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인권, 평화통일, 역사 바로잡기에 삶을 바쳐온 이정이 부산겨레하나 상임대표가 15일 오전 세상을 떠났다. 향년 83세.
부산겨레하나에 따르면 하루 전 갑자기 쓰러진 이정이 대표는 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뇌출혈과 지병이 겹쳐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부산겨레하나 관계자는 "반평생을 우리 사회의 변화에 힘써왔는데, 갑작스러운 비보에 너무나 마음이 답답하다"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반평생을 사회 변화에 힘써왔는데, 갑작스러운 비보"
이 대표는 박종철·이한열 열사 등의 유가족과 마찬가지로 1980년대 후반 아들의 구속 이후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다. 그는 1989년 '동의대 5.3 사태'에 아들이 연루되자 가족대책위 대표를 맡아 야당과 국회 등 곳곳을 찾아다니며 진상규명 운동을 펼쳤다.
그리고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에 뛰어들어 본격적으로 양심수·민주인사를 위한 활동에 나섰다. 생계를 위해 운영하던 식당은 사랑방이 됐고, 그는 시국사건이 터지면 빠지지 않고 앞장서 시위에 참여했다.
이 대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부산인권센터', '하야리아부지 시민공원추진 범시민운동본부', '우리겨레하나되기 부산운동본부',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 부산본부', '평창올림픽 남북공동응원단' 등에서 대표나 이사 등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
'대학생·시민사회의 어머니', 과거 두 대통령과 인연도 눈길
그러면서 붙은 호칭이자 상징이 '대학생·청년들의 어머니, 부산 시민사회의 어머니'다. 그는 그동안 공로를 인정받아 1999년 여덟 번째 부산민주시민상을 받았고, 2008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올해의 대한민국 인권상 대상자로 추천되기도 했다. 그러나 반대 진영의 어깃장에 밀려 이명박 정부는 그를 끝내 심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70세에 가까운 나이에 큰 고초도 겪어야 했다. 동의대 5.3 관련 재심 법안을 발의한 전여옥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과 실랑이 과정에서 폭행 혐의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2009년 초 민주화 운동을 부정하는 움직임에 대해 항의 차원에서 국회를 찾았다가 우연히 벌어진 일이었다. 실랑이에 불과했다는 항변에도 이 대표가 구속되자 당시 부산의 100개 단체가 결집해 구명운동에 나섰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과거 두 명의 대통령과 맺은 인연이 관심을 불러 모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합동으로 운영한 법률사무소의 사무실이 이 대표의 식당 건물에 있었다. 그는 문 대통령과 함께 공간을 마련했고, 이후 '문변'이 대선에서 당선하자 누구보다 기뻐했다. 이를 알게 된 보수 언론도 이 대표를 찾아 인터뷰했을 정도다.
16일-17일 두 차례 추모제... 양산 하늘공원에 봉안
지역의 시민사회는 이러한 이 대표를 기리기 위해 장례위원회를 꾸리고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한다. 장례 명칭은 '고 이정이 어머니 민주통일장'으로 정해졌다. 빈소는 동아대학교 병원 장례식장 VIP실이다. 16일과 17일 저녁 두 차례 추모제가 열린다. 유해는 18일 장례미사, 민주공원 영결식을 거쳐 양산 하늘공원에 봉안한다.
장례위 공동위원장을 맡은 송기인 신부, 이흥정 자주평화연대 상임대표의장, 조성우 겨레하나 이사장 등은 부고장에서 "이정이 어머니는 생의 절반을 민주주의와 자주통일에 바치고, 동지들의 든든한 어머니로 단기필마 거리의 투사로 살아온 분"이라며 "가슴 아픈 소식을 알린다"라고 애도를 표시했다.