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라의 위기를 만나
분하고 한스러움을 이길 수 없어
의병을 일으켜 나라에 보답하고자 하였다
불행히 너희에게 붙잡혔으니
참으로 장부의 수치이며
우리 동포에게 부끄럽다
내가 죽은 뒤 반드시
뜻을 잇는 사람이 있을 것이니
죽음이 어찌 두렵겠느냐. (주석 1)
한말 우리 의병의 기개가 이러했다. 의병대장 이은찬(李殷瓚)은 1878년 강원도 원주시 관철동에서 태어났다. 각종 기록에서 부모나 가계와 학통 등이 없는 것으로 보아 한미한 집안 출신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활동과 남긴 시문으로 보아 여느 유생에 못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관동지역에서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켰는데, 이인영이 무거운 신망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공은 이인영을 추대하여 총사령으로 삼아 각지의 군정(軍政)을 통제하기 편하도록 하였다. 병력이 2만여 명에 이르자 24개의 방향으로 나누어 서호로 진격하였다. 크고 작은 군사전략은 모두 공의 계획에서 나왔으니…. (주석 2)
그는 1896년 2월(음) 경북 김천에서 이기찬·허위·표동호 등과 의병을 일으켰다. 한해 전 8월 20일 민비가 일본군에 의해 참살당하고, 1896년에는 김복한의 홍주의병, 노응규의 진주의병, 이소응의 춘천의병 등 을미의병이 각지에서 일어나던 때였다.
이은찬의 첫 의병전은 성주를 점령하고 대구 진격작전 중 관군에 체포되었다. 얼마 후 풀려난 그는 1907년 고종의 강제퇴위와 구한국군대의 강제해산에 맞서 동년 7월 고향 원주에서 해산군인들을 모집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이 무렵 경북 문경에 은둔 중이던 유학자 이인영을 찾아 의병부대 총대장으로 추대하고, 9월 초순 원주에서 이인영을 대장으로 하는 관동창의대진도를 결성하였다. 이어서 남부지역 의병장들에게 통문을 보내어 연합의병의 결성을 제의하여 조직을 크게 확장시켰다.
그는 관동창의대진소 중군장의 책임을 맡았다. 현대식 병기로 무장한 일본군에 맞서며 서울진공작전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병력이 요구되어 다시 전국 의병장에게 격문을 보내어 참여를 청하였다. 마침내 12월 경기도 양주에서 전국의병연합체인 13도참의대진소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13도창의대진소 의병은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전과를 얻고, 이를 바탕으로 서울진공작전을 개시했으나 실패하고, 경기 동북지역으로 근거지를 옮겨 재차 서울진공작전을 준비하였다. 한편 측근을 서울에 보내어 통감부 폐지, 외교권 회수 등 30개 요구조건을 제시하고 항전을 계속하였다. 통감부는 수비대와 헌병대를 총동원하여 의병 학살에 나서고 중심인물인 허위가 피체되면서 연합의병 조직은 해체되었다.
이은찬은 자신의 의병부대를 재정비하여 경기 동북지역으로 근거지를 옮기고, 1908년 6월 포천군 청원면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격전을 벌였다. 이후 몇 차례 더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으나 적의 현대식 병기로 많은 사상자를 내는 아픔을 치렀다.
그는 한때 중국 망명을 시도했으나 이를 접고 다시 의병전을 준비하여 경기 동북지역 연합의병인 창의원수부를 결성하였다. 이후 지역을 옮겨 다니면서 여러 차례 일본군과 교전하고 유격전을 벌여 다수의 적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우리 의병의 희생도 적지 않았다.
이에 일본군은 1909년 1월 이은찬의 검거와 연합의병 학살전에 나섰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하자 전략을 바꾸었다. 통감부는 한국인 밀정을 의병부대에 투입하여 정보를 파악하고 그의 뒤를 쫓았다.
이은찬이 서울의 동지를 만나기 위해 용산으로 갔다가 3월 30일 오전 용산정거장 부근에서 왜병에 검거되었다. 경성재판소에 넘겨진 그는 심문을 받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나의 거의는 홀로 조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동양 평화를 위함이니, 오늘에 이르러 어찌 자신의 영욕을 생각하랴."라고 당당하게 신념을 밝혔다. 그리고 옥중에서 다음과 같은 유시를 지었다.
오얏 나무 가지 하나로 배를 만들어
창생을 건지고자 해변에 띄웠는데
조그마한 공도 이루지 못하고
먼저 물에 빠지게 되었으니
누가 동양의 만년을 기약하리요. (주석 3)
일제는 1909년 5월 8일 경성지방재판소를 통해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이은찬 지사는 6월 16일 경성감옥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31세였다. 처형대에서 만면에 미소를 띄고 유시를 남겼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지금 내가 의병을 일으켜
국권을 회복하여
천하에 대의를 펴고자 하다가
지금 너희에게
죽임을 당하니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너희 나라는
천하대세를 알지 못하고
우리나라를 삼켰으니
반드시 천하의 시기를 받아
곧 망하리라
나는 죽어도
내 눈은 썩지 않고
너희가 망하는
꼴을 볼 것이다. (주석 4)
주석
1> 조소앙 지음, 이정원 옮김, <유방집>, <이은찬전>, 165~166쪽, 한국고전번역선, 2019.(이후 <유방집> 표기)
2> 앞의 책, 165쪽.
3> 앞의 책, 139쪽.
4> 앞과 같음.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자주독립 의열사 열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