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인생이란 말이 흔히 쓰이는 요즘, 60대 은퇴 뒤에도 약 40년을 더 살게 됩니다. 이 시기를 잘 보내려면 경제적.비경제적으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6070 시니어 기자들이 이 시기를 준비하고 맞이한 이야기, 일본과 호주 등 노인연금의 해외사례를 알아봅니다.[기자말] |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햇병아리 시절에 철도를 직장으로 8년 간 재직하였다. 철도는 역과 역 사이의 선로에 기관차가 객차와 화차를 끌고 운행하는 교통수단이다. 기관차에 연결된 객차는 여객을 수송하고, 화차는 화물 등 물류를 운송한다.
어린 시절, 철도와 인연을 맺으며 역마 같이 다가온 여행은 어쩌면 운명이었다. 열차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하면서 독서할 때가 많았다. 책 속의 어떤 내용은 눈을 감고, 열차 바퀴가 선로 레일의 연결부를 넘어가며 내는 '따그닥 따그닥' 소리를 들으며 인상적인 표현과 의미를 수없이 음미하였다.
야간 완행 열차의 객차 창문으로 멀리 보이는 마을의 불빛은 전설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진달래 피는 계절 깊은 밤에 소쩍새 우는 고향 마을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었다.
나는 점차 국어 교사를 꿈꾸기 시작하였다. 28살 나이에 첫 직장을 그만두고,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였다.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는 길'의 숲 속으로 난 새로운 길을 찾아서 국어 교사의 길을 걸었다. 한때는 노조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30여 년을 중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정년퇴직했다.
나는 퇴직했어도 현역처럼 활동하고 싶었다. 은퇴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바로 문화관광해설사를 자원하여 현재까지 7년 동안 활동하고 있다. 매달 월급처럼 지급되는 공무원 연금은 내게 튼실하고 고마운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
퇴직 3년 전부터 자격증 준비
정년퇴직을 앞두고 3년 전부터는 방학을 활용해 독서논술지도사, 체스지도사, 한국사능력시험과 치매예방지도사를 알아보고 준비했다. 가능하면 시험을 봐 자격증도 취득하려 노력했다. 퇴직 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어느 숲 속의 길에 대해 충실해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교사 정년퇴직 뒤 바로 시작한 문화관광해설사. 나는 해설사로서 한 달에 15일 정도 활동한다. 시간을 내어 지역 도서관의 독서문화프로그램에도 참여하였다. 초등학생들에게 바둑과 체스 강습 지도를 한두 해 하였고, 성인 대상 독서 강좌도 강사로 참여했었다.
대학의 평생교육원 치매예방지도사 6개월 과정을 이수하고, 시골 마을의 경로당에서 치매예방 강사로 몇 개월 활동한 적이 있다. 퇴직하고 2년이 지난 2020년 2월에 임실 오수의 인화초중고등학교에서 국어 강사 모집 공고가 났다.
평생교육시설 학력인정학교인 인화초중고등학교는 내가 교직에서 퇴직한 임실 삼계중학교의 출퇴근 길목에 있었다. 6년 동안 중학교에 출퇴근하며, 퇴직 후에 가능하면 이 인화학교(어르신 학력인정)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희망을 키웠었다.
이 학교는 평균 연령이 72세인 만학도 요람이다. 이 인화학교에 국어 강사로 일주일에 3일을 오전 수업하여, 문화관광해설사 활동과 병행할 수 있었다(관련 기사: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https://omn.kr/2b0fz ).
구리에 주석을 합금한 청동은 인류의 역사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인생에서도 구리(청년 시대의 경험)에 주석(장년 시대의 경험)을 합성하면 청동(노년 시대의 활동 영역)으로 한 단계 도약하는 기회가 될 것 같다. 나는 구리(철도 회사 재직으로 여행 친화적)에 주석(국어 교사로서의 표현 능력)을 합성하여 청동(문화관광해설사) 단계에 이른 사례가 된다고 생각한다.
자신감과 자긍심을 주는 시민기자 활동
2021년 1월에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처음 보냈다.
'우리 마을 작은 고갯길이 품고 있는 이야기, 들어보실래요?'(기사보기)가 첫 기사 제목이었다.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던, 동네 작은 고개를 소재로 퇴적암 바위와 전해오는 설화를 이야기하였다.
처음으로 기사가 채택되었을 때 벅찬 감동이었다. 이 기사 이후 4년 동안 여행 주제를 중심으로 200회에 이르는 기사를 써 왔다. 오마이뉴스에 송고한 여행 기사가 채택될 때마다, 문화관광해설사로서 여행지의 해설을 공개적으로 완성한 듯 기뻐서 읽고 또 읽었다.
"문화관광해설사입니다. 향토의 역사 문화 자연에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여행의 풍경에 이야기를 그려봅니다"라는 내 소개는, 문화관광해설사이며 시민기자인 내가 추구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기사를 쓴 지 3년 반 만에 시민기자 명함을 신청하고 발급받았다. 시민기자 명함에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기자는 정정당당하게 취재하고 공정하게 보도합니다'는 내용이 선명히 써 있다. 이 보도 원칙은 내게 자신감과 자긍심마저 준다.
지난 9월엔 남원 만인의총 역사문화관이 문을 열었다. 나는 10월 중순에 이곳 전시물의 문제점을 발견하여 지적하는 기사를 기자임을 당당하게 밝히고 취재하였다. 또 이 시기 남원성 북문터 문화재 발굴지 현장의 잘못된 행정 처리도 취재해 기사로 쓰기도 했다. 시민기자 명함은 나에게 또 하나의 떳떳한 이름표가 되었다.
꿈을 꾸며 계속 달리련다
나는 1950년대 중반의 베이비붐 세대로, 1970년대 산업화의 역군이었다고 불린다. 가난한 집안 환경으로 국립 철도고등학교(서울 용산구)에 진학했었다. 나의 고향이 전북 남원이기에, 전국에서 모인 고등학교 친구들은 남자인 나를 '춘향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첫 직장의 11년 동안, 나는 철도의 기관차를 어느덧 닮아 버린 듯했다. 어린 시절 꿈꾸었던 숲 속 길을 가지 못했기에, 어쩌면 지금도 끝없이 꿈꾸며 달리는지도 모르겠다.
기관차는 많은 객차와 화차를 연결하고 정해진 궤도를 달린다. 한 역을 지나면 다음 역만이 기관차의 꿈이며 목표이다. 나는 철도 기관차처럼 현재 인생의 선로 위에서 충실히 달리고만 싶다.
실버 세대는 청년 시대와 장년 시대를 살아오며 자신만의 인생 경험과 배경지식을 쌓아왔다. 퇴직과 은퇴 이후에 젊은 시절의 인생 경험과 배경 지식을 융합 활용하여 자신만의 활동 영역을 개척할 수 있겠다.
직업은 생계유지를 목적으로 적성과 능력에 맞는 일을 계속하는 어떤 활동이라고 한다. 실버 세대가 연금이라는 경제적 토대가 있다면, 자기 적성과 능력에 맞는 일을 찾아서 지속하는 활동은 직업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할 때 즐거운 일, 평생 해도 재미있을 것 같은 활동을 찾아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