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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가 개념에 의해 해명되듯이, 리얼리티는 관점에 의해 설명된다.
이 연재는 청년 세대의 관점에서 바라본 북향민의 리얼리티다. 그리고 다시금 통일에 대한 비전을 기록한다.[기자말]
꿈꾸는 청년들

북한사회는 정부당국이 직업을 선택한다. 청년들이 10년 가까이 20대를 군대에서 청춘을 바치고 나서 제대하면 기업소나 탄광, 농장 등 집단으로 배치된다. 최근 북한은 과거보다 시장이 활성화돼서 조금은 달라졌다고 하나 직업선택의 자유가 없는 것은 여전하다. 물론 여러 이유로 군대를 가지 않았거나 제대한 청년들, 군대 가지 않은 여성들이 시장에서 장사하면서 사업을 키우기도 한다.

밑바닥 어딘가에서 시장경제의 흐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곳에서조차 본질적으로 꿈을 이루기 위한 직업 선택의 자유가 없는 건 매한가지다. 특히 한국에 정착한 탈북청년의 대부분이 북에서 꿈과는 거리가 먼 어려운 삶을 살다 온 청년들이다. 그들은 당장 내일 먹을 식량을 마련해야만 하는 삶을 살았다. 중산층 이상의 생활을 하다가 탈북한 청년들도 있다. 그들은 생계를 위한 장사나 사업을 했어도 자신이 원하는 꿈을 북한사회에서는 도저히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다.

꿈은 인생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꿈을 위해서 기회를 위해서 탈북을 선택한다. 나 또한 북에서 꿈을 가져본 적이 없으며 한국에 와서야 꿈에 대해 처음으로 고민했다. 좋은 사회에 대한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겐 청년이 꿈을 꿀수 있느냐 없느냐가 좋은 사회인지 나쁜 사회인지를 가르는 기준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 사회는 내게 좋은 사회이며 같은 의미로 탈북청년들 입장에서도 한국은 여전히 기회의 땅이다. 다만 한국 사회의 극심한 경쟁이 버티기가 힘들 정도로 치열할 뿐이다.

버텨내기

꿈을 이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남쪽에서 태어난 사람에게도 북쪽에서 온 사람에게도 자신의 꿈을 이룬다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북쪽에서 온 사람은 '본토'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것. 거기엔 애초부터 게임이 안 되는 꼬리표들이 붙는다.

사교육 세계 1위라는 대한민국, 유치원부터 영어를 접하는 환경, 입시교육이 자연스러운 문화… 이 속에서 성장한 본토 사람과 북쪽 사람 간의 경쟁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특히 또래들과 길게는 10~15년의 교육격차가 있는 탈북청년들에겐 가혹한 조건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밤낮 지식과 경험을 암기하듯 흡수해도 부족하다.

한국에서는 경제적 격차가 교육격차를 만든다는 말도 있는데 이런 의미에서 북향민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다. 한국 생활의 첫 시작을 기초생활수급자 신분으로 시작하는 북향민들이 한국사회에서 새로운 꿈을 펼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의 북한이탈주민 교육지원 정책과 민간단체 및 종교단체들의 추가적인 교육지원은 탈북청년들의 교육공백을 메꾸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탈북청년들이 대학교에 진학했을 때 정부에서는 8학기 동안 등록금을 지원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업 중도포기 비율은 남한 대학생보다 높은 편이다. 기초 교육 수준 차이로 인한 어려움은 물론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일반 남한청년들도 감당하는 일이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으로 힘들다 불평할 수는 없다. 문제는 힘든 조건의 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탈북청년은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며 이로 인해 아르바이트는 용돈을 버는 수준이 아니라 생업이 되어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하루 종일 공부만 해도 부족한 대학 전공 수업을 병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게 된다. 그러면 탈북청년들에게는 대학교를 겨우 졸업하는 것 자체가 일단 성공이 되고 만다.

이런 탈북청년들의 어려움은 명약관화해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일찍이 민간단체와 종교단체들 중심으로 지원에 나섰다. 장학금과 멘토링 등 교육지원이 다양해졌고, 그 덕분에 적지 않은 탈북청년들에게 아르바이트 대신 학업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기도 한다.

이렇듯 탈북청년들은 새로운 땅인 한국 사회에서 처음으로 꿈을 갖고 시작을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요즘 청년세대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듯 탈북청년들도 처음 가졌던 꿈은 어느새 현실과 타협이 돼서 월급이라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취업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을 곧 현실적인 정착 성공으로 받아들인다.

덧붙이는 글 | 조경일 작가는 함경북도 아오지 출신이다. 정치컨설턴트, 국회 비서관을 거쳐 현재 작가로 활동하며 대립과 갈등의 벽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한다. 책 <아오지까지> <리얼리티와 유니티> <이준석이 나갑니다>(공저) <분단이 싫어서>(공저)를 썼다.


#조경일#탈북청년#북향민#북한이탈주민#북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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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일 작가는 함경북도 아오지 출신이다. 정치컨설턴트, 국회 비서관을 거쳐 현재 작가로 활동하며 대립과 갈등의 벽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한다. 책 <아오지까지> <리얼리티와 유니티> <이준석이 나갑니다>(공저) <분단이 싫어서>(공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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