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일찌감치 대전 계족산 황톳길 여행에 나섰다. 길가에 구절 초가 반기듯 환하게 웃는다. 국화꽃도 뒤질 세라 색동옷을 입었다. 여전히 하늘과 땅이 온통 가을이다. 황톳길로 엄마 따라나선 아이들도 까르르까르르 웃는다. 아침부터 아이들 웃음소리에 괜히 활기차다.
계족산은 대전 북동쪽 해발 423m의 아담한 산으로 산 줄기가 닭 발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산이라고 한다. 특히 이 산은 장동산림욕장 입구에서부터 산 허리를 두르는 14.5km의 황톳길로 유명하다. 이 길은 충청 지역 모 회사 회장님의 아이디어로 만든 황톳길로 전국은 물론 해외에서 까지 관광객이 온다고 한다.
황톳길 입구에는 벌써 맨발 걷기를 마치고 발을 씻고 있는 사람도 있다. 오랜 우정이라도 나눈 사이처럼 그 사람은 한마디 거든다. 흙을 닫는 발바닥이 처음엔 약간 차갑지만, 걷다 보면 적응되어 찬 느낌이 사라진다는 조언이다.
망설이다 맨발로 황톳길을 걷기로 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발바닥이 좀 차갑다. 먼저 걸었던 사람의 조언 대로 걷다 보니 어느 순간 온기가 발바닥으로 올라와 걸을 만하다.
얼마쯤 걸었을까. 햇살이 중천으로 떠오를 무렵 황톳길 사진을 전시하는 전시장과 야외 음악당을 지나간다. 그때 나비 한 마리가 월동 준비를 하다 말고 필자 머리 위에서 멋진 춤사위를 보인다.
가던 길을 멈추고 나비를 한참 바라다본다. 마치 따사로운 햇살 아래 고양이가 나비를 희롱한 듯한 단원 김홍도 그림 '황묘농접도(黃猫弄蝶圖)'가 생각난다. 나비도 필자를 가지고 노는 것 같다.
맨발 걷기는 계속되고 어느덧 나도 '맨발의 청춘'이다. 소나무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이 반갑고 붉게 물든 낙엽 가르며 하얀 머리 휘날리면서 자전거로 트래킹(tracking)하는 중년의 아저씨가 휙 지나간다. 이야기가 흐르는 황톳길로 간간이 새들이 못다 한 짝짓기라도 하듯 구애의 소리가 요란하다.
저 멀리 '자기야' 부르는 연인의 목소리가 들리고 개울가 연리지(連理枝) 나무도 사랑을 나눈듯하다. 맨발로 걸으며 지나치는 사람들도 하얀 이 내보이며 인사를 한다. 필자 역시 고개가 절로 숙어 진다. 이 순간만큼은 자연이 나, 내가 자연이다.
황톳길 옆 계곡으로 흐르는 개울 물소리가 정겹게 들려온다. 개울 물에 뜬 낙엽들은 누구의 사연을 싣고 떠내려가는가. 개중에는 가다 말고 멈춰 선 낙엽도 있다. 원치 않는 사연을 담은 편지도 더러 있을 것이다. 학창 시절 쓰다 쓰다 지운 편지도 많지 않았는가.
계곡으로 흐르는 개울 물소리가 여태 잃어버리고 지냈던 청춘을 다시 깨운다. 사실 우리 몸이 늙어가는 것이지 마음까지도 늙은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소소하지만 소중한 행복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따사로운 햇살로 황톳길을 계속 걷는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라는 말도 있다. 남의 떡만 쳐다보고 하소연한들 뭐 하겠는가. 내가 가지고 있는 떡(맨발로 황톳길 걷기 같은 소소한 행복)도 만만치 않은데 말이다. 엄마 따라나선 아이들을 보라. 얼마나 사랑스럽고 행복해하는가.
하늘 아래 가을로 가득한 황톳길로 오색 단풍잎 밟은 소리마저 사랑스럽다. 물론 소소한 행복이 밥 먹여 주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밥 먹고 살아가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힘들고 지칠 때 사랑하는 사람 손잡고 대전 계족산 황톳길을 걸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