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이 70일 쯤 남았던 10월의 어느 날에 흥미로운 글을 봤다. 두꺼운 벽돌책을 그날부터 10 쪽씩 읽기 시작하면 연말에 완독 성취감을 누릴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기로 했다.
과학책이지만 인문학 같기도 하다는 <코스모스>, 아직 인문학까지는 모르겠다. 다만 어떤 부분에서는 나와 사춘기 아이의 일을 책이 예언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반복설의 핵심 내용은 개체 하나의 발생 과정이 해당 종이 겪어 온 진화의 전 과정을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나는 개개인의 지적 성숙 과정에서도 반복설이 성립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조상들이 해 온 사고의 과정들을 되풀이 하면서 하나의 개인으로 성장해 간다.
- 칼세이건, 코스모스 p.331
사춘기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칼 세이건의 이 반복설을 떠올렸다. 개인의 지적 성숙 과정에서 반복설이 성립한다고 하지 않는가. 지금 내가 보기에 아이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짓은 과거 언젠가 내가 했던 일이겠지.
아이 방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바닥에 쌓인 물건들로 방문이 닫히지도 않았다. 작은 쓰나미가 몰려온다면 이런 모습일까. 나는 평소처럼 방 청소 좀 하자라고 말했고 아이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좀 내버려 둬! 내가 알아서 해. 이게 나한테는 편하다고!"
알아서 하는 애가 문도 안 닫히게 만드냐? 라는 말이 치밀어 올랐지만 잠시 침묵하며 '해당 종이 겪어온 진화의 전 과정을 되풀이 하는 것이다' 라는 칼 세이건의 말을 다시 떠올려본다.
아이가 겪는 진화의 전 과정은 다름 아닌 내 흔적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중학생일 때, 친정 엄마는 내 방을 보며 맨날 '귀신 나오겠네, 아니 귀신도 무서워서 도망가겠네' 하면서 웃었다. 물론 방 치우라는 말도 여러 번 들었다.
내 방이니까 내가 알아서 하지! 라는 말 속에 담긴 내 감정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었다. 나는 어지럽게 흩어진 방 안에 나만의 질서를 담아두고 있었다. 나의 방은 나의 작은 우주였다. 물건의 위치가 바뀌는 순간, 내 마음도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때를 떠올리니 화가 조금 누그러졌다. 사춘기 아이의 말투는 단지 무례함이 아니라, 인류가 처음 사회적 관계를 배우며 충돌과 화해를 거듭했던 흔적일지도 모른다. 그놈의 전두엽이 덜 발달해서 감정 조절과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니 말이다. 나무가 거친 바람을 맞아 더 단단해지듯, 아이는 자신만의 감정을 터트리며 어른이 되는 길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아이의 방을 보며 30년 전의 나를 본다. 까칠한 말투와 짜증 섞인 한 마디 뒤에는 결국 나 자신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을 거라고 믿어버린다. 비겁한 회피라고? 그렇게 믿지 않으면 내 말을 들을 때까지 아이와 싸워야 한다. 그렇게 해서 남는 건 관계 파탄 밖에 더 있겠나. 그럴 바엔 비겁한 회피가 낫다.
아이 말대로 그대로 두고 나왔다. 대신 아이가 학교 갔을 때 최소한의 청소를 했다. 과자 껍질이나 다 쓴 휴지 같은, 누가봐도 쓰레기인 것들만 버렸다. 학교 갔다온 아이가 방에 들어가자마자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엄마, 방 치워줘서 고마워."
방에서 한참을 부스럭거리던 아이는 박스에 종이 뭉치를 담아서 나왔다. 그만큼은 다 버린다고 한다. 방에 들어가 봤더니 어지럽게 나뒹굴던 프린트물이 한쪽으로 정리되어 있다. 나는 폭풍 칭찬을 했다.
아이는 대놓고 좋아하진 않았지만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진다. 프린트물을 버릴 것과 보관할 것으로 나누는 작은 움직임에서 나는 아이가 천천히 자신의 질서를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칠한 말투는 사실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였다.
"날 그냥 두지 마세요. 하지만 너무 세게 밀어붙이지도 말아 주세요"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까. 방 청소는 아이의 마음에도 작은 여백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는 걸 내게 가르쳤다.
대한민국 청소년은 양쪽의 협공을 받는다. 내부에서는 진짜 나를 찾으라고 아우성이고 밖에서는 입시로 나를 증명하라고 압박한다. 그러니 자칫 길을 잃고 헤매는 시간일 수도 있다.
아이가 마음껏 길을 잃고 헤매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조상들이 해 온 사고의 과정을 반복'하길 기다려주는, 그런 부모가 되길 나는 바란다. 우리는 서로의 반복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자랄 것이라 믿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sns에도 실립니다.참고도서 : 칼 세이건, 코스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