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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와 같은 학교의 A선생님이 갑작스레 병가를 들어가셨다고 했다. 교사 속을 꽤 썩이던 학생이 있었는데, 잦은 지도도 소용이 없이 심한 행위를 일삼아 자주 교무실로 인계됐고, 교권보호위원회도 한 차례 열린 적이 있었단다.

이후 반 분위기마저 걷잡을 수 없는 폭풍우에 휩싸였다는 말이 들려왔었다. 한동안 학교 곳곳에서 그 안타까운 상황이 연일 화두가 되었을 정도이니 쉽게 넘길 일은 아니었다. 어쩌면 병가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올 초, 그 선생님을 복도에서 만나서 개인적으로 얘기를 잠시 나눈 적이 있었다. "올해 6학년 어때요?"라는 내 걱정 어린 물음에 선생님은 밝은 미소를 머금으시며 "이렇게 꽃 같은 애들이면 매년 6학년 (담당을) 하겠어요"라 하셨었다. '꽃'이란 그 말에 나는 꽃밭 같은 6학년 교실을 머릿속에 그리며 잠시 기분이 좋아졌었다. 이제와 아스라하게 떠오른 그 기억에 나는 잠시 가슴이 뭉근해져 옴을 느낀다.

 어쩌면 그 병가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자료사진).
어쩌면 그 병가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자료사진). ⓒ kristsll on Unsplash

교직에 발 디딘 지 어느새 12년 차, 그 길고 긴 터널을 지나오며 나도 그 선생님 같은 붕괴된 교실 속에서 무력한 모습으로 힘없이 흔들리는 앙상한 한 그루의 나무같이 1년을 보냈던 기억이 몇몇 있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내가 6학년 담임교사이던 시절, 잠시 출장 간 사이 벌어진 학교폭력사건. 평소 내게 자주 훈계 지도를 받고도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던, 내게 자주 무력감을 주며 반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던 한 남학생이 벌인 일이었다.

장난으로 시작한 괴롭힘이 큰 불로 번져서, 방관자를 비롯해 가해자만 열 명 가까이 되는 큰 문제에 나는 연일 지치고 야위어갔다. 쉴 새 없이 내 귀를 날카롭게 때리는 전화벨 소리, 쉬는 시간마다 교무실을 왔다 갔다, 점심시간에도 불려 다니며 끼니도 걸러가며 하루가 다르게 피폐해졌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우리 반이었기에 양쪽에서 받는 압박감도 매일 덩치를 불려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교실의 분위기는 말해 무엇하리. 무엇보다 더는 아이들에게 나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그 무력감이 나를 더욱 죄어왔다.

교직 생활 3년 차이던 당시, '그냥 교사를 그만둘까'라고도 생각했을 만큼 내겐 중대한 사건이었다. 학교로 한 발 한 발 내딛는 그 발걸음이 마치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던 기억이 난다. 크리스마스가 있던 그 해 12월은 내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길 뻔했다. 하지만 고통 속에서도 희망은 있다고 했던가.

그날도 어김없이 가해자 학부모들의 빗발치는 민원 탓에 지치고 힘없는 상태로 교실에 발을 들여놓았던 그날.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촛불이 꽂힌 초코파이 케이크를 발견하고 나는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다. 그리고 교실 칠판에 하얀 눈송이처럼 놓인 메시지들을 봤다.

"선생님, 힘내세요. 사랑합니다."

그때 갑자기 마음속에 작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한두 명이라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따듯한 인간미를 가진 아이들이 있다면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던 순간. 그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일터 가는 발걸음 무겁고, 아침에 눈 뜨기도 싫었을 때

며칠 전, 동료교사와 이야기를 나누다 앞선 A선생님 얘기가 나왔다. 그 동료교사는 그 마음이 어떨까 감히 상상도 못 하겠다며 병가를 낼 정도면 정말 힘겹게 하루를 보냈을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긋이 나를 바라보며 자신의 얘기를 나직이 이어갔다.

"나도 5년 전, 그런 아이들이 많은 반을 맡은 경험이 있어. 사명감으로 나는 몇 명의 문제소지가 보이는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바꿔보겠다며 열심히 지도했지만 별 소용이 없더라고. 그런 아이들이 방과 후에 기어이 학교폭력을 일으켰고 가해자와 피해자 학부모가 무람없이 나를 압박해 오는 데다, 그 이후 반 분위기도 돌이킬 수 없이 어지럽혀져 아침에 눈을 뜨기가 싫더라.

근데 그러다 퇴근길 우연히 들른 생활용품 가게에서 3년 전 제자를 만났어. 그런데 그 제자가 나를 보며 반색하면서 이런 말을 하는 거 아니겠어? '선생님, 저 그때 선생님이 아침 시간에 해주신 좋은 말들을 아직도 기억해요. 힘들 때마다 떠올리며 잘 버텨내며 지금껏 지내오고 있어요, 감사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에 걸린 무언가가 턱 하고 내려가는 느낌이더라고. 무기력했던 그때 갑자기 내 마음속에 불꽃 하나가 일더라. '아, 내 한 마디가 누군가에겐 평생을 살아갈 힘이 될 수도 있구나'라고."

그 이후 동료선생님은 힘든 순간이 올 때 그 제자와의 만남을 떠올리며 남은 학기를 무사히 이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매년 달라지는 아이들과 학부모를 겪는 교사들. 어느 때엔 잘 맞아 꽃 같은 아이들과 1년을 행복하게 보내기도 하지만, 이 또한 사람의 일인지라 서로 이해관계도 다르고 오해도 하며 몇 차례씩 장대비가 온몸을 때리는 것 같은 힘든 순간을 맞기도 한다.

그 속에서 그래도 희망을 갖는 건, 바로 몇 몇 따뜻한 가슴을 지닌 아이들 덕분이다. 숱한 노력에도 내 힘으로 바뀌지 않는 아이들로 인해 어깨와 무릎이 절로 꺾이다가도, 나를 향해 따듯한 애정과 감사를 보내는 아이들로 인해 힘을 얻어 천천히 위로가 솟아 오른다.

애정과 감사 표하는 아이들, 에너지의 원천들

 교사들은 따듯한 아이들 덕에 버틴다(자료사진).
교사들은 따듯한 아이들 덕에 버틴다(자료사진). ⓒ profwicks on Unsplash

올해는 내가 복이 많은 건지 우리 반에 '꽃 같은 아이들'이 많다. 매일 아침 나는 칠판에 명언을 써주고 좋은 말들, 그리고 내 경험에서 우러나온 교훈들을 아이들에게 나누곤 한다. 그때마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듣는 아이들. 그리고 그 말들을 가슴 깊이 기억했다가 일기장에 쓰며 감사를 표현하는 아이들.

가끔 6교시 풀로 수업을 하고 나면 늘 알림장에 '선생님 쉼 없이 우리를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써오는 아이들. 그리고 출근하면 가끔 책상 위에 놓인 작은 비타민, 사탕과 '힘내세요' 쪽지들. 그 모든 것이 내가 교직에 발을 딛고 설 힘을 내게 해주는 에너지의 원천들이다.

날이 갈수록 팍팍해지고 교사의 무력감은 커져가는 요즘의 학교 현실 속,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할 이유는 바로 선생님에 대한 따듯한 인간성을 발휘해 주는 아이들이 때문이다.

물론 집에서도 잘 바뀌지 않는 26명 아이들을 내 힘으로 다 바꿀 순 없겠지만, 그 중 일부라도 나의 작은 한 마디에도 영향을 받아 그것을 가슴에 새기며 평생을 살아갈 원동력으로 삼아간다면? 절로 주먹을 불끈 쥐게 된다. 굵고 단단한 나무처럼 교직에 발을 무겁게 붙여야 할 이유로 충분하다.

지금은 병가에 들어간, 그 A선생님이 반 아이들 이야기를 하며 환하게 웃던 지난 3월의 어느 날을 다시금 추억해 본다. 그 꽃밭 같은 아이들 앞에서 돌아설 수밖에 없었던 그 심경을 떠올리면 가슴 한 구석이 예리한 무언가에 베인 듯 내 마음도 같이 아파온다.

부디 다시 학교 교실에 발을 딛는 날엔, 교실에서 윤기를 머금고 환히 피어오른 몇 송이의 꽃을 발견할 수 있기를. 그래서 가슴속에 작은 불꽃이 피어올라 전보다 더 영글어진 꽃밭에서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시길 바라본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 만날 제자가 "선생님이 해 주신 그 말로 하루하루를 살아요"라며 눈을 반짝이며 내게 이야기를 건넬 그 순간을 매번 그리며, 학교에서의 하루를 힘차게 시작해야겠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계정에도 실립니다.


#학교교실#희망#가르침#따듯한아이들의감사#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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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작은 소리에 귀기울이는 에세이작가가 되고 싶은 작가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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