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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트렌드 키워드의 하나로 '아보하'가 보인다. 아보하는 '아주 보통의 하루'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이전에 '소확행'이라는 트렌드에 심취해 나의 하루를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몰두해 집중하고자 했다.
시간이 갈수록 소확행은 크기가 커져야 했고 점차 남에게 보이는 과시로 변질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점에서 새롭게 등장한 '아보하'는 우리가 찾는 행복이란 하루를 경쟁적으로 살아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오늘 보통의 하루를 살아내면 된다는 의미로 보기에 사람들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내가 사는 하루하루가 늘 특별할 수는 없다. 특별함을 짜내고 고안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삶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아보하'가 추구하는 가치라고 본다. 아무것도 아닌 하루, 너무나 무미건조하고 어쩌면 지리멸렬할지도 모르는 하루. 그것이 눈물 나게 그립고 행복한 하루가 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무탈하게 살아온 게 기적
걷는 게 힘든 엄마를 위해 일주일에 두 번 도수치료를 받으러 간다. 워커에 의지해 걷는 연습을 하는 단순한 일인데 병원에서 이 사소한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많은 삶을 보게 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이른 아침부터 휠체어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력으로 걷는 연습을 한다.

▲나이가 들어가니 주변에 아픈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간다. 그들이 바라는 삶은 하나같이 '아보하'이다. ⓒ mugeinsky on Unsplash
엄마를 모시고 다니기 전에는 주로 나이가 드신 분들이 걷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뇌경색이나 뇌출혈로 인해 수술을 받고 재활 치료하는 40,50대가 많았다.
얘기를 들어보면 저마다 사연도 다양하다. 교통사고로 뇌수술 후, 뇌에 이상이 생겨 걷지 못하는 40대 초반의 남자는 병원에 입원한 지 벌써 6년이 되었는데 언제 퇴원해 스스로 걸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잘나가는 회사원이었다가 갑자기 뇌경색이 와 몸이 부자연스러워진 남자는 스스로 걷지 못하고 휠체어에 앉아 허공만 바라보고 있다. 초점이 흐려진 그의 눈을 보고 있노라면 발병 이전의 평범한 하루를 그리워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가니 주변에 아픈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간다. 무릎 연골이 마모해 걷는 게 부자연스러워진 친구가 있는가 하면 중한 병이 발견되어 병원 예약과 검사, 치료, 통원을 반복하는 지인도 있다. 그들이 바라는 삶은 하나같이 '아보하'이다. 아주 보통의 하루만큼 귀하고 소중한 시간이 없다는 말에 모두 동의한다. 그리고 자신이 보낸 그 수많은 '아보하'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던가를 새삼 깨닫는다고 한다.
나 역시 퇴직하던 해에 건강검진을 했는데 생각지도 않은 결과가 나왔다. 그 후로 치료와 관리를 위해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평범했던 일상이 병원 진료와 맞물리게 되니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했다. 내가 원했던 일정이 미뤄지기도 하고 취소되기도 했다.
말하자면 나의 삶이 병원을 중심으로 회전하기 시작했고 병원에 매여 살아가야 하는 삶이 이런 거구나, 하는 자각이 싹틈과 동시에 그동안 내가 무탈하게 살아온 삶이 '아보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삶이 소중하고 행복했다는 것을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건강을 잃고 그것을 되찾기 위해 애쓰는 시간과 노력이 커질수록 아주 보통의 하루는 멀어졌지만, 상대적으로 그립고 소중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고 밤에 잠들던 그 수많은 날이 때로는 너무나 평범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지리멸렬한 하루였음에도 너무나 소중하고 반짝이는 날들이었음을 깨닫는다.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아도 그냥 존재했던 일상의 하루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다는 깨달음.
과거에 내가 보낸 일상의 시간이 소중했고 어쩌면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될 때 '아보하'를 떠올리게 된다. 그렇게 보면 이 단어는 그동안 내가 무수히 흘려보냈던 일상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강조하고 있는데 왜 하필 2025년에 새롭게 부각되는 것일까.
'더 나은 삶'의 실체 없음을 깨달았을 때

▲In Neon Lights ⓒ arihe on Unsplash
수년간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한 것은 경쟁에서 남보다 빨리 치고 나가 자리를 선점하거나 가치가 높은 물건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강조하거나 출발선에서 어쨌든 타인을 제치고 자신의 입지를 세우는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몸과 마음을 갈아 넣어야 했고 시간과 노력을 어딘가에 쏟아부어야 했다.
그런 시간이 지속될수록 사람들은 지쳐갈 수밖에 없다. 양극화는 지난 세기보다 더 심해졌고 앞으로도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더 나은 삶을 향해 전력 질주한 인생들은 순간 방향성을 잃게 되고 자신이 추구했던 '더 나은 삶'의 실체에 대해 고민하게 될 수도 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달려온 것인가. 앞으로도 계속 달리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인가.
사실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조금 더 나은 그 무엇을 위해 현재를 억제하거나 희생하는 것에 익숙하다. 앞으로의 삶이 과거와는 분명히 다를 것이라고, 좀 더 반짝이며 빛이 날 거라는 기대에 오늘을 내일과 맞바꾸며 살아왔다. 그런데 그렇게 맞이한 내일이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더 힘든 과제가 부여된 시간의 연속이라고 보일 때 흘려보낸 시간의 소중함과 아쉬움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더 나아질 내일이 별로 기대되지 않는 2025년. 극심한 기후 위기가 닥치고 경제적 위기를 진단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희망에 대한 언급이 적은 시간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거창한 미래는 의미가 적다.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 평범하며 아무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 보통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역으로 깨달을 뿐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지금 현재가 가장 소중하며 그 시간을 무탈하게 잘 보내는 것이 인생을 의미 있게 보내는 것임을 깨닫는 것. 그것이 방황을 마친 사람이 알게 된 '아보하'의 의미가 아닐까. 그렇게 보면 아주 보통의 하루는 그냥 하루가 아닌 삶이 나에게 주는 기적인 셈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블로그에 올린 글을 수정한 글이며, 페이스북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