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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싶어 24년 동안 다니던 직장(기상청)을 그만둔다고 하자 주변에서 극구 말렸다. 글밥 먹는 게 그리 쉽지 않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맨땅에 헤딩하듯 명예퇴직을 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때마침 아버지가 요양병원에 입원하셔서 엄마 혼자 계셨다.

하지만, 3개월도 채 안 되어 후회했다. 어느 드라마에서 말했듯이 직장이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었다. 직장 내 우물 안에서만 통하는 나의 글재주였다. 밖으로 나오자,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밥벌이로 다른 일을 하고 싶어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공직 생활한 나는 응달에서 웃자란 잡초보다 더 연약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때까지 살면서 가장 큰 후회가 밀려왔다.

굶어 죽든 말든, 글 쓰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누군가가 걸어간 길을 따라갈 수 없는 게 창작 글쓰기다. 혼자 하는 글쓰기라 내가 올바로 쓰는지, 아니면 엉뚱한 길로 가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글을 쓰는 내내 나의 의식은 깊은 밤을 때로는 짙은 안개 속을 헤맸다.

 글 쓰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었다.(자료사진)
글 쓰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었다.(자료사진) ⓒ hannaholinger on Unsplash

그렇게 2년 정도 막연한 글쓰기를 하자, 심신이 지쳤다. 글은 취미로 쓰고 밥벌이를 알아봤다. 2년 정도 지내자 지옥 생활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타협할 줄도 알았다. 봄이 오면 새로운 직장으로 떠날 모든 준비를 마치고 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해 봄과 함께 코로나-19도 같이 왔다. 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리는 바람에 나는 고향을 떠나지 못했다. 망망대해를 헤매는 것 같은 글을 계속 썼다. 그러다가 희미한 등대 불빛을 보았다. 희미하지만,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다.

망망대해에서 만난 등대 불빛은 다름 아닌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개최한'2022년 대한민국 콘텐츠대상-스토리부분 공모전'이었다.

총 1676편이나 되는 응모작 중에 내 작품(오이먀콘 프로젝트)이 수상한 거였다. 상금으로 어느 정도의 생활도 가능했다. 그리고, 2년여 간의 퇴고 과정을 거쳐 출판했다.

코로나 '덕분에' 세상 빛 본 작품

 오이먀콘 프로젝트
오이먀콘 프로젝트 ⓒ 허관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수상한 작품은 기후 위기를 다룬 소설이다. 기상청에 20년 넘게 근무하며 고민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그동안 흔히 볼 수 있는 태풍, 집중호우, 가뭄, 폭염 등 기후변화의 평면적 위기보다는, 기후변화라는 과학적 진실이 정치, 경제 등 집단적 이기주의에 어떻게 변질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해서 독자에게 새로운 흥밋거리는 물론, 인류 문명의 근간인 과학이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선과 악, 그리고 불확실성 등 과학의 본질을 나름 전하고자 했다.

"소설은 허구이고, 기후변화는 사실입니다. 본 작품을 쓰는 내내 저를 괴롭혔던 건, 소설적 허구가 제 머릿속에 각인 된 과학적 사실에 묻히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개최한 대한민국 콘텐츠공모대전(스토리 부문)에서 수상하고, 그 걱정이 사라졌습니다.

재미와 더불어 기후변화의 원인, 기후가 변하면 어떻게 되는지, 또 기후변화에 곧 멸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왜 인류는 손 놓고 있는지, 그 이유도 지루하지 않게 행간에 숨겨 놓아, 작품을 끝까지 읽으면 독자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각인 되도록 나름 노력했습니다." (<작품에 실린 '작가의 말' 중에서>)

다음은 심사평 중 일부다.

"전세계적으로 관심사인 지구의 기후위기 문제와 아포칼립스 무드를 융합하는 아이디어의 접근이 좋았습니다. 방대한 스케일과 캐릭터들의 매력이 구체적이며 현실적으로 훌륭하게 풀어져 나갔다고 보여집니다."

퇴직, 내 인생 최고의 결정

코로나-19가 없었다면 태어날 수 없던 작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코로나-19가 고맙다는 생각은 내겐 눈곱만큼도 없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세지고 있는 20일 대구 달서구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호흡기센터에 코로나19 발생 증가로 마스크 착용을 부탁하는 안내문이 붙은 가운데 시민들이 마스크를 쓴 채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2024.8.20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세지고 있는 20일 대구 달서구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호흡기센터에 코로나19 발생 증가로 마스크 착용을 부탁하는 안내문이 붙은 가운데 시민들이 마스크를 쓴 채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2024.8.20 ⓒ 연합뉴스

코로나가 이미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고, 인류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앞으로 코로나-19 같은 사건이 종종 발생할 거라고 말이다. 이 또한 기후변화 탓이다.

기후변화로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는 자연재해 뉴스가 쏟아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위기에서도 인류는 기후변화에 적응하며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목표로 삼는 게 현 상황이다. 하지만, 기후변화 적응의 결과는 한 가지밖에 없다. 데워지는 비커 속 개구리처럼, 익혀 죽는 것이다.

아무튼,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휩쓰는 와중에 또 다른 작품을 썼다. 퇴고를 마치고 곧 출간된다. 그리고 출간을 기다리는 작품이 2개 가 더 있다. 이로써 나의 남은 생은 글쟁이로 확고부동해졌다.

게다가, 나는 최근에 깨달았다. 나의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가장 잘한 선택은 명예 퇴직이었다는 걸 말이다. 그 당시는 가장 후회하던 결정이 내 인생에서 최고의 결정이 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작가소개) - 2011년 현대문학 장편소설상을 수상했다.
- 기상청에서 24년간 근무했다. 기후변화의 최전선이나 마찬가지인 UN 산하 GAW(Global Atmosphere Watch : 지구대기감시) 업무를 4년간 수행했다.

참고) GAW란? 지구대기에 포함된 기후변화의 원인물질인 이산화탄소, 메탄 등을 정량적으로 측정하고자 태평양 무인도, 히말라야와 알프스 고산지대 등에 400여 소의 관측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의 기후 위기 원인이 산업혁명 이후 급속하게 발전한 인류 문명 때문이라는 걸 과학적으로 밝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오이먀콘 프로젝트 - 대한민국콘텐츠대상 우수상

허관 (지은이), 팩토리나인(2024)


#오이먀콘프로젝트#오이먀콘#기후위기#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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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간 기상청에서 근무했습니다. 청소년 소설 <남극 펭귄 생포 작전>을 쓴 소설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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