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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내가 배우고 있는 하와이 춤 훌라(hula) 수업 시간 중 더 추워지기 전에 버스킹(거리 공연)을 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장소는 홍대입구역 야외공연장, 건대입구역 청춘 뜨락 등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거리가 물망에 올랐다.

오십이 넘은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그것도 어깨를 다 드러낸 상의를 입고 춤을?

보통 훌라 공연 때는 전통 의상인 '팔라우키'를 입는데, 소매가 없고 어깨가 나오는 튜브톱 형태의 상의다. 나이 많은 사람이 그런 옷을 입고 춤을 추면 주책맞다고 하지 않을까 걱정됐다. 그러나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지난여름 유쾌한 추억 덕분이었다.

훌라는 맨발이 기본 훌라 공연 때는 전통 의상인 ‘팔라우키’를 입는다. 사진은 지난 2024 서울 뷰티 트래블 위크에 초정받아 행사 공연 중인 모습(자료사진).
훌라는 맨발이 기본훌라 공연 때는 전통 의상인 ‘팔라우키’를 입는다. 사진은 지난 2024 서울 뷰티 트래블 위크에 초정받아 행사 공연 중인 모습(자료사진). ⓒ 이산들

당시 여름휴가로 일본의 작은 섬 미야코지마에 가족 여행을 갔다. 귀국하는 날, 남은 시간은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보내기로 했다. 남편은 전날 패들 보트에 부딪힌 어깨가 불편하다며 방에서 쉬었고, 딸들은 각자 바다로, 수영장으로 나갔다. 나는 영상기기를 챙겨서 호텔의 한갓진 정원으로 갔다. 훌라 영상을 찍기 위해서였다.

훌라는 손동작으로 노래 가사를 표현하는 수화(手話) 같은 춤이다. 아름다운 하와이 노래는 사랑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은 가사가 많다.

특히나 야외로 나가 자연에서 훌라를 추면 느낌이 더 특별하다. 이국적인 자연을 배경으로 훌라를 추고,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낯선 여행지에서 나 혼자 추는 훌라는 처음이었다. 사람이 지나가면 부끄러워 핸드폰을 만지거나 딴 척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가 좋아하는 곡을 골라 훌라를 췄다.

일본 여성의 따뜻한 미소... 나이 의식하던 나, 괜한 우려였구나

 일본 미야코지마 숙소였던 호텔 정원에서 혼자 훌라를 처음 춰봤다.
일본 미야코지마 숙소였던 호텔 정원에서 혼자 훌라를 처음 춰봤다. ⓒ 전윤정

나이 지긋한 일본인 여성이 내가 훌라 추는 것을 지켜보다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내가 유튜버가 아니면, 자신도 영상을 짧게 찍어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설명인즉슨 자신도 훌라를 배우고 있는데,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부족한 일본어를 총동원해 대화를 나눴다.

일본은 우리보다 훌라가 대중화된 지 오래다. 아오이 유우 주연으로 유명한 영화 <훌라 걸즈> 뿐 아니라 일본 영화나 드라마에서 등장인물이 취미로 훌라 추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즐기는 사람이 많으니, 일본에는 훌라와 관련해 책이나 용품 전문점도 많다. 인터넷 중고 플랫폼에도 훌라 의상이나 소품이 많이 올라와서, 나도 자주 구경하고 가끔 구매하곤 한다.

"일본에는 훌라 추는 분들이 많지요?"
"네. 하와이로 직접 훌라를 배우러 가는 열성파도 있어요. 한국에도 훌라 추는 사람이 많습니까?"
"아니에요. 몇 년 전부터 훌라가 많이 알려졌어요."

그는 훌라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오래 수련한 태극권이 도움이 된다고 했다.

"태극권과 훌라는 다리 기본자세가 같아요. 상체가 흔들리면 안 되는 것도 같아요. 하지만 태극권에는 미소가 없죠. 선생님이 매번 '스마일! 웃어요! 웃어요!' 해요."
"하하. 저희 선생님도 맨날 '스마일, 스마일' 외쳐요. 사실 미소가 없으면 좀 무서워요."
"맞아요. (무뚝뚝한 표정으로 손동작하며) 이런 느낌? 무서워요. 다시 춰보세요. 파란 하늘과 초록 잔디와 나무가 훌라 추기 딱 맞네요."

춤추는 내내 멈추면 안 되는 '훌라 미소' 얘기였다(관련 기사: 나이 오십 넘어 만났는데 미소가 떠나지 않아요 https://omn.kr/299rh).

나 혼자 추려니 민망해서 같이 추자고 권했지만, 그는 손사래를 쳤다. 한 사람의 관객을 앞에 두고 나는 훌라를 췄다. 나를 바라보는 그분의 미소는 따뜻했다. 나도 따라 더 크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가슴에서 두 손을 뻗어 '사랑을 보낸다는' 의미를 담은 동작을 그에게 보냈고, 그 또한 나에게 같은 동작을 보냈다. 훌라를 통해 언어를 넘어 소통할 수 있구나 싶어 기뻤다. 멋진 경험이었다.

이번 버스킹에서도 낯선 사람에게 훌라의 아름다운 메시지와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이가 의식됐다. 젊고 화사한 무대에 내가 끼어 민폐가 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다.

아직 나이 든 사람이 춤을 추면 '춤바람'으로 격하되곤 하니까. 나는 수업 시간에 그걸 솔직히 이야기했다. 하지만 다들 다채로운 다양성이 훌라의 매력이라며 오히려 나를 나무랐다. 특히 강사 하야티는 두 팔로 크게 엑스자를 만들며 말했다.

"민폐 끼치기는 이미 실패하셨어요!"

지난 10월 말, 우리 수업 팀은 서울 마포종점 나들목에서 버스킹을 했다. 멀리서 리허설을 조용히 지켜본 할아버지 한 분이 있었다. 우리가 엔딩곡인 엘비스 프레슬리의 '캔 헬프 폴링 인 러브 (Can't Help Falling In Love) ' 곡에 맞춰 훌라를 출 때, 익숙한 곡이라 더 반가운 듯 그가 환하게 웃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지난 10월 25일 마포종점 나들목에서 오십 넘어 첫 버스킹을 했다
지난 10월 25일 마포종점 나들목에서 오십 넘어 첫 버스킹을 했다 ⓒ 전윤정

당시 본격적으로 공연이 시작되자, 돌계단에 한두 사람씩 채워졌다. 무심히 지나가다 뒤돌아보는 사람, 자전거를 타고 가다 내려서 천천히 끌고 가며 보는 사람, 산책을 나왔다가 반려견을 안고 멈춘 사람. 그리고 응원하기 위해 와준 고마운 지인들.

삶이 또 어떤 선물을 숨겨놓았을까

올 한 해 무대 조명이 화려한 크고 작은 무대에서 훌라 공연을 했다. 많은 관객 앞에서 '잘해야지' '틀리지 말아야지'라는 마음이 앞섰다. 평소보다 동작이 자연스럽지 못했고, 예상 못 한 부분에서 틀리기도 해 속상했다.

하지만 이번 버스킹 때는 내가 즐기는 마음으로, 그 기쁨을 나누는 마음으로 추었다. 탁 트인 야외 공간이 주는 자유로움 속에서는 동작도 한결 여유가 있게 나왔다. 무엇보다, 한 번도 안 틀렸다!

문득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의 시구절이 생각났다.

"행복감에 흠뻑 젖어든 나머지 나는
축복받은 느낌이었고, 그래서 축복할 수 있었다."
‐ '출렁이는 마음' 중에서

나는 행복했고, 그 행복을 지나가다 잠깐 멈춰 선 사람들에게 축복을 전할 수 있었다. 훌라를 추는 나의 행복이 전해지는 느낌을 몸으로 느꼈다.

나이 오십에 첫 버스킹. 삶은 또 어떤 선물을 숨겨놓았을까? 앞으로의 내 훌라 여정이, 내 인생 후반부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훌라#버스킹#중년#오십#미야코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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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세상의 나뭇가지를 물어와 글쓰기로 중년의 빈 둥지를 채워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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