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로 불립니다. 1987년 헌법개정을 통해 법률이나 국가 공권력의 작용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판단하는, 국민 기본권 보호의 역할을 부여받았기 때문입니다. 지난 6년간 유남석·이종석 소장을 거치며 헌법재판소는 다양한 결정을 내려왔습니다. 과연 시민들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한 결정이었을까요? 2024년 10월, 헌법재판소에서는 소장을 포함한 3명의 재판관이 교체됩니다. 이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헌법재판소의 주요 결정을 선정해 〈2019~2024 헌법재판소 특집 판결비평〉을 진행합니다. 변화의 시기, 과거 결정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헌법재판소에 요구되는 사회적 기대를 담아봅니다.[기자말] |
다섯 번째 특집 판결비평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구호조치 부작위 헌법소원 각하 결정"에 대해 다룹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신속한 구호조치를 취하지 않은 국가로 인해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기본권은 심각하게 침해당했습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침해 여부에 대한 판단도 없이 이들의 헌법소원을 '각하'했는데요. 반복되는 사회적 참사 앞에 피해자들의 기본권 침해를 외면한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태호 4.16연대 상임집행위원장이 비평했습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이종석(소장), 이은애, 이영진, 김기영, 문형배, 이미선, 김형두, 정정미, 정형식 2024.5.30. 선고 2014헌마1189, 2015헌마9(병합)
세월호 참사 희생자·유가족들의 권리 구제 외면한 헌재
헌법재판소는 지난 5월 30일, 4.16세월호참사 당시 국가가 신속한 구호조치 등을 취하지 않은 것에 대한 위헌을 확인받고자 했던, 참사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헌법소원심판청구(2014헌마1189, 2015헌마9 병합)에 대해 '각하'를 결정했다.
최초 신고자였지만 희생된 단원고 학생 고 최00, 광화문에서 세월호참사의 독립적인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46일간의 생사를 건 단식투쟁을 벌였던 유가족 김00 등이 청구인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헌재는 이 청구가 심판의 대상 자체가 안 된다고 결정하였다. 4인의 재판관 – 김기영, 문형배, 이미선, 정정미 4인은 각하결정에 반대하는 의견을 냈지만 헌법재판관 9인 중 2/3의 동의를 이끌어내지 못하였다. 각하의 입장을 낸 재판관은 이종석, 이은애, 이영진, 김형두, 정형식 등 5인이다.
청구인들은 "대한민국 정부가 취한 일련의 구호조치가 유효 적절하지 않아 헌법 제10조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그로부터 도출되는 생명권, 헌법 제10조 제2문*과 헌법 제34조 제6항**의 기본권보호의무와 그로부터 도출되는 보호청구권,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했다.
* 헌법 제10조 제2문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 헌법 제34조 제6항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이에 대해 헌재는 우선, 희생자들은 소송의 당사자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헌법소원심판은 청구인의 침해된 기본권의 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제도이므로 이 제도의 목적상 침해된 권리의 보호이익이 없는 경우에는 그 헌법소원은 원칙적으로 부적법하다"고 본 것이다. 이 대목에서는 헌법재판관 모두의 의견이 일치했다. 한편, 각하에 찬성한 5인은 기본적으로 유가족들에게도 심판청구이익이 없다고 보았다. "세월호 사고는 2014. 4. 16. 발생하였고 구호조치는 이 사건 심판청구가 제기되기 전에 종료되어 … 권리보호이익이 없다"고 본 것이다.
반복될 위험·헌법적 해명의 필요성, 세월호 참사에 해당 없다?
다만, 헌재는 "헌법소원은 객관적인 헌법질서보장의 기능도 겸하고 있으므로, 같은 유형의 침해행위가 앞으로도 반복될 위험이 있고 헌법질서의 수호 유지를 위하여 그에 대한 헌법적 해명이 긴요한 사항에 대하여는 (설사 청구인의 주관적 권리구제에는 도움이 되지 아니한다 하더라도) 예외적으로 심판청구이익이 인정된다"는 과거 헌재의 판례(헌재 2008. 5. 29. 2007헌마712 등)가 이 사건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를 검토한다.
그런데 헌법 재판관 다수는 이 경우에도 헌재가 나설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국가가 적절한 구호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계속적으로 이루어져 구체적으로 반복될 위험성이 인정"되어야 하는데 세월호 참사의 경우는 "개별적·예외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헌재는 "세월호 사고 이후 입법자는 관련 법제의 정비를 통하여 세월호 사고와 같은 대형해난사고의 발생을 예방하는 한편, 사고 발생 시 국가가 적절한 구호조치를 시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했기에 "문제되는 공권력 행사의 반복에 관하여 추상적이거나 이론적인 가능성을 넘는 구체적 위험이 존재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그 이유를 달았다.
헌재는 또 "공권력 행사에 대하여 위헌성이 아니라 단지 위법성이 문제되는 경우에는 설사 유사한 침해행위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헌법적 해명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세월호 참사에서 국가의 부재를 '위법성만이 문제되는 경우'로 해석했다.
"세월호 사고와 같은 대형 해난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 신체의 안전을 보호하고 침해의 위험을 방지할 국가의 포괄적 의무가 있음은 종래 헌법재판소가 이미 해명"했다고 확인하면서도, "다만 구체적 구호조치의 내용은 사고의 경과와 관련 법령의 해석, 적용과 포섭의 문제로서 일반적으로 헌법적 해명에 관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관해서는 "법원을 통하여 구체적 위법성이 판단되어 형사적 민사적 책임이 인정되었으므로 (예외적인) 헌법적 해명의 필요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각하에 반대한 4인의 재판관
반면, 반대의견을 낸 4인의 재판관은 각하결정에 반대하여 세월호 참사의 "구호조치에 대한 유가족인 청구인들의 심판청구는 적법하고 이 사건 구호조치가 '과소보호금지원칙'에 반하여 유가족인 청구인들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들 4인의 재판관은 우선 이 사건에 대한 "본안판단이 헌법질서의 수호 유지를 위하여 긴요한 사항이어서 그 해명이 헌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경우나 그러한 침해사유가 앞으로도 반복될 위험이 있는 경우 등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4인은 헌재가 '각하' 결정으로 심판을 포기한 본안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① 진도VTS의 사고발생 사실에 대한 인지 지연, 목포해양경찰서의 사고신고 접수업무 미흡, 관련기관 사이의 교신 내용 전파 미이행 등 세월호 사고 발생 후 초기상황에 대한 정보파악 및 취득에 관한 문제,
② 123정 및 항공구조대의 적극적 구조조치 미이행 등 현장구조세력의 구조방식에 관한 문제,
③ 목포해양경찰서장 및 해양경찰 지휘부의 판단 오류와 적절하고 효율적인 지휘 미이행 등 해양경찰 지휘부의 판단 및 지휘에 관한 문제,
④ 대통령의 지위 권한 및 청와대의 총괄적 조정적 역할에 비추어 본 대통령과 청와대의 대응에 관한 문제가 복합적 원인으로 작용함에 따라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에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조치가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헌재의 판단처럼 우리 사회는 달라졌을까?
이번 헌재의 결정문을 읽으면서, 몇 가지 의문이 생겼다.
우선, 과연 세월호 참사와 같은, 재해에 준하는 사회적 참사는 반복되지 않고 있는가. 10년 가까운 시간을 소요한 끝에 헌재가 참사 피해자들의 청구에 '각하' 결정을 내리는 동안, 국가의 '최소한의 보호조치구조'가 취해지지 않은 결과로 여러 참사가 발생했다. 최초의 신고가 접수된 지 3시간 이상이 지난 후에도 159명의 시민이 정부의 구조를 받지 못하고 희생되었던 2022년의 10.29 이태원 참사가 그 대표적 사례다.
이태원 참사 이후 오송지하차도 참사까지 겪은 후에도 헌재는 "문제되는 공권력 행사의 반복에 관하여 … 구체적 위험이 존재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청구인들에게 본안에 관해 다투어볼 기회까지 박탈한 것이 납득하기 힘들다. 세월호 참사를 특정 '해난사고'로 과도하게 좁혀서 똑같은 사고가 재연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본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둘째, 과연 사고 발생 시 국가가 적절한 구호조치를 시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완되었는가. 헌재 다수는 입법자가 '법제를 정비'하여 '세월호 사고와 같은 대형해난사고의 발생을 예방'하는 한편, 사고 발생 시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했다는 이유를 들어 각하를 결정했다. 하지만 정비되지 않은 법제, 작동하지 않는 개선조치를 열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직 국회는 "안전할 권리를 법제화"하라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권고를 이행하지 않았다. 세월호참사에서 작동하지 않았던 통합통신망은 참사 이후에 '개선'되었으나 정작 이태원 참사에서 작동하지 않았다.
셋째, 법원을 통하여 구체적 위법성이 판단되어 형사적 민사적 책임이 인정되었으므로 헌법적 해명의 필요성은 과연 없는 것인가. 각하결정에 반대한 4인은 "이미 법원에서 세월호 사고에 관한 형사판결과 민사판결이 확정되었으나, 이는 세월호 사고 관련자 개개인에 대한 형사법상 범죄 성립 여부 및 대한민국의 국가배상 책임 인정 여부에 관한 것으로서 피청구인의 헌법상 기본권 보호의무 위반 여부가 문제되는 이 사건 심판청구와는 서로 다른 헌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면서 "구체적인 위기상황에 대응할 책임이 있는 피청구인의 조치 미숙 여부를 종합적으로 확인하고 그 책임을 헌법적으로 규명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국민 기본권 침해여부를 따져보는 작업의 의미는 세월호 침몰사건 구조 관련 해경지휘부의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을 떠올릴 때 더 절실해진다. 지난해 11월 2일 대법원은 해경지휘부의 무죄를 확정하면서, 당시 세월호의 구체적 상황을 알기 어려웠고, 현장에서 제한적으로 보고되는 정보를 믿을 수밖에 없었으며, 현장에 출동한 구조 세력에게 구체적인 지휘를 하기 어려웠다는 해경지휘부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현장구조 책임자였던 123정장 김경일의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에 관한 재판 과정에서 광주고등법원 제6형사부(2015노 1776)는 승객 구조 소홀에 대해서는 현장 구조책임자인 123정장 외에 해경지휘부 등에도 공동책임이 있다며 김경일의 형량을 4년에서 3년으로 1년 감경했고, 대법원도 그대로 확정했었다.
해경지휘부가 무죄라면, 304명 희생에 대한 '공동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어떻게 물어야 하는가. 대한민국 정부 각급 단위 구조세력의 총체적 잘못들이 "총체적으로 결합하여 희생자들에 대한 생명권 보호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대한민국 정부의 책임을 구성"함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이 같은 '공동책임'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일은 사법적으로도 헌법적으로도 실종되고 말았다.
4명의 재판관들이 수많은 국민의 생명권이 침해될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가 제대로 이행되었는지 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확립된 결정은 현재까지 없었고, 그 해명이 "동종의 기본권 침해 사유가 앞으로도 반복될 위험이 있고 헌법질서의 수호 유지를 위하여 긴요한 사항"이라고 주장했지만 헌법재판소는 최종적으로 각하결정을 내림으로써 구체적인 판단을 회피했다.
구체적 판단 회피한 헌재
반면, 국민들에게 이미 세월호 참사는 국가가 국민을 구하지 않은 사건, 나아가 그 진실을 숨기기 위해 참사의 피해자들을 사찰하고 핍박하고 혐오의 대상으로 내몬 사건이었음이 너무도 분명했다.
2016년-17년 촛불광장의 키워드는 '박 대통령', '촛불', '세월호'였다(중앙일보, 12.12.). 2016년 사회관계서비스망(SNS) 등 온라인에서 회자된 키워드 역시 '박근혜', '최순실', '세월호' 순이었고, '세월호'는 2015년 조사에서도 1위에 올랐다(연합뉴스, 12.19). 이 문제에 대한 '인민의 심의'는 이미 끝난 셈이다. 그 헌법적 함의는 국가가 국민보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고 희생자와 피해자의 권리가 침해되는 일이 다시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독립적으로 조사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사참위가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첫 번째 권고로 "세월호 참사로 인한 희생과 그 이후 국가에 의한 가해에 대해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하라'는 권고를 재발방지를 위한 첫 번째 대책으로 권고한 이유다.
하지만 사법부와 헌법재판소의 법해석과 헌법해석은 여전히 세월호 참사와 2016년 촛불 이전의 소극적 해석에 머물러 있다. 헌법재판관 다수는 그 후 입법적 행정적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졌고, 설사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그것은 입법부와 행정부의 일이지 헌재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취지로 각하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개선과제는 헌법해석을 독점하면서, 국민의 변화된 헌법적 합의를 무시하고 피해자들에게 가해진 명백한 권리침해에 관해 국가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는 사법부와 소극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헌법재판소의 낡고 소극적인 해석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참여연대 홈페이지와 슬로우뉴스에도 실립니다. 이 글의 필자는 이태호 4.16연대 상임집행위원장 ·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