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적 목적은 … 일의 형태가 변화하면서 새로운 불안정성이 어떻게 그 모습을 드러내는지, 그리고 불안정노동자를 둘러싼 제도적 노력이 어느 부분에서 실패하는지, 무엇보다 불안정노동과 사회정책을 내가 어떻게 연구하며, 무엇을 배웠는지를 공유하고자 한다." (책, 14~15쪽)
<보이지 않는 노동>을 쓴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가 스스로 밝힌 책을 펴낸 목적이다. '4차 산업혁명' 소리가 어느새 잦아들었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급격히 변하고 있다. 하루가 다를 정도로 기술 변화 속도가 빠르게 진행된다. 관련 산업, 노동, 소비는 물론 관계가 급변한다.
변화가 주는 부정적 영향을 분석하고 적절한 대책을 제도로 만들지 못하는 '지체' 현상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난다. 제도 마련은 고사하고 변화 과정을 설명하는 일조차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내가 속해 있는 교육계를 포함해 사회 전반에서 새로운 기술의 긍정적 효과를 홍보하고 적용 방법을 고민하기 바쁘다.
선거철 '주요 고객'인 청년을 중심으로 '불안'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언론은 '낙관'을 퍼뜨린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불안정노동자'에 관심을 두는 연구자가 있다는 것 자체가 반가운 일이다. 더구나 자신이 속한 계급적 위치와 연구 대상의 틈을 메우기 위해 노력하는 학자가 있다는 점은 매우 다행스럽다.
'쓰러지는', 그러나 '쉴 수 없는' 노동자들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됐다. 1부 '격랑의 노동현장, 준비되지 않은 사회'는 급변하는 한국에서 드러나지 않는 불안정노동자들의 일터를 포착한다. 2부 '노동자가 쓰러진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는 불안정노동이 일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 어떤 어둠을 만드는지와 허술한 사회 안전망을 보여준다. 3부 '청년노동, 누가 무엇을 말하는가?'는 청년 불안정노동자들의 삶과 청년 세대 양극화를 다룬다. 4부 '경계에서의 고민'은 불안정노동 연구자로서 고뇌와 성찰을 담았다.
"우리는 삶을 걸고 일하는 노동자들의 존재를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어떤 노동이 우리의 편의를 위해 희생하고 있는지, 그 실체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책, 41쪽)
OECD 평균보다 200시간 더 일하는 사회, 삶의 기본 요소인 교육, 돌봄, 주거 등을 보장하지 않는 사회, 고객 만족을 앞세워 2군 발암물질인 밤샘 노동을 아무렇지 않게 사회, 기술 발달이 노동자의 휴식을 늘리기보다 더 많이 일하게 하는 사회. 책에 드러난 한국 사회의 모습이다. 이런 곳에서 최소한 '내가 누구 덕에 이렇게 편하게 살고 있는지'는 드러내자는 글쓴이의 말은 슬프기까지하다.
작년 한 대학생이 집회를 연 청소노동자들을 고소했던 사건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이 사용하는 학교 곳곳에 떨어진 청소노동자들의 땀 덕분에 깨끗한 삶을 살았음을 인지하지 못 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에게 청소노동자들이 흘린 땀의 소중함을 알려주지 않았다. 이것은 한국 사회의 실패와 교육의 허점을 아프게 드러낸다.
"비정규직·돌봄노동자·버스노동자·영세자영업자·청소노동자·콜센터 노동자·플랫폼노동자·아픈 노동자·해고노동자·프리랜서 노동자·노인빈곤 노동자·불안정한 청년노동자·하청노동자·새벽 배달노동자·영세사업장 노동자... 이들이 한국사회의 구조에서 어떻게 실존하고 있는지 더 가까이 다가가 이론과 데이터로 충분히 풀 수 없는 암호들을 해독하고 싶었다." (책, 209쪽)
이 암호 해독은 연구자들만의 몫이 아니다. 공동체가 함께 풀어내야 할 과제다. 그 암호 속에는 '쓰러지는', 그러나 '쉴 수 없는' 노동자들 이야기도 들어 있다. 허술한 사회 보장 제도로 인해 일터에 붙어 있지 않으면, 생활이 어렵다. 코로나 19 팬데믹 때 '아프면 쉬어야 한다'던 말은 사라진 지 오래다. 아픈 몸을 '하자 있는 상품'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쉬지 못 한다(책, 79쪽).
"딱 빨대 꽂아놓고 그냥 빨아당기는 거라고, 우리는 그렇게 표현을 할 정도예요."(책, 85쪽) 글쓴이가 인터뷰한 한 노동자는 원청과 하청업체가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노동자가 죽지 않을 정도로만" 일을 시킨다고도 했다.
이 책에서 내가 두드러지게 본 부분은 두 가지다. 하나는 청년 세대의 양극화를 자세하게 다루었다는 점이다. 둘째는 연구자로서 글쓴이의 태도다.
"언론에 드러난 '청년'은 주로 대학생이거나 취업 준비생 등 중산층 이상의 경제적 배경을 가진 이들이었다." (128쪽)
청년 세대는 선거철 '단골손님'이다. 세대별 접근이 사회 이해에 유용한지 논란이 있다. 하지만, 최소한 책은 청년 세대를 한 묶음으로 취급할 때 무엇을 놓치게 되는지 잘 보여줬다. 바로 청년 세대 양극화 현상이다. 다음 '한국 청년(19~34세) 불안정노동의 양극화 양상' 그래프는 이를 잘 보여준다(책, 139쪽).
고용 불안정, 임금·소득 불안정, 사회보험 불안정을 지표로 이 세 가지 모두 불안정한 경우 '매우 불안정', 두 가지가 불안정한 경우 '불안정', 한 가지가 불안정한 경우 '약간 불안정', 모두 불안정하지 않으면 '안정'으로 나타냈다(책, 138~139쪽). 2002과 비교하면, 2022년 청년 세대의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는 노동시장의 분절이 기존의 인식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층적임을 시사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전체 분석대상의 34.4%가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의 불안정성을 경험하거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불안정성이 증가하는 궤적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반면 38.3%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노동 경험을 지속적으로 유지했다." (책, 148쪽)
이러한 현상은 언뜻 보기에 매우 안정적이고 차이가 없을 것 같은 박사 학위 소지자 또는 대학 교수자들에게도 적용된다. "전체 대학 교수자 중 여성의 비율은 30%도 안 되는 반면, 전체 강사와 비정년 교수자 중 여성의 비율은 62.5%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180쪽).
초, 중등학교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노동자들이 일한다. 그 가운데 매우 중요한 일을 하지만 눈에는 잘 보이지 이들이 점점 많아진다. 글쓴이가 서울 소재 정규직 교수라는 안정적 지위로 인해 자신이 하는 연구가 대상화 될 것을 염려하고 성찰하는 태도는 눈여겨 보게 된다. '학생'을 수시로 만나는 나는 과연 그들의 삶을 낫게 만드는 사회와 제도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민하고 노력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모든 일하는 사람과 노동자가 기본적인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보다 더 진화된 노동법과 사회보장제도, 분배제도의 마련, 새로운 형태로 일하는 노동자의 권리 강화, 그리고 기술 발전에 따라 확대되는 비대칭적 정보 독점 해소 등이 필요하다." (책, 227쪽)
그러기 위해 우리는 사회 곳곳에서 존재하지만, 없는 듯 여겨지는 수많은 다양한 형태의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을 찾고, 그 모습을 더 가까이, 더욱 자세하게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