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이가 영국에서 학교를 5년째 다니고 있다. 코로나19 시기 때 런던에 근무를 했던 인연으로 아이들은 영국에 남겨두고 필자는 서울과 런던을 오가는 생활을 한 지 2년 차다. 따로 계획하지 않은 삶의 방식이었지만 아이들이 자연에서 자라는 모습을 보니 일반적이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되었다. 수년간 영국이라는 나라에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보았다. 개인적이면서 한국적인 시선과 생각을 영국인들의 생활 주변에서 바라보았다.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영국에서 장을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보았다. 집안일은 가정마다 틀리겠지만 효율적으로 역할이 부여되기 마련이고 장을 보는 일은 자연스럽게 필자에게 주어졌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장을 보러 가려 했다. 차를 타고 좀 더 저렴한 마트에 가는 시간과 비싼 물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으로는 집에 있는 식료품이 늘 부족했다. 영국에는 혼자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일단 식료품의 포장 단위나 그 양이 1인 가정에 맞춰져 있는 부분도 한몫했다. 처음에는 식료품과 생필품을 사는 시기를 자주 하게끔 만드는 곳에서 조절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장을 볼 때보다는 호기심을 늘 가졌다. 유럽의 최서쪽 섬나라 사람들이 먹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영국에서 가끔 앱을 통해 슬랏(배달 가능한 시간)을 예약하여 장을 보기도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장 보는 행위 자체의 즐거움도 있어 크게 부담되지 않는 마음을 가졌다. 장을 볼 때 관광 모드가 되어 영국인들의 삶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영국 사람들이 계산하는 물건들을 호기심을 가지고 본다. 계산대에 줄을 서고 앞선 사람이 계산하고 있는 음식과 잡화를 보면 '과연 그렇구나'라는 생각을 가진다. 고기, 과일, 식빵, 우유, 계란, 과자, 휴지, 커피, 차, 코크, 맥주, 와인, 세제, 야채와 같은 것들은 전세계인들의 공통 구입 품목으로, 전 세계인들이 비슷한 소비 추세를 가지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대기업들이 제조하고 전세계에 유통망을 가지고 공급하는 프로세스가 기본 바탕에 깔려 있어서 그렇겠지만. 치즈, 유제품, 일회용 밀키트, 바게트빵, 라임, 레몬과 같은 것들이라던지 커리나 향신료, 해산물, 하몽, 양고기, 블루치즈 같은 것들은 좀 더 유럽식이다.
마트에서는 그 어떤 다른 상점보다 사람들의 표정이 진지하다. 그날 꼭 사가야 할 목록들을 정해두고 장바구니에 담아내고 말겠다는 표정이나 자세를 가진다. 개중에는 흥얼거리면서 세상 즐거운 일처럼 장을 보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이 사람들은 비단 장 보는 행위 말고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그럴 것이다. 소박하게 꼭 필요한 몇 가지 만을 사는 사람들은 혼자 사는 사람일 확률이 높고 이들 대부분은 젊은 세대들이다. 나이가 황혼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은 장을 볼 때 넉넉하고 풍족하게 사 가는 것을 종종 본다. 영국은 연금제도가 잘 되어 있고 혼자 살아가면서 영리한 소비와 지출이 몸에 베어있는 노년층이 많다.
비싼 영국 물가를 생각하면(1파운드가 1760원 정도) 자연스럽게 생활에 꼭 필요한 것만 사야 하는데 이곳에서 외국인인 필자는 아주 가끔 새로운 시도를 한다. 새로운 시도라 해봤자 소소하게 먹어보지 않은 과일, 육류나 치즈, 와인이나 과자와 같은 것들을 시도하는 정도다. 과감한 시도를 했다가 영락없이 후회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그 위험 부담을 피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시도가 점점 소심해져 가기도 한다.
얼마 전 새로운 시도로 석화를 한번 사 보았다. 이곳에서도 생굴은 비싼 편으로 석화 세 개에 10파운드(약 1만 7600원) 정도다.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것으로 보이지만 1차 유통망(도매)을 거쳐온 녀석들로 보인다. 한국에서 나는 것들과 모양도 가격도 차이가 있다. 고향 바다가 틀리고 바닷속 친구들도 틀릴 것이다. 굴 세 개를 심각하게 바라보며 골라와 집에 와서 마음 먹고 작은 와인 따개를 이용해 굴을 열어보았는데 세 개 중 두 개는 굴이 채 자라지 않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유럽식으로 소금 조금과 레몬을 뿌리고 한국식으로 초장에 살짝 묻혀 따뜻한 쌀밥을 한 숟가락 먹고 난 후 굴을 먹었더니 제법 굴 같은 맛이 났다. 그리고 화이트 와인 한 모금을 하니 굴에 대한 구입 시도가 그리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일상이 느리고 한국보다 다소 소박한(일반적으로) 유럽에서 계속 살아 간다면 일 년에 한 번 정도씩 굴과 쌀밥과 초장과 화이트 와인과 김을 선택하는 저녁이 있는 것도 생각보다 괜찮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마트에서 한 달에 한번 정도 사는 사치품으로 꽃이 있다. 영국에 마트에는 대부분 꽃을 판다. 영국에 마트 체인점에는 웨이트로즈, 막스앤스팬서, 테스코, 세인즈버리 등이 있는데 막스앤스팬서를 제외하고는 들어가는 입구에 꽃을 판다. 최고급 마트를 지향하는 막스앤스팬서에서는 계산하는 앞쪽에 꽃을 판다. 계산대는 대부분 셀프 계산대이다. 꽃들이 손님을 반기고 배웅하는 차이라 할까.
꽃은 감상 목적이다. 집에 들어서면 마음에 색깔과 온기를 데워주는 용도로서 꽃은 충분한 역할을 한다. 살아있는 생명의 화사함과 이어지는 생명의 낙화를 생각나게 한다. 유리병에 담겨 테이블에 올려 놓으면 그 것 자체로 실내의 공기와 분위기가 틀려진다. 필자는 어렸을적부터 꽃을 좋아했다. 향기도. 이름도. 그에 따른 추억도.
마지막으로 가판대에도 장바구니에도 선택되지 않는 잡화들이 늘 있다. 그리고 그 잡화들은 언제까지고 그곳에 놓여있고 유통기한이 지나면 새것으로 대체된다. 꾸준히 놓여지는 잡화들에게는 꾸준함이 있다. 마트는 이렇게 많은 정체성을 내포하고 있다. 사람들은 아침과 점심 저녁 활동 하기 위해 무언가를 늘 먹고 필요한 것을 소비한다. 많은 도시인들이 시장을 대신해 마트로 향한다. 마트는 컨비니언스하게 사람들을 받아준다. 늘 원하는 무엇인가가 그곳에 있다. 마트는 세계 어디에서나 공통적인 도시인들의 생활에 한부분으로써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공간으로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