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달성군의 한 야산. 초록과 황금색이 번갈아 나타나며 단풍이 들고 있는 듯하지만 소나무재선충에 걸려 죽어가는 소나무들이다. ⓒ 정수근
산에 단풍이 든 것일까? 알록달록 초록과 황금빛이 번갈아 나타나 아름다운 문양을 만든다. 산 전체가 황금색 단풍으로 서서히 물들어가는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다. 자세히 보면 단풍과는 달라 보인다.
그렇다. 마치 단풍이 물들어가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소나무가 재선충에 걸려 죽어가는 모습이다. 거대한 나무 무덤이 생기는 광경이다.
거대한 나무 무덤 ... 소나무재선충으로 죽어 나가는 우리 상록수 소나무
이곳은 대구 달성군 하빈면의 한 야산이다. 이 야트막한 야산 전체가 소나무 군락지이고 이곳 소나무 군락지의 절반 이상이 소나무재선충이란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아름다운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소나무 숲 전체가 죽어가는 비극의 현장이다.
비단 이곳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에서 유입돼 부산에서 시작한 소나무재선충은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에 의해 지금 경북 울진과 강원 정선까지 확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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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무 무덤 소나무 재선충에 감염돼 죽어가는 소나무 군락지. 거대한 나무무덤으로 변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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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수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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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으로 푸르러야 할 소나무 대부분이 죽어 고동색으로 보인다. ⓒ 정수근

▲고동색을 지나 하얗게 변한 것은 죽은 지 몇 해가 지났다는 뜻으로 몇 해 동안 재선충 방제 작업에 손 놓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 정수근
이곳 대구 달성군 일대 거의 대부분의 소나무가 재선충으로 죽어 나가고 있다. 사시사철 푸른 상록수 소나무가 황금색으로 물들어가며 죽어 나가고 있다. 어떤 나무는 죽은 지 오래되어 잎이 하얀색으로 변색되었다. 죽은 지 수년이 지난 소나무들도 부지기수다. 재선충 방제에 실패했고 거의 포기 상태란 말이 들린다. 우리 국토 전역의 소나무가 죽어 나갈 일대 위기다.
소나무재선충을 '소나무 에이즈'라 부르며 방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산림청은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산림청이 막대한 예산을 쓰고도 재선충 방제에 실패해 우리나라 소나무가 초토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종원 전 교수가 죽어가는 소나무를 살펴보고 있다. ⓒ 정수근
21일 현장에서 만난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저자 김종원 전 계명대 생물학과 교수는 말했다.
"일본이 나름 성과를 내는 소나무재선충 방제를 왜 이 나라는 못 하는 것인지 정말 모를 일이다. 일본의 소나무재선충은 통제 가능한 상태로 관리가 되고 있는데, 이 나라의 소나무들은 당국의 무관심과 무책임으로 통제 불능의 상황이다. 이러다가는 우리 국토 전역의 소나무들이 몽땅 죽어 나갈 것 같아 정말 걱정이다."
실제 한창 재선충 방제 작업을 할 지금 방제 작업을 하는 곳을 찾기 어렵다. 자포자기한 상태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소나무재선충으로 죽어 푸른빛이 검붉게 바뀐 소나무. 멀리서 보면 마치 단풍이 든 것처럼 보인다. ⓒ 정수근

▲소나무재선충으로 죽은 소나무를 살펴보는 김종원 전 교수 ⓒ 정수근
"충분히 방제가 가능하다. 일본에서 통제가 가능한 이 소나무 병이 이 나라에서 불가능하다는 것은 수술을 돌팔이에게 맡겨 놨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유능한 의사가 세심한 처치로 환자를 살려내듯이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소나무들이 죽어가고 있다. 전적으로 산림 당국의 무능 탓이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의사가 필요하다.
재선충을 옮기는 솔수염하늘소가 우화해서 이동하는 시기인 봄 전에 방제 작업을 충실히 하고 이후 투명한 방수포로 덮어서 안에서 제대로 방제가 되고 있는지 확인하며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김 전 교수의 분석이다. 그 증거로 그는 일본에서 소나무재선충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는 통계 그래프를 보여주었다. 우리나라 산림청에 해당하는 일본 임야청이 소나무재선충을 막아내 그 비율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통계로 그대로 드러난다.

▲일본 소나무재선충 방제 그래프. 일본 임야청의 22년도 통계자료 ⓒ 일본 임야청

▲일본의 산림청인 일본 임야청에서 만든 소나무재선충 방제 매뉴얼. 그림만 봐도 설명을 가능할 정도로 잘 정리되어 있다. ⓒ 일본 임야청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녹색으로 덮어 보이지 않도록 훈증처리 하지 않고, 투명한 방수포로 덮어 밖에서 육안으로 검시하면서 관리해 나가고 있다. ⓒ 일본 임야청
"일본의 재선충 방제 매뉴얼을 보면 지금이 재선충 방제작업을 해야 할 적기인데 지금 달성군에서는 방제 작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또 이미 방제 작업을 해둔 곳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곳이 많다. 철저하게 관리하면 재선충을 막을 수 있는데 막대한 예산을 들여놓고도 재선충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 정말 걱정이다."
이미 소나무재선충 문제로 논문을 쓴 바 있는 식물학자인 그에게조차 전혀 자문을 구하고 있지 않은 산림 당국의 무지함도 질타한다. 충분히 재선충에 대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학자조차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양역 부근에 조경수로 심어둔 소나무도 재선충에 감염돼 죽어버렸다. ⓒ 정수근
엉터리 방제 작업에 엉터리 수종 갱신 산림청
문제는 더 있다. 재선충에 걸려 죽은 소나무를 모두베기로 몽땅 베어낸 곳도 엉망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현장도 찾았다.
대구 지하철 2호선 종점인 문양역 바로 뒤편에 있는 문제의 현장인 야트막한 야산엔 모두베기로 재선충에 걸린 나무들이 몽땅 베어졌고 그 자리에 새로운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 나무들은 일본산 편백나무였다.
"편백나무는 해양성 기후 화산 지대의 습윤한 곳에 자라는 나무로 대륙성기후 지대인 우리나라, 그 중에서도 가장 건조하고 가장 척박한 셰일퇴적암층인 이곳에 편백나무를 심은 것은 정말 무지의 소치로 이곳에 전혀 어울리지 않은 나무를 심었다. 이 나무들 중 상당수는 벌써 죽어 나가고 있다. 이런 엉터리가 어디 있는가."

▲소나무재선충에 걸려 죽은 나무들을 모두베기로 베어내고 새로운 나무를 심었다. 그 나무가 일본산 편백나무다. 그런데 편백나무는 이곳 기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 정수근

▲대구 달성군이 심은 편백나무 중 상당수는 이미 죽어버렸다. 편백나무는 이곳 기후와 풍토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 정수근
김 전 교수는 "이렇게 나무를 새로 심을 때도 '잠재 자연 식생'이라고 그곳 풍토와 기후 조건에 맞는 나무를 심어야 하는데 왜 이곳 풍토에 전혀 맞지 않는 일본이란 해양성 기후 화산 지대에 사는 일본 특산종 나무를 가져와 심는지 도무지 이해 못할 일이다. 한마디로 직무유기"라고 맹비난했다.
이 일대는 굴참나무와 상수리나무 같은 나무들이 곳곳에 자리 잡아 살고 있어 이런 나무들을 심어도 되는데 '피톤치드 생산'이라는 유행을 쫓아 이 땅에 맞지도 않는 나무를 심었다는 것이다.
그는 "편백나무는 이곳에서 운 좋게 살아남아 자랐다 쳐도 쉽게 잘 쓰러지고 봄철 꽃가루가 극심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편백나무를 심은 이곳 야산 잎에는 대구 달성군이 방제작업을 했다는 현수막을 걸어뒀다. ⓒ 정수근

▲소나무재선충에 걸려 죽은 소나무 사이에서 "더는 소나무를 죽여서는 안된다"라며 산림 당국에 조언하는 김종원 전 교수 ⓒ 정수근
근본 처방과 처치 모두 잘못된 총체적 난맥상.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제대로 된 방제 작업으로 수술을 잘하고 잘 처치해 나간다면 충분히 통제 가능하다. 일본이 이미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모든 질병을 근절할 수는 없다. 우리가 팬데믹 상황을 적절히 통제했듯 재선충도 통제 가능한 상황으로 관리하면 된다.
살아남은 나머지 소나무라도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잠재 자연 식생 개념만 이해한다면 제대로 새 나무를 심을 수 있다. 제대로 된 전문가를 찾아 제대로 된 처방을 받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김종원 전 교수의 조언이다. 산림 당국과 해당 지자체인 대구 달성군이 소나무재선충 대책을 재점검하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