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지역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해안가 침식 현상이 지역 사회와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몇 년 간 해안선 후퇴와 모래사장의 소실이 가속화되면서, 해안가 침식은 단순한 자연 변화가 아닌 장기적인 환경적 위기로 이어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자는 10월 중순부터 11월 말까지 강원특별자치도 고성에서 경북 울진까지의 해안가 침식이 심각한 지역을 중심으로 현장 취재를 진행했다.
잘못 선택된 구조물이 침식을 악화시킨다
경북 울진에 소재한 봉평해수욕장은 1984년 개장한 해수욕장으로 백사장 길이는 약 250m로 아담한 해안가였다. 백사장은 소나무와 해당화, 깨끗한 백사장과 맑은 바닷물이 있어 해수욕장의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는 해변이었다.
지난 20일 방문한 해변은 해당화와 모래밭 대신,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 떨어질 듯한 돌들과 흉물스러운 구조물들이 쌓여 있는 모습만 보였다.
주택과 상가는 해변에서 3-5m 낭떠러지로 변해 언제 붕괴될지 모를 위험한 상태였다. 생활 하수관로로 사용되던 파이프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침식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었다.
팬션을 운영하는 한 주민은 "불안해서 살 수가 없습니다. 손님이 끊긴 지 오래됐고, 저희도 여기 살기가 무섭습니다"라며 하소연했다.

▲연안침식으로 노출된 하수관로(2024/11/20) ⓒ 진재중
침식 방지를 위해 설치된 구조물이 큰 파도에 의해 바닷속으로 쓸려갈 우려가 있어 주민들이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임시방편으로 처리된 시설로 인해 예산만 낭비되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 주민은 "처음부터 제대로 된 시설을 설치했어야 했는데, 현재 상황에서는 마을에서 불안해 살 수 없다"며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한 주인도 구조물 위를 넘는 파도의 위엄에 두려움을 느끼며 불안을 토로했다.

▲위험에 노출된 건물앞에 침식방지 구조물(2024/11/20) ⓒ 진재중
해양수산부는 기후 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인공 구조물 설치 등으로 연안 침식이 심화됨에 따라, 2015년 울진 봉평해변을 연안침식관리구역으로 지정하고 해안침식을 방지하기 위한 헤드랜드를 설치했다.
헤드랜드는 연안 모래 이동의 순환체계를 안정화시켜 침식을 방지하는 시설로, 미국과 일본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속초 영랑동 해안과 울진 봉평해변에만 설치된 상태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해안은 인공 헤드랜드 사이에 모래가 빠져나가 수심이 깊어진 모습이 관찰된다. 북쪽, 중앙, 남쪽에 위치한 인공 헤드랜드는 방파제처럼 보이며, 구조물 사이로 모래가 흡수되듯 사라져 중앙부에는 모래가 거의 없는 상태다.
김진훈 박사는 모니터링 결과를 바탕으로, 헤드랜드는 연안 모래이동의 순환체계를 안정시켜 해안침식을 방지하는 시설로 돌제에 짧은 날개를 붙여 작은 포구를 만드는 구조물이라며, 이러한 구조물이 이상파랑 내습 시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일부 국가에서 사용되지만, 이 지형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봉평해변2015년 침식관리구역으로 지정된 해변(2024/11/20) ⓒ 진재중
봉평해변은 연안방재사업을 진행했으나 침식이 오히려 심화되며 추가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침식을 막기 위한 사업이 오히려 침식을 악화시킨 결과를 초래했으며, 하반기에 설치된 임시 모래주머니도 큰 파도가 밀려오면 침식이 반복될 우려가 있다. 연안정비사업 이후에도 침식이 지속되고 있어 시급한 관리와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한국항만협회 강윤구 박사는 22일 통화에서 "속초 영랑해변과 울진 봉평해변의 헤드랜드는 설치해서는 안되는 구조물입니다. 헤드랜드를 너무 맹신해서 불러온 결과물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침식을 막겠다고 한 사업이 더 큰 침식을 일으켰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경북 울진군 봉평해변, 임시복구지(2024/11/20) ⓒ 진재중
연안침식관리지역으로 지정된 곳에서는 건축 행위가 제한되지만, 건축물이 들어선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 지역에서는 연안침식 심화를 막기 위해 규사·바다모래 채취와 건축물의 신·증축이 제한되며, 침식지역 복구와 안전 확보를 위한 연안정비사업이 우선적으로 시행된다. 또한, 국가나 지자체는 필요시 연안침식관리구역 내 토지 등의 권리를 소유자와 협의해 매수할 수 있다.

▲무방비 상태에 놓인 봉평해변 상가(2024/11/20) ⓒ 진재중
강원자치도 양양군 설악해변은 속초시와 양양군 경계에 위치해 침식 사각지대에 놓인 해안가로, 숙박업소, 상가, 주택이 밀집해 있다.
11월 1일, 찾은 해변은 주택가에서 불과 2m를 거리에 두고 절벽이 나있고 그 아래는 각종 해양쓰레기들이 몰려있었다. 어선 접안을 위한 방파제 건설 이후 해변은 지속적으로 침식되며, 모래 유실과 토양 붕괴가 발생하고 있다.
인근 해안가에 거주하는 주민은 침식 문제 뿐만 아니라, 각종 생활 쓰레기가 몰려들어 해변이 마치 쓰레기 하치장처럼 변했다고 불만을 표했다.

▲침식이 심각한 설악해변, ,주택, 상가 등이 침식에 노출되어 있다(2024/11/1) ⓒ 진재중

▲양양군 설악해변상습침식지역으로 건축물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2024/11/1) ⓒ 진재중
사각지대에 놓인 침식현장
삼척시 초곡해변은 침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으며, 인근 원평해변에서 침식 방지를 위해 설치된 잠제와 이안제가 오히려 그 여파를 초곡해변으로 전이시켰다. 이로 인해 침식 현상이 발생하고, 사고 위험이 커지고 있다.
11월2일 찾은 해변은 절벽이 3~4m 높이로 형성되었고, 침식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된 콘크리트 벽은 큰 파도가 몰아치면 바다 속으로 잠길 위험에 놓여있다. 좁다란 해변위에는 주택과 상가, 비치파라솔 등이 설치되어 있어 그 위험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해송 군락 안으로 2-3m만 들어가면 레일바이크 선로다. 불과 몇 년전에 바로 옆 해변에 레일바이크 선로가 무너져 내려 가동을 중단했던 바로 아래 해변이다.
콘크리트 방호벽이 무너지면 레일바이크 선로가 또 다시 무너질 위기에 처한다.
해양수산부는 해안 침식의 심각성을 인정해, 2020년 제3차 연안정비 기본계획에 이 지역을 포함했다. 2021년 12월에는 착공에 필요한 실시설계까지 끝냈다. 하지만 실제 공사는 아직까지 시작도 못했다. 사업을 시행하는 동해지방해양수산청은 연안정비사업이 이뤄지는 마을 어장에 대해 어민들의 '어업권 포기' 동의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삼척 초곡해변침식지대에 각종 건출물과 파라솔이 설치되어 있다( 2024/11/2) ⓒ 진재중

▲침식방지를 위해 구축된 콘크리트벽이 무너질 위기에 놓여 있다(2024/11/21) ⓒ 진재중

▲삼척 초곡해변침식방지를 위해 임시방편으로 쌓아놓은 시설물(2024/11/2) ⓒ 진재중
강릉시 경포해변과 강문해변 사이의 지역도 침식이 점차 진행되고 있다. 이곳은 이전에 안전지대였으나, 고파랑으로 인한 침식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매일 이곳을 걷는다는 이상민(72세)부부는 "이곳은 전혀 침식이 일어나지 않았던 곳이었는데, 올해 들어 모래가 깍여 나가고 있어 언제 무너질지 몰라 불안하다"고 걱정했다.

▲강릉 경포해변경포해변과 강문해변 사이, 침식이 심화 되고 있다.(2024/10/17) ⓒ 진재중

▲땅속에 묻혀있던 각종 파이프가 노출되어 있다. ⓒ 진재중
갈 길 먼 연안정비사업
10월 25일 방문한 반암해변은 항입구에 퇴적물이 산처럼 쌓여 있었으며, 인근 해변은 침식으로 절벽이 형성돼 고파랑이 밀려오면 언제든지 마을이 물에 잠길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고성군 반암해변은 연안정비 기본계획에 따라 100억원을 투입해 수중방파제 200m, 돌제 100m, 양빈 2만㎡ 등을 설치했지만, 침식 방지에는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최근에는 항구 시설 개선을 위한 100억 규모의 어촌뉴딜 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어민들의 가장 큰 고민인 해안가 침식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임시방편적인 사업이 반복되며 예산 낭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구조물이 설치된 이후에도 침식과 퇴적 현상은 매년처럼 계속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매년 반복되는 침식 현상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한 주민은 "한쪽에는 모래가 쌓이고 다른 쪽은 파여 나가며, 주민들은 언제 파도가 집까지 밀려올지 걱정해 잠자다 해안가로 나와보기도 한다"고 전했다.

▲고성 반암해변해변 앞에 침식방지를 위한 잠제가 설치되어있으나 연안침식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2024/10/25)) ⓒ 진재중

▲고성 반암해변연안침식방지를 위해 바로 앞바다에 잠제를 설치했으나 침식은 반복되고 있다(2024/10/25)) ⓒ 진재중
현장 취재에 동행한 이형석 박사는 동해안에 침식 사각지대가 많다고 지적하며, 연안침식은 단기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속적인 해안 관리와 모니터링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침식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지역별 맞춤형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문제 해결을 위해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