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합인포맥스 모니터에 삼성전자 주가가 표시돼 있다. 이날 삼성전자는 전날보다 1.38% 내린 4만9천9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이는 지난 2020년 6월 15일 종가 4만9천900원을 기록한 후 4년5개월 만에 최저가다.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합인포맥스 모니터에 삼성전자 주가가 표시돼 있다. 이날 삼성전자는 전날보다 1.38% 내린 4만9천9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이는 지난 2020년 6월 15일 종가 4만9천900원을 기록한 후 4년5개월 만에 최저가다. ⓒ 연합뉴스

'자신을 좋아해주는 팬들을 막대하는 연예인.'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들에게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에 지난 21일 강경한 반대 목소리를 낸 대기업 총수들을 가리켜 윤태준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 연구소장이 내놓은 비유다.

앞서 자신을 비롯한 소액주주들을 "친기업세력"이라고 표현했던 그였다. 기업 지배구조가 빚어낸 '코리아디스카운트'로 주가가 연일 저평가의 늪에 빠져도, 소액투자자들은 특정 기업이 "좋아서" 투자하고 있다며 소액투자자들을 '팬'에 빗댔다. 그런데도 윤 소장은 기업 총수들은 투자자들을 여전히 "자신들에 딴지 거는 놈"쯤으로 여기고 있다며 '팬을 막대하는 연예인'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는가 하면 기업 총수들을 향해 역질문까지 건넸다.

"회사가, 회사를 좋아해주는 주주들을 어떻게 기분 좋게 해줄지 생각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요?"

회사는 왜 주주 편에 서지 않나

AD
액트는 자본시장 내에서 소액주주들에 불리한 결정이 내려졌을 때 주주를 결집해 주주총회를 통해 대응하는 행동주의 플랫폼이다. 금융투자소득세를 둘러싼 논쟁으로 정치권이 뜨거웠을 때 소액주주들의 입장을 대변해 '도입 반대'를 주장했고, 이후 정치권의 시선이 '증시 밸류업'으로 이어지자 주주들의 입지 확대를 위한 상법 개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더불어민주당이 '충실의무 확대'를 담은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발의한 건 투자자들이 모회사 핵심 사업부의 성장성을 믿고 투자했는데, 회사가 이 사업부를 떼어 증시에 재상장하면서 기존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입히는 등 사례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의 눈물을 지켜봤던 윤 소장 역시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소액투자자들의 열망, 달라진 사회적 시선을 등에 엎고 앞장서 현장으로 달려가곤 했다.

지난 21일 삼성·SK·LG 등 16개 대기업 사장단의 '상법 개정 반대 성명'에 거친 비판보다 "슬펐다"는 평가를 내놓은 건 그래서다. 소액주주들의 인식 변화에도 기업집단 사장단의 인식 수준이 "마치 어린 시절, 외환위기 당시에나 볼 법한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윤 소장은 24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최근에 상법 개정을 요구하는 주주들의 요구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논란 당시 수준"이라며 "상법 개정에 반대하는 사장단에 대한 성토도 쏟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윤 소장은 상법 개정에 따른 '경영권 침탈' 우려에 "경영진이 이미 많은 지분을 가진 대기업을 상대로 사모펀드가 '경영권 공격'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고 반박했다. '소송 남발' 우려에도 "소액주주들이 대기업에 변호사비로 몇십억 원을 써야하는 소송을 진행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재계 기자회견이 이뤄졌던 21일, 효력이 발생한 두산 에너빌리티의 분할합병 관련 증권신고서 내용을 언급하며 "충실의무가 있었다면 합병이 처음부터 추진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지막으로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자는 것과 경제 상황을 극복하자는 이야기는 상충되는 개념이 아니"라며 "코리아디스카운트를 일으키는 불투명한 지배구조로 인해 기업 가치가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사람 몸에 비유하면, 앞으로는 피가 돌아야 할 곳에 피가 돌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윤 소장과 나눈 일문일답 전문이다.

재계 "상법 개정 반대" 외친 당일, 두산 밥캣의 '분할'이 승인됐다

 더불어민주당 대한민국 주식시장 활성화 태스크포스(TF)가 지난 12일 국회에서 개최한 1차 회의 참가자 모습. 윤태준 액트 소장은 왼쪽에서 두 번째다.
더불어민주당 대한민국 주식시장 활성화 태스크포스(TF)가 지난 12일 국회에서 개최한 1차 회의 참가자 모습. 윤태준 액트 소장은 왼쪽에서 두 번째다. ⓒ 윤태준 소장 제공

- 재계가 반대성명을 낸 다음날 오전 국회에서 상법 개정안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어떤 마음으로 국회를 찾았나?

"슬픈 마음이었다. 나는 기업 기배구조로 석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 처음 석사 공부를 시작했던 10여년 전과 비교했을 때 현재 투자자들의 인식이나 사회적인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 21일 대규모 기업집단 사장님들의 성명은 마치 내 어린 시절, 외환위기 당시에나 볼 법한 이야기들이었다. 사장단의 인식이 대중들의 인식 변화에 전혀 맞춰지지 못했다는 생각에 안타깝고 슬픈 생각이 들었다."

- 기자회견 하루 전 날, 최근 논란이 됐던 두산 에너빌리티의 분할합병 관련 내용의 증권신고서가 효력을 발생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기자회견 당일, 전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기자회견장에 섰다. 금융감독원이 요구했던 사항들이 전혀 시정되지 않았음에도 증권신고서가 승인된 건데 어떻게 이런 의사결정이 내려진 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금감원에서 요구했던대로, 업계에서 통용되는 방식으로 합병비율을 산정했다면 회사가 원하는 대로 합병비율이 절대 나올 수 없었다."

- 애당초 상법에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있었다면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합병이 처음부터 추진될 수 없었을 것이다. 두산 에너빌리티 주주들에게 해를 끼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번 거래는 지배주주 일가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에 성사됐다. 이미 두산그룹 4세에게 넘어갔던 로보틱스의 경영권에 그룹이 힘을 몰아주기 위해서였다. 또 로보틱스는 그룹사가 미래 성장 동력으로 밀고 있는 회사인데,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오지 않자 두산은 그룹사 내 가장 '알짜 기업'인 두산 밥캣을 붙여주려고 했다. 밥캣의 현금 창출 능력과 해외에 있는 시장 접점을 이용해 로보틱스가 능력을 키울 수 있게 도와주려 했던 것이다. 반면 두산 에너빌리티 입장에서는 최고의 알짜 회사를 빼앗기는 셈이 됐다. 에너빌리티 주주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주주 총실 의무가 있었다면 이사가 미리 주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안타깝다."

- 소액주주들에게는 충실의무가 더욱 절실한 상황이겠다. 현장에서 느끼기에, 상법 개정을 원하는 주주들의 목소리는 거센가?

"거센 정도가 아니다. 엄청나다. 주로 상법 개정에 반대하는 사장님들에 대한 성토다. 현재 소액주주 오픈 채팅방 200여개에 들어가 있다. 30분만 체크를 하지 않고 있어도 새로운 메시지가 2000개씩 쌓인다. 일전에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때 더불어민주당에 쏟아지던 반발과 비슷한 수준이다."

'충실의무' 원하는 주주 vs '소송 남발 우려' 표명한 재계

- 하지만 재계나 국민의힘은 상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크게 두 가지 근거를 든다. 첫째는 행동주의 펀드들에 의해 '경영권 침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학술적으로는 '기업에 문제가 있으니까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받는다'고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보겠다. 최근에 고려아연이 사모펀드 운용사 MBK에게 공격을 받고 있지 않나. 개인적으로 고려아연이 '유상증자(회사가 자본금을 늘리기 위해 신주를 발행하는 행위)'라는 악수를 두지만 않았도 MBK는 고려아연 사측을 이기기 어려웠다을 것이라고 본다. MBK가 공개매수로 상당 지분을 확보를 했다고 해도, 국민연금이 고려아연 편에 섰다면 사측을 이길 수 없었다. 심지어 그때까지도 금융자본인 MBK에 대한 비판 여론이 몰리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결정한) '유상증자'가 화근이 됐다. 시장에서는 최 회장의 개인적인 문제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깨끗하고 돈 잘 버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었던 고려아연이 왜 무리수를 둬서 자중지란에 빠졌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또 고려아연은 최대주주와 경영자가 다른 상황이기도 했다. 영풍 측 장씨 일가가 33%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경영은 최 회장이 도맡았다. MBK입장에서는 장씨일가와 손을 잡으면 쉽게 최대주주로 등극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을 것이다.

 강성두 영풍 사장이 지난 9월 2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고려아연 공개매수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강성두 영풍 사장이 지난 9월 2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고려아연 공개매수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참고로, 최 회장이 고려아연의 유상증자를 결정한 이후 자신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주주가치를 훼손하고 불공정 행위까지 저질렀다는 논란이 일었다. 금융감독원까지 유상증자를 위해 제출된 증권신고서를 문제삼자 최 회장은 결국 유상증자 결정을 철회했다.

"심지어 그런데도 경영권을 가져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대부분의 대규모 기업집단 기업들은 (경영권 공격을 받을 만한) 회사가 거의 없다. 삼성이나 SK, LG처럼 지배주주들 지분에 준할 만큼 큰, 다른 지분을 가진 주체가 없는 상황에서 행동주의 펀드들이 경영권 공격을 통해 기업을 장악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한국 재벌 기업의 지배구조를 생각하지 않고 하는 이야기다. 있기도 어려운 일을 침소봉대하는 셈이다."

- 또 다른 반발 근거로 재계에서는 '소송 남발'을 우려하고 있다. 충실의무를 등에 엎은 소액주주들이 이사들에게 수시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들으면 정말 화가 난다. 일반인이 삼성이나 SK하이닉스를 상대로 소송을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몇 년 동안, 변호사비로 몇십억 원을 써야 하는 데다 상대는 유명 법무법인을 대동해 변호에 나설 것 아닌가. 이기지도 못하고 지면 상대의 소송 비용까지 다 물어줘야 하는데, 개인이 그렇게 쉽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정말 당황스러운 이야기다."

- 이밖에도 재계는 '엄중한 경제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며 상법 개정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자는 것과 경제 상황을 극복하자는 이야기는 상충되는 개념이 아니다. 자본시장은 경제의 한 축이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자본시장에서 전달되는 정보로 기업가치는 투명하게 오르내려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에 '호재'가 뜨면 주가에 반영이 돼 투자자들에 의해 자금이 흘러들어간다. 반대의 경우라면, 주가가 떨어지면서 좀비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된다.

그런데 코리아디스카운트를 일으키는 불투명한 지배구조로 인해 기업 가치가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사람의 몸으로 비유를 한다면 피가 돌아야 할 곳에 피가 돌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해도, 주가가 금세 빠지고 (투자자들에게 호재인) 기업의 자사주 소각 이슈에도 하루 잠깐 오르다가 다음 날 상승분을 반납해버린다. 이렇다 보니 투자자들은 한국 주가는 호재나 악재가 아닌 소위 '세력'이나 '회장님의 주가 부양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자본시장의 중요 기능인 '정보 배분'이 전혀 작동을 하지 않으니 국가적으로도 경제성장력이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해 상법 개정 추진에 재계의 반발에 대해 “상법 개정과 관련된 양측의 찬반 공개 토론을 제안한다”라며 “제가 직접 토론에 참여해보고 쌍방 입장을 취합한 뒤 당의 입장을 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해 상법 개정 추진에 재계의 반발에 대해 “상법 개정과 관련된 양측의 찬반 공개 토론을 제안한다”라며 “제가 직접 토론에 참여해보고 쌍방 입장을 취합한 뒤 당의 입장을 정하겠다”고 말했다. ⓒ 유성호

- 상법 개정을 둘러싼 재계와 투자자간 입장이 엇갈리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공개 토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참여할 의사가 있나? 재계와 만나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을까?

"참여 의사가 있다. 논리적이고 학술적인 이야기보다 재계에 소액 주주들을 회사의 걸림돌로 보는 시각을 바꿔달라고 강하게 요청하고 싶다. 주주들은 자기가 싫어하는 회사에 투자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나는 네이버에 투자를 해왔다. 사업 초창기부터 네이버 서비스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네이버가 현재 10만원대 주가라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네이버를 좋아하니까 들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나와 같은 투자를 한다. '친기업 세력'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회사로서는 주주들을 어떻게 기분 좋게 해줄지 생각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데도 많은 기업들 총수들은 소액주주들을 '자신들에 딴지 거는 놈'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마치 자신을 좋아해주는 팬들을 막대하는 연예인으로도 보인다. 그런 인식이 너무 안타깝고 당황스럽다."

- 상법 개정 이외, 현장에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주주들이 가장 많이 관심갖고 있는 이슈는 횡령 배임을 저지른 대주주의 주주총회에서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한국 증시에서 거래 정지돼, 상장 폐지로 가는 종목들을 살펴보면 이사의 횡령이나 배임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런데도 논란의 이사가 버젓이 다음, 다다음 주주총회에서도 자신의 표를 다 행사하는 경우도 많다. 횡령 배임을 저질렀는데도 당사자를 회사에서 쫓아내거나 제재할 방법이 없는 셈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본격적으로 논의가 되지 않고 있다.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주셨으면 좋겠다."

 지난 7월 2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박상혁 국회의원실 주관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상법 개정을 통한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밸류업'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 7월 2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박상혁 국회의원실 주관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상법 개정을 통한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밸류업' 토론회가 열렸다. ⓒ 윤종은



#액트#상법개정안#충실의무#밸류업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류승연기자입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