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저녁을 먹으며 무언가를 재미있게 보고 있어 무얼 그리 재미있게 보느냐고 물었다.
"응, 부부가 일상을 녹음한 거."
아들이 자신이 보던 영상을 보여주는데 화면에 부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리만 들린다. '결혼 7년 차 남편의 반응 속도'라는 제목의 영상은 앞에 가는 차가 느린지 앞 차를 보며 "뭘 하는 걸까?"라는 아내의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러다 갑자기 아내가 노래를 부르고 그에 맞춰 남편도 추임새를 넣으며 영상이 마무리 된다. 두 사람의 호흡이 어찌나 찰떡같은지 하마터면 보는 나도 따라 부를 뻔했다.
몇몇 영상을 더 보고 내가 말했다.
"남자는 엄청 다정하고 여자는 엄청 유쾌하네."
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람들이 이거 보고 결혼 장려 영상이라 그래."
그럴 만하다 싶었다. 부부의 대화가 꾸밈없고 익살스러운 데다 다정하고 유쾌해서 누군들 결혼하고 싶지 않을까 싶었다. 단순한 선으로만 그린 두 부부의 캐릭터도 듣는 맛을 배가시켰다. 실제 부부의 모습이 영상에 비쳤다면 소리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았다.
대화와 상황에 적절하게 녹아든 그림은 남편의 솜씨였다. 남편은 디자인을, 아내는 경영학을 전공했다는데 공통점은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영상에서 음악 이야기와 노래가 빠지지 않았다. 아내는 심지어 불편한 얘기도 노래로 했다. 7년 차 부부에게 음악은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들의 영상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데 벌써 구독자가 125만 명에 달했다. 영상이 급성장하다 보니 방송에도 소개되었다. 방송이 주목한 것은 결혼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였다. 댓글에 결혼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댓글을 살피다 보니 "결혼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사람과 하느냐가 중요한 거"라거나 "두 분을 보면 없던 결혼에 감정이 생"긴다거나 "사람들은 결혼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불행한 결혼을 할까 봐 불안해서" 안 한다는 류의 댓글에 많은 공감이 달렸다.
결혼 30년 차인 내게도 영향을 미친 이 영상
그런데 나는 다른 댓글에 눈길이 갔다. '오징어땅콩 먹을 때 이거 해본 사람' 영상에 달린 댓글이었다.
"저는 사실 이 짧은 영상보고 울었어요....ㅠㅠㅠ 너무너무 재밌고 저까지 행복해졌는데, 갑자기 한 번도 사이가 좋았던 적 없는 저희 부모님 생각이 나서요. 존중과 애정이 전혀 없고 항상 비난과 무시만 가득했던 두 분의 삶에서 아주 잠깐이라도 이렇게 오징어땅콩 하나로도 긴 대화와 웃음이 이어지는 순간이 있었을까 생각하다 눈물이 펑 터지더라고요. (갱년기 증상인 건지...ㅎㅎ) ...."
댓글을 접하고 문득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어떤 부부로 비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막내가 '진지충'을 언급한 적이 있으니 우리 부부는 '유쾌'와는 거리가 먼 진지하기만 한 부부로 비쳤을 테지 싶었다. 그 생각을 하자 아이들에게 미안해졌다.
부모가 된 이후 나는 '부부'보다는 '부모'에 집중하며 살았다. 억압적이지 않고 헌신적이며 본받을 만한 '부모'이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이들의 영상을 보다 보니 아이들에게 보이고자 노력해야 했던 것은 그런 '부모' 모습이 아니라 다정하고 유쾌한 '부부' 모습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가 서로에게 다정하고 유쾌하다면 '부모'라는 자리에도 자연스럽게 '다정'과 '유쾌'가 스며들었을 테니 말이다. '인생 녹음 중'을 보고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인생 첫 인터뷰에 고장 난 남편'에는 다음과 같은 댓글이 달렸다.
"결혼한 지 20년된 무뚝한 경상도 남편이 이 채널구독 후 바뀌었어요. 반성하고 있다며 노력하네요. 아이들도 아빠가 바뀐 거 같다고^^. 감사하게 생각해요."
일명 '결혼 장려 영상'으로 불린다는 '인생 녹음 중'. 이들의 영상은 미혼뿐만 아니라 결혼 30년 차인 내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부모' 자리보다 '부부' 자리를 돌아보게 했으니 말이다. 이제부터 다정하고 유쾌한 '부부'가 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