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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생활화학제품 안전약속 이행협의체'를 출범하기 전인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자발적 협약'의 운영 기관으로 7년간 역할했다.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생활화학제품 안전약속 이행협의체'를 출범하기 전인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자발적 협약'의 운영 기관으로 7년간 역할했다. ⓒ 생활화학제품안전약속이행협의체

정부, 시민단체, 기업이 함께 만든 '생활화학제품 안전약속 이행협의체'가 오는 12월 2일 출범한다. 2017년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자발적 협약' 이후 7년 만이다. 안전한 생활화학제품을 만드는 약속을 하는 데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걸까. 입법을 통해 전성분 공개를 강제하는 등 보다 빠른 방법은 없었을까.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은 20년 넘게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화학물질 연구자인 동시에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목표로 한 활동가이기도 하다. 김 부소장은 2017년 국회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특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지난 7년간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자발적 협약'의 운영 기관으로서, 그는 연구소 부소장으로서 정부, 시민단체, 기업 세 주체의 협업을 이끌었다. 이행협의체의 발족을 앞두고 김 부소장을 지난 10월 31일 서울역 인근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관련 기사 : '화우품' 아시나요, 가습기살균제 참사 후 정부·기업·시민단체가 한 일)

"2년간 얼굴 붉혀.... 7년간 전성분 공개 등 합의 도출"

- 이행협의체에 앞서 자발적 협약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2012년 무렵 화평법(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을 만들고자 시민 대표로 참여했는데, 참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만났다. 생활화학제품 물질을 등록하자고 했더니 기업들이 '우리는 그냥 수입할 때 주는대로 쓴다. 수입 업체에서 물질을 알려주기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써야 한다'는 말을 당당하게 했다. 제품에 들어가는 성분을 다 모르고 제품을 만들었던 거다.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 이해가 됐다. 이후 환경부에서 전성분 공개를 목표로 '자발적 협약'을 만들려고 해 그때부터 함께 하게 됐다."

- 정부, 시민단체, 기업을 한자리에 모으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처음에는 서로 안 만나려고 했다. 시민단체에서는 기업을 어떻게든 혼내고 싶어 하니, 설득을 계속 해야 됐다. 시민단체도 정말 전성분을 공개할 수 있으면 좋은 것이니 일종의 거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전성분 공개는 해보겠다고 하면서도 함량을 공개하면 레시피가 공개되는 셈이니 그것은 숨기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좋아, 그러면 (함량 공개 대신) 제품의 유해성을 분류해서 소비자들에게 알려주는 걸로 해', 이런 식으로 타협이 됐다. 처음 2년간은 서로 얼굴도 붉혔다."

- 이후에 물꼬가 트였나.

"기업이 '못하겠다'고 하지 않고. '이거 얼마나 힘든지 아시잖아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원료 공급자가 잘 협조하지 않아요'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때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발생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전까지 기업들은 '제품에 유독 물질만 없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국회 가습기살균제 특위에서 기업 대표들에게 제품의 안전성을 확인한 자료를 달라고 했더니 '오랫동안 팔았으나 문제가 없었다'고 대답했다. 기업 대표들조차 그렇게밖에 이야기하지 못했다. 자발적 협약을 통해 유독물질만 제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끼리 원료를 평가하자고 했다."

- 이행협의체가 만들어지기까지 7년이나 걸렸다. 입법을 통해 빨리 해결할 수는 없었을까?

"입법을 하려면 업계 전체가 따라올 수준을 고려해야 하는데, 전성분 공개와 불순물 파악까지 할 수 있는 기업이 많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생활화학제품 전성분 공개를 법제화할 때가 되지 않았냐'라고 물으면 '아니'라고 한다. 작은 기업들을 고려하면 결국 전성분이 아닌 주요 성분을 공개하는 식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그건 후퇴다.

정말 중요한 건 기업이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마음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그건 기업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다. 7년간의 자발적 협약을 통해 전성분을 공개하고 원료 안전성 평가를 하면서 공공의 안전 관리 도구를 만들어내 기업도 받아들일 수 있는 기준을 만들려 했다. 나는 법보다는 집단적인 공감의 형성이 갖는 힘을 믿는다. 물론 그중에는 진심이 아니고 흉내 정도만 내야겠다는 기업도 있을 거다. 그러면 어떤가. 흉내를 내서라도 하면 되는 거지."

"안전이 우선 가치 돼야... 여전히 참사 일어날 수 있는 구조"

지난 10월 22일 '생활화학제품 안전약속 이행협의체 만남의 날'에사 참여자를 격려하는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
지난10월 22일 '생활화학제품 안전약속 이행협의체 만남의 날'에사 참여자를 격려하는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 ⓒ 생활화학제품안전약속이행협의체

- 기업이 자발적 협약에 참여하는 것에 자부심을 갖더라.

"나를 믿어주지 않고 혼내려는 누군가가 있으면 방어적인 태도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끼리는 믿어주고 조금 더 잘해보자는 식으로 이야기를 계속 했더니 너무 낭만적이라고 욕을 먹었다. 그런데 내가 볼 때 기존의 방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서로의 관계를 다르게 만드는 것이었다.

기업은 소비자의 안전보다는 이윤이 남아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건 존중하면서도, 그 다음에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라는 식의 대화가 필요하다. 이제 와서는 이것이 민주주의였다는 생각을 한다. 한국 사람 개개인의 능력은 너무 탁월한데 정치는 왜 이 수준일까 생각해보면, 의논을 통해 무언가를 결정하고 그걸 존중하는 경험의 축적 과정이 너무 없었던 것이다.

당사자들이 모여 화학 안전이 무엇인지 토론하고, 목표를 정해 실행하고 실패하며, 그 경험을 축적해 다시 목표를 정하고 도전하는, 그런 민주적 경험이 필요했다. 이제 자발적 협약에서 이행협의체로 전환을 앞두고 있다. 처음 기업들에게 '전성분 공개하면 내가 업고 다니겠다'고 했는데, 지금 이행협의체에 68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 오는 12월 이행협의체가 공식적으로 발족하면 무엇이 달라지나?

"이행협의체에 들어오지 않은 기업은 '안전을 위해 기본적 노력을 하지 않은 기업'이란 수준까지 도달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생활화학제품으로 사고가 나는 일이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전성분이나 원료 등급을 보면서 생활화학제품 관리가 기본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내용이 소비자들에게 쉽게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노력한 기업을 소비자들이 잘 알고, 자신의 선호 브랜드를 만들어야 정말 시장의 안전이 만들어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결국 사회의 우선 가치에 안전을 두게 만드는 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 이행협의체가 성공적으로 안착하면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나.

"아직은 (아니다). 아이들 책가방이 비닐(PVC)로 코팅이 돼 있는데 '비가 올 때 책이 젖으면 안 된다는 선한 의지'뿐만 아니라, '유해 물질로 코팅을 하는 게 맞느냐'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이런저런 편리한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위험한 것이 막 만들어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 매년 환경부가 위험한 제품을 어마어마하게 찾아내고 소송도 당하면서도 시장에서 그 제품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매년 이런 일은 반복되고 있다. 한 발만 삐끗해도 참사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구조 속에 산다는 두려움이 있어야 한다."

*이행협의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생활화학제품 안전약속 이행협의체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thesafelife.org/

#생활화학제품#이행협의체#노동환경건강연구소#김신범부소장#가습기살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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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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