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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가 개념에 의해 해명되듯이, 리얼리티는 관점에 의해 설명된다.
이 연재는 청년 세대의 관점에서 바라본 북향민의 리얼리티다. 그리고 다시금 통일에 대한 비전을 기록한다.[기자말]

 사람들은 북에서 온 사람들을 '탈북자', '탈북민', '새터민', '북향민' 등 다양하게 호명한다.
사람들은 북에서 온 사람들을 '탈북자', '탈북민', '새터민', '북향민' 등 다양하게 호명한다. ⓒ reinhartjulian on Unsplash

'탈북'으로 소비되는 정체성

현재 한국사회에는 대략 3만 5000명에 가까운 '탈북민'들이 정착해 있다. 이들을 지칭하는 법적 용어는 '북한을 탈출하여 온 사람들'이라는 의미의 '북한이탈주민' 이다. 흔히 '탈북민' 또는 '탈북자'라고 한다. '탈북자'라는 표현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새터민'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한국에 '새로 터를 잡은 사람들'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당사자인 북에서 온 사람들에게서 '새터민'이라는 용어는 그닥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새터민이라는 말이 따뜻한 어감일지는 몰라도 남쪽에서 북쪽을 바라본 용어여서 남쪽 사람들과는 다르게 아주 좋게만 들리지 않는 것이다. '북에서 온 사람 들이 새터민이면 남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헌터민인가?'라는 반응도 있다.

최근에는 북한에 고향을 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북향민'이라는 용어가 새롭게 등장했다. 어쨌든 사람들은 북에서 온 사람들을 '탈북자', '탈북민', '새터민', '북향민' 등 다양하게 호명한다. 사람들은 줄임말을 습관적으로 사용하니, '북한이탈주민'의 줄임말로 '탈북민'이 널리 사용된다. 하지만 지난 2월 국민통합위원회에서 새로운 호칭 '북배경주민'을 제안하면서 북에서 온 당사자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당사자들 입에서조차 한 번도 거론된 적이 없는 용어다.

정체성은 예민한 문제이다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어떻게 호명되는지 민감할 수밖에 없다. 요컨대 '탈북'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들을 일컬어 사회가 어떤 이름으로 호칭하는지, 그 호칭 문제가 생각보다 민감하다. 물론 북에서 온 당사자들 중에서도 호칭이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뭐라고 불리던 북에서 온 사람들을 타자로, 이방인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맞는 말이다. 호칭 하나 바꾼다고 리얼리티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호칭보다는 리얼리티가 중요하다. 그들을 어떻게 부르느냐의 문제보다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과 그들에 대한 사회 정책이 실제적으로 더 중요하다. 어떻게 호칭하든 그 호칭에 의해 현실이 당장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개념이 존재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우리 인류에게는 오래된 사실이다. 예를 들어 철학의 한 분야인 존재론(Ontologoy)은 존재 그 자체를 객관적으로 혹은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학문이 아니다. 존재에 대한 개념 분류를 통해 존재를 이해하고 사유하는 것이다. 즉 어떻게 사유하느냐에 따라 존재가 달라진다는 의미이고, 그런데 그 사유는 개념에 의존하며, 그 개념은 단어이고, 결과적으로 호칭이기 때문에, 결국 호칭 문제는 존재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존재의 문제는 다른 말로 정체성의 문제이다.

'탈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정체성도 마찬가지다. 호칭이 변화하는 것은 존재가 변화하는 것이다. '탈북자'라는 단어는 북한에서 탈출한 사람이라는 존재를 규정한다. 이 존재는 북한과 단절되어 있고, 다시금 연결될 가능성이 차단되어 있다. 그럼에도 탈북자를 일컬어 '먼저 온 통일'이라고 한다. 존재가 어긋나 있는 것이다. 이쪽 존재는 단절이다. 저쪽 존재는 연결이다. 그런데 둘이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이런 분열된 존재 문제를 극복하려면 호칭을 바꿔야 한다.

다시 말해서 나는 단순히 '북한 탈출'이라는 의미를 넘어 '통일'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그러려면 북한과 단절된 존재보다는 북한과 연결된 존재가 더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나는 분열된 존재의 극복이라는 관점에서 '탈북자', '탈북민'이라는 단어 대신에 새롭게 제시된 '북향민'이라는 용어를 쓰고자 한다.

덧붙이는 글 | 조경일 작가는 함경북도 아오지 출신이다. 정치컨설턴트, 국회 비서관을 거쳐 현재 작가로 활동하며 대립과 갈등의 벽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한다. 책 <아오지까지> <리얼리티와 유니티> <이준석이 나갑니다>(공저) <분단이 싫어서>(공저)를 썼다.


#리얼리티와유니티#조경일작가#북향민#북한이탈주민#북배경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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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일 작가는 함경북도 아오지 출신이다. 정치컨설턴트, 국회 비서관을 거쳐 현재 작가로 활동하며 대립과 갈등의 벽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한다. 책 <아오지까지> <리얼리티와 유니티> <이준석이 나갑니다>(공저) <분단이 싫어서>(공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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