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한 전 서원대 석좌교수. 그는 윤 대통령 부부의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인 '명태균 게이트'와 관련 더불어민주당 '공익제보자 2호'로 지정된 인물이다.
지난 24일 신 전 교수를 만났다. 충북 청주의 '촛불행동청주지회'가 주관한 윤석열 탄핵 유권자대회에서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대선 당일 활용된 '명태균 보고서'
"지금 제가 윤석열 정권에게 '이런 불법을 했지'라고 묻는 거잖아요. 그것에 대해 (정부여당은) 하나도 답을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정의의 사도도 아니고 혼자 '깨끗이 살았다'고 자신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그들이 '이런 것들을 이용해서 이렇게 했었구나', 그것을 내가 모르고 있었구나! 너무 수치스러웠습니다. 이런 무도한 정권을 만들기 위해 새벽 5시 10분에 (선거캠프) 문을 열고 들어가서 다음날 새벽 0시 10분에 문 닫고 퇴근하는 것을 120일 동안 계속했던가? 너무나 큰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대선 당시 신고하지 않은 선거캠프를 운영하고,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의 미공표용 여론조사 결과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활용했다는 의혹이 담긴 정황을 공개한 신 전 교수의 말이다.
스스로 말했듯, 그는 지난 대선 120일 동안 윤석열 캠프의 내밀한 곳에 있었다. 당시 그의 공식 직함은 '정책총괄지원실장'. 그에 따르면, 캠프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현직이다. 장관을 지냈고, 공사 사장을 기다리고 있으며, 지난 총선을 통해 국회의원 배지도 달았다. 3년 전에는 내밀한 공간에 머물던 동지였지만, 이제는 대척점에 서 있는 관계가 됐다.
그는 지난 10월 '명태균씨가 실소유주로 알려진 미래한국연구소의 미공표 여론조사 보고서가 윤석열 캠프에 전달됐고, 심지어 대선 당일이던 2022년 3월 9일에도 이른바 '명태균 보고서'가 활용됐다'는 내용을 공개했다. 자신이 갖고 있던 '명태균 보고서' PDF 파일과 함께.
파장은 컸다. 그동안 용산 대통령실과 명씨 양측 모두 '명태균 보고서'의 존재를 부인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당 보고서가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통령실 해명이 거짓일 가능성이 커졌다. 정치권에선 신 전 교수의 증언이 '윤 대통령의 불법정치자금(선거여론조사 비용 무상 증여) 의혹에 대한 유력한 단서'라는 평가가 나왔다.
신 전 교수의 옛 동지들은 반격에 나섰다. '윤핵관'으로 거론되는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0월 29일 신 전 교수를 비롯해 <뉴스타파> 이명선 기자를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보호등에 관한법률위반(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다시 말해 대선 당시 미래한국연구소 미공표용 여론조사를 윤석열 캠프에서 활용했다는 신 전 교수의 증언이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철규 의원은 "본 적도 없는 보고서로 회의를 했다는 것은 명백한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신용한이 "이철규와 싸우지 않겠다"고 한 이유
신 전 교수는 이를 두고 "저를 고소한 인물이 어쨌든 (현 정부) 최고 실세 중에 하나"라면서도 "그렇지만 그 사람과 싸우지 않겠다"고 말했다. 왜일까.
"지금 제가 묻고 있는 건 윤석열 정권에게 '이런 불법 했지?', 이걸 묻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것에 대해선 하나도 답을 못하고 있습니다. (신용한과 이철규) 사람 대 사람의 대결은 그들(정부여당)이 원하는 프레임이에요. 둘이 싸우면 어떻게 돼요? 둘 간에 그냥 싸움으로 변질이 돼버려요."
자신이 알리고자 하는 건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대통령 권력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한 집단적인 위법행위라는 것.
"지금 저를 고소한 분은 굉장히 긴장하고 계셔야 할 거예요. 왜냐면, 저한테 시킨 일이 많거든요. (저에게 일을 지시한) 그 분은 알아요. 제가 어떤 일을 했는지."
이런 일화도 있다. 신 전 교수는 지난 11월 1일 국회 운영위원회 대통령비서실 국정감사 당시 증인석에 섰다. 증인인 그에게 강명구 국민의힘 의원은 "명태균 보고서를 어떻게 활용했냐"고 추궁했다. 신 전 교수는 과거 동료였던 강 의원을 향해 "그러니까 명씨 것도 활용됐을 거라는 거지요, 그 부분이. 그러니까... 아니, 평소에도 같이 회의 많이 하셨잖아요, 같이"라고 답했다.
"6.7기가바이트, 6100개에 달하는 파일"
이날 인터뷰 도중 신 전 교수는 외장 하드디스크를 보여줬다. 윤석열 캠프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강력한 증거라는 이야기인데, 그는 '(증빙)근거와 책임'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객관적인 증거 자료 6.7기가, 6100개에 달하는 파일은 오염을 시킬 수가 없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근거와 내용이 있는 것들을 공개한 것입니다."
그가 공개한 내용 중에서 2022년 3월 9일, 이른바 '명태균 보고서'를 갖고 윤석열 캠프에서 회의를 실제 진행했는지 여부가 논란의 핵심이다. 그는 휴대전화로 문서와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여기 보시면 그날 회의가 여러 차례 있다고 그랬어요. 최소한 확인된 게 두 번이니까 여러 차례잖아요. 자기들이 소집했잖아요. 그래서 제가 위에 보고하면서 지금 투표율 저조 등으로 비상회의를 소집했습니다."
"강남 화랑에 차린 비밀사무소, 아무 말도 못하잖나"
신 전 교수는 '명태균 여론조사 보고서' 의혹 외에도 '대선 당시 강남에 선관위에 신고하지 않은 비밀사무소가 운영됐다'고 공개해 파장을 일으켰다.
"제가 이것을 공개했을 때 (이를)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걸 확신했어요. 왜 확신을 했느냐. 당장 어떤 사람이 부인하더라도, (나중에) 사진이라든지 예를 들어 지금 용산에 있는 인사들 중에 떨어져나가는 사람들의 증언이나 사진이 나왔을 때 과연 어떻게 수습할 거냐(는 거죠). 그동안 용산은 섣불리 어떤 대응 또는 답변을 했다가 뒤에 가서 창피당한 게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면서 용산 대통령실의 특징에 대해 설명했다.
"자기(용산 대통령실)들이 확실히 자신 있다 하는 건 바로 해명해요. '오빠가 누구야?' 할 때 바로 해명하잖아요. 물론 그 해명도 아직은 세모표지만(의심스럽지만), 진짜인지는 모르지만 검찰에서 나온 건 그 뒤에 문장과 내용을 보면 '친오빠가 맞다' 이러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강남 비밀 선거사무소' 의혹과 관련해서는 용산 대통령실을 비롯해 여권의 제대로된 해명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일례로 지난 10월 31일 장예찬 전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은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신 전 교수가 비밀선거사무실로 언급한 강남 모 화랑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 저는 가본 적이 없어요"라고 답했다.
"제가 (윤 대통령이) 술 먹고 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 굉장히 파워풀 할 거예요. 그런데 이런 걸 안하는 이유는요. 사실 그것에 대해서는 자료나 근거가 뭐가 있어요? 그런 것으로 창피는 줄 수 있지만 그런 일은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신 전 교수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6.7기가바이트의 전자 문서와, 수기로 작성한 메모장 등 증거가 확보된 선에서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가 싸우는 진짜 이유
윤 대통령이 자주 언급하는 '전체주의'에 대해 물어보자 "진짜 전체주의가 누구냐"라는 반문이 돌아왔다.
"'입틀막' 하고, 기자가 (윤 대통령) 골프장 (들어가는 사진) 찍는 거 빼앗고... 진짜 전체주의는 누구냐고요? 자기들이 그렇게 전체주의를 신봉하니까요. 연설할 때 '자유'라는 단어가 29번 들어갔네 마네 하고 있는 거죠. 황당하게 자유를 29번 떠들지만, 실제는 자유가 없는 세상인 겁니다."
신 전 교수는 박근혜 정부 때 발탁돼 요직을 거쳤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긴커녕 탄핵당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큰 트라우마가 남았다고 했다. 윤석열 캠프에서 120일가량 지내는 동안 '이 정부는 도저히 성공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고도 했다.
그는 "대선이 끝나고 미련없이 캠프를 나왔다"며 "윤석열 정부를 지켜보면서 큰 절망감을 느꼈다"라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이 말은 인터뷰에 꼭 담아달라고 부탁했다.
"조지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이 1945년도 작품인데 지금이 2024년이에요. 80년이 지났어요. (소설에선) 동물이 인간을 다 몰아내고 황제가 된 나폴레옹이라는 왕돼지가 처음에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고 했어요. (그런데) 거기다가 단서를 집어넣은 거잖아요. 그러나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다.' 지금 딱 이게 대한민국의 실사판입니다."
자신에 대해 여권 인사들이 '철새'라고 비난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렇게 반박했다.
"추운 곳에서 따뜻한 곳으로 가는 게 철새입니다. 그런데 저는 따뜻한 곳에서 추운곳으로 왔어요. 이게 철새인가요?"
신 전 교수는 아직 공개하지 않은 것들이 많다고 했다. 6.7기가바이트의 정보와 지워지지 않은 기억을 하나하나 검증하며, 내밀한 곳에서 진행된 부조리를 하나하나 세상에 꺼내겠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