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해 말 기준 약 52만 명이 등록되지 않은 대부업체, 사채 등 불법 사금융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 시내에 부착된 카드 대출 관련 광고물. 2024.5.29
지난해 말 기준 약 52만 명이 등록되지 않은 대부업체, 사채 등 불법 사금융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 시내에 부착된 카드 대출 관련 광고물. 2024.5.29 ⓒ 연합뉴스

최근 한 비극적인 소식이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유치원생 딸을 홀로 키우던 한 엄마가 사채업자의 끔찍한 추심 행위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처음 빌린 돈은 고작 수십만 원이었지만, 연이율 수천%의 고리대로 인해 한 달 만에 천만 원이 넘는 빚이 되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사채업자들의 비인간적인 추심 방식이었다. 그들은 피해자의 딸이 다니는 유치원 교사를 포함해 지인 100여 명에게까지 연락을 취하며 압박을 가했다. 결국 어머니는 딸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이 가득 담긴 유서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사채업자들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잘 죽었다", "식구들도 보내주겠다"며 유족들까지 위협했다.

불법 사채의 근본 원인, 허술한 대부업 등록 기준

AD
불법 사채가 이토록 활개를 칠 수 있는 바탕에는 허술한 대부업 등록 기준이 있다. 현재 단 1천만 원만 있으면 누구나 대부업을 등록할 수 있다. 이런 낮은 진입 장벽 때문에 등록 대부업체가 넘쳐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너무 많은 업체를 정부가 관리할 수 없다 보니, 합법의 탈을 쓴 불법 영업이 횡행하고 있다. 심지어 불법 업체에 등록증을 팔거나 빌려주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비슷한 문제를 겪던 일본은 대부업 등록 기준을 대폭 강화하여 대부업체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불법 사채 시장도 자연스럽게 축소되었다. 현재 정부는 등록 기준을 1억 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최소 3억 원 수준으로 기준을 높여야 실질적인 관리가 가능하고 위와 같은 불법 사채로 인한 피해도 막을 수 있다.

사채업자에게 '원리금 무효화'로 강력 대응?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실효성 있는 규제이다. 위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채업자들이 피해자들을 괴롭히는 방법은 살인적인 고리대와 악질적인 불법 추심이다. 따라서 정부의 규제도 이 두 가지를 겨냥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재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어떠한가?

정부가 사채업자들의 반사회적 행위에 '원리금 무효화'로 강력 대응하겠다며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을 통해 대부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취지는 좋다. 하지만 정부안의 허점은 다음 상황을 가정한다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돈 빌려드립니다. 그런데 미리 말씀드릴게요. 못 갚으시면 지인들에게 연락하고, 욕설 문자도 보내고, 심지어 부적절한 사진도 요구할 수 있어요.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답니다! 이 모든 내용은 계약서에 써드릴게요.'

어느 사채업자가 불법 행위를 계약서에 명시할까

개정안(제8조의2 제1항)을 보면, 마치 이런 '친절한' 사채업자가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듯하다. 법안은 대부계약 체결 과정에서 불법 추심 행위가 전제된 경우에만 규제하려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어떤 사채업자가 자신의 불법 행위를 미리 계약서에 명시하겠는가?

이대로는 그야말로 허상의 사채업자들을 강력 대응하는 꼴이다. 반사회성을 대부계약에 한정하고 싶다면 독일의 사례처럼 고리대 자체를 반사회적 행위로 규정하면 될 일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대상을 강력 대응해서 뭐 하겠는가? '이토록 친절한 사채업자'를 가정한 법안으로는 실제 피해자들을 보호할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에 기반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치라 변호사는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 법제전문위원으로 불법 사채시장의 난제들에 대한 법제도 개선작업을 하고 있다. 대부업 등록기준을 순자산액 3억 원 이상으로 하는 대부업 개정안(민주당 한정애 의원 대표발의)의 작성자이며, 최근 국회에 발의된 '대포차 예방법안'(특정동산저당법 개정안), '맘대로 공증 제한법안'(공증인법 개정안)의 작성자이기도 하다.


#대부업법개정안#강민국#김치라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김치라 (news) 내방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3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