤, 갈치회, 고등어회가 포함된 세트 메뉴를 주문했다.

갈치회와 고등어회 은빛 갈치회와 부드러운 고등어회, 제주의 특별한 음식
갈치회와 고등어회은빛 갈치회와 부드러운 고등어회, 제주의 특별한 음식 ⓒ 박귀단

싱싱한 갈치회와 고등어회는 예상과 달리 비리지 않고 맛있었다. 은빛으로 빛나는 갈치살의 쫄깃하고 고소한 맛, 부드러우면서 고소하고 달큰한 고등어회, 생선이 살아 숨 쉬는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다.

결혼식 다음 날 오전은 '무민랜드'에 갔다. 가족들의 시계 바늘은 35개월 손자에 맞춰져 있다. '무민랜드'는 유아에게 안성맞춤인 장소다. 이곳은 '핀란드 국민작가 토베 얀손의 보물 캐릭터인 무민이 대자연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든 동화 같은 전시관이다.

손자는 무민 캐릭터를 좋아해서 이번 여행에도 무민을 들고 다녔다. 손자는 겁이 많은 편이다. 작은 무민 캐릭터는 "무민아, 무민아" 하고 갖고 노는데, 거대한 무민 캐릭터 포토존 앞에서 사진 찍자고 했더니 인형이 무섭다며 도망갔다.

점심은 무민랜드 인근에 혼자 운영하는 식당을 예약하고 갔다. 1인 운영 식당이라서 한꺼번에 두 테이블만 예약받는다. '수비드 문어 리조또' 와 파스타 2종류를 시켰다. 저온에 장시간 숙성한 문어가 부드러웠다. 손자가 문어를 거의 다 먹었다. 맛있게 먹어주니 뿌듯했다. 맛있는 음식을 사랑하는 두 딸과 손자랑 함께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제주 핫플 까페에서 노을지는 제주 해변 까페에서 딸과 손자
제주 핫플 까페에서노을지는 제주 해변 까페에서 딸과 손자 ⓒ 박귀단

식사 뒤 애월읍으로 이동하는 동안 예상대로 손자는 차에서 잠들었다. 마침 낮잠 시간인 데다, '등 따시고 배부르면 눕고 싶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는 듯하다.

애월읍 바닷가에 도착하니 강한 바람 탓에 우리들 머리가 쑥대머리로 변했다. 제주도는 풍력발전도 특별했다. 파란 바다 한가운데 노란색 지지대를 박고 그 위에 하얀색 풍력터빈을 설치했다. 파란 하늘 배경에 갈매기가 날아오르고 하얀 바람개비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강한 바람 소리와 세찬 파도 소리 때문에 풍력터빈 소음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육상이었다면 소음 때문에 골치 아팠을 텐데, 해상풍력의 장점이다. 기후 위기로 탄소중립이 강조되는 시대에 바다 한가운데 설치한 해상풍력은 제주의 또 다른 랜드마크가 될 것이다.

아름다운 제주 핫플 '호텔샌드'에서 손주가 좋아하는 소금빵과 커피를 주문해서 저녁노을 지는 해변을 바라보며 차 한 잔의 여유를 가졌다. 패딩으로 무장한 우리는 소문난 제주 바람 속에서도 모래해변을 거닐며 마냥 즐거운 시간이었다.

마지막 날에는 연동에 있는 '올래국수' 식당에서 고기국수를 말아먹었다. 평일 11시 반인데도 대기자가 많았다. 렌터카를 반납하고 제주 공항으로 이동했다. 제주도는 언제 가도 즐거움을 주는 매력적인 여행지다.

"행복하여라 하늘만큼
땅만큼 행복하여라"

여행 기회를 만들어준 조카의 결혼을 '아름다운 부부' 시 한 구절을 빌려 거듭 축하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뉴스에도 실립니다.


#제주결혼#제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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